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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물과 같다!


BY 미개인 2015-04-05

진리는 적이건 아군이건 모두 초월한다.

        --쉴러--

 

요한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쉴러(1759~1805) 독일.고전주의 극작가.시인.철학자.역사가.문학이론가.

괴테와 함께 독일 고전주의의 2대 문호로 일컬어지는 그는 하급 군의관의 외아들로 태어나 신학을 전공해 목사가 되려 했다.

그런데 영주인 카를 공작의 명령으로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법학을 공부하다 의학으로 전공을 바꿨고,

슈트트가르트에서 하급 군의관이 됐으나,학창 시절에 몰래 문학 작품을 탐독하며 습작을 했었고,

철학교수 아벨의 권유로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는,그로선 충격적인 체험을 하게 되는데,그런 것들이 밑거름이 되어 첫 작품 '군도'를 자비로 출판하게 됐다.

이는 독일 귀족 계급의 횡포에 대한 반항적 작품이었는데,이 작품이 성공적인 초연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의무관으로서 집필활동을 금지당하자,공작의 저술 금지령을 피해 만하임으로 도주했고,

도피생활을 하면서 'Fiesco의 반란', '간계와 사랑'을 썼다.

그의 작품들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여 ,1800년대와 1848년 혁명기의 독일인들의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787년,네덜란드 독립사를 연구,인정을 받아 1789년 예나 대학의 비정규직 교수가 된 후 ,

미학,철학,역사에 대한 논문을 잇달아 발표하여 생활의 안정을 얻고 역사와 미학 강의를 하기도 했다.

1794년부터 괴테와 교분하여 함께 '크세니엔'이라는 시집을 내기도 했는데,이들은 자주 만나 문학에 관한 대화를 나눴고,공동 작업을 했다.

1799년부터 만년의 희곡 창작의 시기에 들어가 '발렌슈타인'3부작,'오를레앙의 처녀', '빌헬름 텔'등의 대표작을 써서 괴테와 견주는 대작가가 됐다.

희곡의 대부분은 운명과 대결하는 의지의 힘을 묘사한 것으로 그리스 고전극 정신의 재생을 지향하고 있다.

평소 신병으로 고생을 하다가 폐질환으로 바이마르에서 사망했다.

2005년에는 쉴러 사망 200주년을 맞아 독일은 전국적으로 '쉴러의 해'라는 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하기도 했다.(위키백과) 

 

진리는 입장에 상관없이 어느 경우에나 적용된다는 특징이 있는데,그래서 진리가 아닐까?

그런 진리가 물과 아주 흡사하다는 생각에서 제목을 상선약수(上善若수)의 형식을 빌어 진리약수(眞理若水)란 말로 바꿔 본 것이다.

거짓말을 하고 불의를 저지르면 반드시 천벌을 받아왔음을 저들도 알아야지만,우리도 알아야 하는 것이,

말은 정의를 부르짖으면서도 ,저들의 불의를 거들어주고 있진 않은지,불의를 보고도 수수방관하는 공범이 되고 있진 않은지 끝없이 성찰해야 하는데,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의 시위현장은 여전히 쓰레기 전쟁터가 되고 있고,

정의를 부리짖는 우리들은 얼마간 불법을 저질러도 된다고 생각하는 식으론 절대 이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 놈이 그 놈이란 꼴이 되고 말 것이고,그렇게 정권교체를 이뤄 봐도 별로 달라지는 게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에서도 부정부패와 비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민중들의 행복지수는 여전히 바닥을 휩쓸어댔다.

민중들의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정권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어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다는 걸 보게 된 것인데,

그런 작태는 민중들을 더더욱 깊은 정치혐오증의 구렁텅이로 빠트렸다.

 

물은 낮은 데로 흐르고,모든 것에 스며든다는 것을 알아얄 것이다.

부와 권력을 추종하는 것은 대개 진리를 거스르는 것이 되고 말며,배척하는 것 역시 진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정의를 실현시키고 싶어하는 지도자와 민중들은 낮은 곳을 살피며 그곳의 사물현상을 살펴야 할 것이며,화합을 추구해야 할텐데...

권력자와 슈퍼리치라는 ,소위 지도층은 더 많이 갖고 더 높은 곳만 추구하며 아귀다툼을 하면서 진리를 거스르고 있다.

가진 놈들이건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건 하나같이 아귀가 되어 세상을 온통 난장판으로 만는 결과,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물질문명과는 반대로 , 정신문명적으론 점차 빈곤해져만 가서 하나같이 앓는 소리만 해대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다.

모두가 진리의 속성을 파악해서 안과 밖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나이든 사람 노릇 하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게 되는데,

가진 자의,권력자의 자리가 어려운 자리라는 생각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전국 도처에서 불법 대선을 비난하며,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데,민중들 앞에 스스럼없이 나서지도 못하고,

환관들이나 간신배들에 둘러싸여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살아가는 밝근헤 댓통년의 솔직한 심정이 궁금하고,

십수조 원의 재산을 그러모아 놓고도  병상에 누워 식물인간으로 고통스러운 연명을 하고 있는 이건희의 솔직한 심정이 궁금하기만 하다.

