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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션] 웃을 일


BY 사교계여우 20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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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퇴직한 나의 하루는 늘 휴일이고 그날이 그날 같지만 그래도 오늘 같이 한가한 날은 드물다. 내 블로그에 링크를 건 블로그는 모두 여든여섯 개. 그중 10개는 어떤 블로그인지 알 수 있다. 오랜만에 남의 블로그에 들어가봤다. 이런 글 저런 글 읽는것도 재밌다. 호기심도 생기고, 글을 쓴 이는 누굴까, 나이는? 몇 개 읽으면 대충 짐작은 되지만 단지 거기까지다. 다들 크고작은 고민들을 안고 살아간다. 누군지 알면 어깨를 두드리며 힘내라고 하고싶지만 그럴수가 없으니. 세상 살다보면 나혼자 힘든게 아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뿐 모두가 걱정을 한가득 안고 살아간다. 그렇게 위안 삼으면 된다. 뚜벅뚜벅 앞을 보고 또 걸어가면 된다. 아마 내일은 잘 될거야, 라며 위로하고 스스로 격려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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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문장이라도 쓰려고 노력 한다. 물론 매일 흔적을 남긴다는 게 쉽지 않다. 때로 귀찮고, 쓴다는 게 의미 없어보이고, 무엇보다 누가 읽지도 않는데 뭘하겠다고 쓰나, 일기라고는 하지만 써서 어쩌자는건대 식이다. 하지만 뭐라도 끄적여야 사는 것 같다. 쓴다는 건 뭔가를 생각한다는거고, 나의 삶을 돌아보거나 숙고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아무 생각없이 기계처럼 반복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가람 이병기는 하루도 안 빼고 평생 일기를 쓴 분인데, 일기 중에 '어느 날 똥을 잘쌌다' 라는 귀절도 있다. 하긴 똥을 잘 싸야 건강할테니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얼마나 쓸게 없으면 똥 싼 이야길 쓸까. 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문장이라도 한 줄 쓰고 하루치 일기를 썼노라 하지 않았을까? 이게 웃을 일은 아니다. 하루 한 문장이라도 꼭 쓰겠다는 결심을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낸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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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생각 없이 사는건 안 된다. 최소한 내가 짐승이 아니고 사람인 바에 생각은 죽을 때까지 꾸준히 해야 마땅하다. 가능하면 하루 한 줄을 쓰되, 글과 병행해서 책을 한 문장정도 읽는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루 한 문장이라도 읽고, 한 줄이라도 쓰기. 어떤가. 그럴듯 하지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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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을 감상했다. 역시 오페레타는 오페라에 비해 너무 가볍다. 진중하지 않고, 별스런 내용도 없고, 그저 웃고 춤추고 노래하는 식이다. 그렇다고 <유쾌한 미망인>은 뛰어난 아리아도 없다. 서곡이나 관현악이 훌륭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대체 이 작품이 왜 유명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숙제하듯 1막 아리아 장면 세 개, 2막~3막까지는 통으로 캡춰했다. 특별히 해설할 만한것도 없으니 간단히 스토리, 등장인물 소개하고 넘어가면 되겠다.

멀뚱히 하루를 보내기가 뭣해서 <미술과 영화> 다음 차례인 에곤 쉴레를 대강 살펴봤다. 도판, 해설 모두 어느정도 준비되었으니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 되겠다. 일요일이니 가만 쉬어야지 했는데 결국 오늘도 할건 다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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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독서실 뒷켠 화단에 고구마를 조금 심었다. 지난 주 아내가 모두 캐 화단 귀퉁이에 쌓아놓았다. 열댓개쯤 되는 고구마가 제법 크기는 큰데 하나같이 고구마 특유의 단맛이 없다. 아내 말에 의하면, 물이 잘 빠지지 않고 너무 습해서 그렇다고. 그냥 방치하려니 아까워서 깨끗이 씻어 서재로 가져왔다.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날고구마를 껍질 깍아내고 먹으니 무우처럼 시원하게 씹힌다. 하지만 먹으면서도 이게 대체 고구마인지 무우인지 정체를 도통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