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하고 살기 시작한 건 그러고도 한참 더 지나서다. 하지만 그 때의 결심이 없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원인이 이미 존재했으니 필요한 건 계기뿐이었다. 아주 작은 깨달음. 나는 그 전까지, 매일 치우는 것보다 어쩌다 몰아 치우는 게 더 시간 절약 노력 절약이라는 논리를 폈다. 청소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내가 간과한 건, 나라는 존재가 거기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청소를 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집에서 살고 있는 나, 내가 누리는 삶의 질이 중요한데 왜 몰랐을까. 지저분한 집에서 사는 나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창고 비스무리 쓰고 있는 방들은 1주일 내내 옷 무덤을 쌓다가 눈에 거슬리는 날에만 치운다. 스팀걸레질은 한 주에 한 번밖에 안 하며 그 나마 2주까지 미뤄지는 일도 드물지 않다. 베란다 청소는 이사 와서 한 번밖에 안 했으며 유리창은 안 닦는다. 재활용 쓰레기는 매주 버린다. 하지만 음식물 쓰레기는 겨울에는 1주일씩 묵히기도 한다.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우리 집은, 독신자 평균보다는 제법 깨끗한, 하지만 아이가 없거나 다 큰, 그리고 청소에 뜻을 둔 전업주부가 있는 집보다는 훨씬 지저분한 집이다.
십 년 전에는 청소의 필요성을 납득 못했다. 삼 년 전에는 머리로만 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 몸은 따라가지 못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나는 여전히 청소를 싫어한다. 그래도 매일 한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기 전 몸이 먼저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깨끗한 집을 보면 성취감을 느낀다. 청소의 당위는 더 이상 따질 필요 없다. 왜냐하면 이미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여전히 금기시하는 가사노동도 있다. 손빨래는 힘들어서 싫고, 다림질은 못 해서 안 한다. 캐시미어고 실크고 전부 세탁기에 돌리고, 다려야 하는 옷은 더 이상 안 산다. 이미 산 건 안 입는다. 정 입으려면 세탁소로 들고 간다. 언젠가는 이들 또한 일상으로 편입될 날이 올까? 아직은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지금은 손빨래와 다림질을 안 하는 삶이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이다. 언젠가의 어느 날 내가 만일 다리미를 휘두르고 있다면, 그러는 쪽이 더 행복하리라는 걸 문득 깨달아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