나라를 위한다면서도, 나라를 좀먹는 매국노들의 이익 실현과 기득권 지켜주기에만 혈안이 된 전현직 대통령들이 ,

뒷구멍에서 호박씨를 까면서 떳떳하다고만 하고, 정작 대중 앞에 나서서 자신의 당당함을 주장하지 못하는 것도 꼴불견이고,

사회환원을 하겠노라며 계열사들의 사훈으로 내건 사기꾼이 돈에 치여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서류상으로만 살아있는 상태에 처해서,

제 뜻으론 단 한 푼도 써보지 못하고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한심한 처지의 그가 

마누라와 자식들이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더 챙길 궁리만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정말 궁금한 것이다.

에라이~

차라리 기름때에 절은 손발을 하고서도 실실 웃어가며 늬들 욕을 하고 비웃어대며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자유를 구가하는 나를 부러워 하거라!

 

우리들 민중들도 마찬가지다.

저것들을 비난하고 욕설을 퍼부어대면서도 정작 나서야 할 자리에선 주춤거리며 외면을 한다면,저들과 다를 것이 뭔가?

하나같이 내가 충분히 낮기 때문에 난 수혜자여야만 한다고 억지를 부리는 건 참으로 저질스런 몸개그가 아닌가?

우리들 중 궁핍한 사람을 보고도 능력이 안 돼서 못 돕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싶어하고 ,너무 좋은 것만 갖고 싶어하느라 여유를 찾지 못하고,

그런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고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누리는 자들을 손가락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얄 것이다.

남을 손가락질 하는 손을 잘 살피면 남을 향한 한 개를 뺀 나머지 네 개의 손가락은 스스로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아주 크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눈 안의 대들보는 못본 척하고,남의 눈에 혹여나 있을지도 모를 티끌 찾기에만 연연하는 이런 비인간적 면모는 내게 없을까?

그들의 거짓말을 비난하면서 나는 또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고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사람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어서,그들은 당당하게 티끌을 지적하고,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고 비난을 해단다.

하지만 총칼을 손에 쥐고도 함부로 휘둘러대지 못하게 하는 카리스마가 그들에겐 있다.

더 크고 더 폭발력이 있는 총칼을 가져서일까?

그들은 스스로 떳떳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들 나처럼 떳떳하게 살고 있으려니 하고 있다가 그런 믿음에 상처를 받고,배신을 당하기를 거듭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전면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현재 누구도 맡기 부담스러워 하는 온갖 시민단체의 이사장 자리를,시적으로 바라는 것 없이 자임하고 나서는 함 세웅 신부같은 분이 그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과거 예수가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고자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형벌을 감수하면서라도 불의에 저항했고,

그 덕분에 2천여 년을 무사히 살아온 인류가 ,2천 년 전보다 훨씬 타락해 있다는 것은 사실 배은망덕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말년까지 몸을 사리지 않고 정의구현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순국을 하셨고,총칼에 맞서 싸우다 엄청난 고통끝에 돌아가신 분들 또한 참으로 많건만,

우리들은 과연 그 분들을 얼마나 인정해왔고,또 그들을 닮기 위해 얼마나 애써왔는가?

최근의 인물로 함 석헌 선생과 법정 스님,김 수환 추기경,그리고 함 세웅 신부 등이 그런 사람일 것이다.

한국의 예수같은 분들이 아닐까?

 

말로만 하는 투쟁이나 격분은 사실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인근의 현충사를 찾아서, 

친일 매국노들이 그린 충무공,신사임당,세종대왕의 영정을 표준영정으로 삼고 있는 현실에 저항하는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 .

그들이 안타까워 하는 것은 편안히 자리에 앉아서 푼돈쯤을 기부하고 SNS등을 통해 말품을 파는 사람들은 많고도 많은데,

정작 현장에 참여해서 뛰는 사람이나 서명에 동참하는 사람은 희소하기만 하다며 분개했더랬다.

참여없는 개혁은 구두선에 그치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70년 간 겪어왔다.

덕분에(?) 우린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도 몸살을 고칠 생각은 않고 자중지란에 빠져 병을 깊게만 만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죽을지도 모르는 독감임에도 불구하고 남의 일인 양 몸을 사리고 ,병을 감추려고만 하면서 몸에 안 좋은 것만 취하려 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고로 병은 소문을 내야한다고 했다.

부끄럽다고 자꾸 움츠러들지만 말고,가차없이 드러내고 스스로 극복하려 애써야 할 것이며,국제적 양심에 호소를 해서라도 협조를 받아내야 한다.

그 존재 이유가 의뭉스럽긴 하지만, 전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UN의 수장이 마침 우리나라 사람이기도 하니 호기가 아닌가 말이다.

세계 여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우물을 깊이 파서 감추려고만 하는 극악무도한 짓을 해대고 있지만,지구촌의 시대에 이 무슨 해괴망칙이란 말인가?

숫적으로 ,능력으로 훨씬 출중한 우리들이 이길 수 밖에 없는 싸움이다.

우린 정의를 추구하고,저들은 불의를 고수하려는 폭력적인 저능아들이기 때문이다.

우린 이참에 전 세계에, 진리는 이길 수 밖에 없다는 증거를 내보일 사명을 하늘로부터,운명의 신으로부터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린 살아오면서 몇 번씩 경험하곤 하지만,보다 큰 스케일에선 안 될 것이라고 자포자기를 해왔다.

하지만 진리는 작든 크든,우리든 적이든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어서 진리인 것이다.

진리약수(眞理若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