역경에 처했다고 상심하지 말고,성공했다고 지나친 기쁨에 휩쓸리지 말라.
--호라티우스--
호라티우스(BC 65 ~ BC 8 ) 로마.시인.풍자작가.
그의 '송가'와 '서간집'에 가장 많이 나오는 주제는 사랑과 우정,철학 및 시론이다.
한때 노예였다가 자유를 얻은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로마로 가서 그 스스로 체벌의 신봉자로 표현하던 오르빌리우스의 학교에서 교육울 받았고,
열아홉 살에 아테네로 가서 아카데미에서 이뤄지는 강연을 들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살해되고,그들의 군대 호민관으로 임명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으나 옥타비아누스에 패하고 이탈리아로 달아났다가
로마로 가서 BC39년에 일반 사면령이 내려지기 전에 금고 서기 자리를 얻었다.
금고 서기는 비록 하급직이었지만,매우 중요한 자리였으며,옥타비아누스의 정치 참모 중 하나였던 마이케나스를 소개 받아 작가의 명단에 오르게 된다.
오래지 않아 마이케나스를 통해 옥타비아누스의 주목을 받게 되고,
윤리 문제를 논한 '풍자시'를 발표하고,사회적 악습을 공격하는 '서정시'를 쓰고 있기도 했다.
BC30 년대 중반에 마이케나스로부터 안락한 집과 농장을 받게 되고 거기서 평생을 기쁘게 살게 된다.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트스라는 칭호와 함께 확고한 자리를 굳히게 되면서 '송가'를 쓰기 시작했고,
BC23년에 88편의 짧은 시로 이뤄진 세 권의 시집을 발표했다.그가 가장 활발히 시를 쓴 시기였다.
그는 '송가'에서 그리스 초기 서정 시인들의 후계자임을 자처했지만,낱말을 섬세하고 절제있게 구사하는 독특한 능력을 발휘한다.
아우구스투스가 개인 비서 자리를 제안하지만 건강을 핑계로 거절했으나 그들의 사이는 매우 돈독해졌다.
이후 훌륭한 시는 즐거울 뿐만 아니라 교훈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서간체 시집을 내기 시작했고,좋은 글의 비밀은 지혜라고 생각했다.
시인은 자신의 가장 좋은 점을 아낌 없이 주기 위해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44세 때 자신을 묘사한 것에 따르면 ,그는 일찍 백발이 됐고,햇빛을 좋아했으며,성미가 급해서 걸핏하면 화를 냈지만 금방 화를 푸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브리태니커)
자신을 상대로 싸우다 패한 적장을 포용한 아우구스트스 황제도 대단해 보이고,관직을 탐내지 않으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다 간 호라티우스도 멋져보인다.
그처럼 역경과 성공을 두루 경험한 그가 한 말이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우린 조금만 곤란이 닥쳐도 당장 죽을 것처럼 엄살을 부리고 앓는 소리를 하고 도움을 청하곤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조금만 성취를 이뤄도 길길이 뛰면서 즐거워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역경이든 성공이든 '이 또한 지나가리라~'의 대상이 돼 버리고 마는 것을...
용비어천가인가에서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휜다 했던가?
어차피 우린 기독교적 입장으로 보자면 원죄인이고,불가적 입장에 따르자면 고난의 바다에 던져진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평지풍파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인데,살짝 아프다고 죽을 것처럼 울어대고,조금 이뤘다고 전 우주를 다 얻은듯 호들갑을 피운다면 ,
삼장법사의 손바닥에서 까불어대는 손오공처럼 우습지 않을까?
얼마간의 초연함을 갖고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려선 나같이 웃기는 존재가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때 친구들에게 으쓱해 보이며 거드름을 피워댔고,
결혼을 해선 나를 쏙 빼닮은 딸을 낳으면서 전 우주를 손아귀에 쥔 듯 기뻤었다.
최근 들어선 자유를 얻고 여유를 누리며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데서 흥분을 감출 수 없었으나,
그 모든 것들이 조금만 지나면 별 것 아니라는 생각에 심드렁해지고 말았다.
어려서 부모님들이 이혼을 하시고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하늘이라도 무너진 듯 고통스러웠고,
남들이라고 다 누리고 사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한 데서 오는 자괴감에 죽고 싶었으며,
목숨을 걸고라도 지키려던 가정을 파탄내고 절망감에 빠져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을 정도로 괴로워했지만,
지나고 보니 '까짓~'하며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게 됐다.
지금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와 즐거웠던 시기를 떠올려보면 ,그리고 당시의 나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낯이 뜨거워짐을 피할 수가 없다.
모두들 그런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워낙 우리네 인생이란 게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파란만장한 것이기에...
처음, 가진 자들로부터 피소를 당해 재판정에 드나들게 되면서 ,막막하고 두렵기만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곳도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에 불과하고 ,나를 잡아먹는 괴물의 아지트가 아니란 걸 알게 되고,
깨지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한 상황을 겪는 곳이기도 하지만,미리 가서 앉아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사건을 살피면서
나의 경우는 새발의 피 정도 밖엔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위안을 얻게까지 됐다.
가끔 삶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럽거든 ,주변의 재판정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다.
세상엔 참 분하고 억울한 일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살아내는 사람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거짓말이나 꼼수를 부리는 사람들은 반드시 패망하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겉으로야 이겼다 할 수 있을지 몰라도,그래서 환호를 하고 하이파이브까지 하는 무리들을 목격도 해 봤으나 ,
그렇게 거짓말로 ,꼼수로 일관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속이 좋을 리가 없다는 걸 알 수 있게도 됐다.
하나의 거짓을 관철시키기 위해선 열의, 백의 거짓말을 지어내는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고,
그런 그들의 속이 말짱하지 못할 거라는 건 누가 봐도 분명하니...
이겨도 지는 싸움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져도 이기는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법보다 두렵고 막중한 것이 바로 양심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대손손 악의 무리였던 것들에겐 진작 양심에 털이 나버려서 양심의 가책쯤엔 돌덩어리처럼 단단하게 무감각할 수도 있겠으나
역사의 심판까지 어쩔 수는 없겠기에 언젠가는 천벌을 받으리란 생각을 하는 것으로 위안을 받아야지 않을까?
어찌 할 수도,어쩔 수도 없이 일어나는 것들까지 마음을 쓰는 것은 단명의, 불행의 지름길이라 생각하기에 하는 말이다.
대신 나의 속에 샘을 깊게 파는 데 치중한다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국사와 세계사를 망라한 '역사'를 거울 삼는다면 그 작업의 힘듦을 너끈히 극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 오늘은 21세기 전의 호라티우스를 거울 삼는다면 호연지기쯤을 가져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당당하게 ,호탕하게 껄껄껄 웃어주며 이 역경을 헤쳐나가보자!미개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