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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션] 남편 자랑


BY 사교계여우 2018-09-24 02:43:25

결혼 전에 눈 감고도 외울 수 있었던 친정 엄마의 여러 레파토리 중 하나.
딸을 앉혀두고 아빠를 향한 뒷담화? 였습니다.
'네 아빠는 무슨 일이 생기면, 나보다 네 할머니를 더 챙길 사람' 이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빠는 결혼전부터 식구들의 생계를 짊어지고 있었던 소녀 가장이었고, 대한민국 장남 특유?의 책임감을 자랑하던 분이셨습니다.
그러니 신혼여행을 가서도 당시 아빠가 챙겨야만 했던 집안의 난리들에 매여있던 모습을 보고 엄마는 '이거 한참 잘못되도, 아주 잘못됐다'고 느끼며 수십년 결혼 생활을 하셨을겁니다. 1989년에 생긴 미움의 깊이는 골이 질때로 져서 현재 2018년까지 현재 진행중이구요. 그래서 저 역시도 결혼 전 '이 남자가 천상 마마보이에 나보다 자기 가족을 더 챙기면 어쩌지' 라는 불안감에 휩싸여 몇 번의 헤어짐끝에 결국엔 결혼을 살짝 늦게 한 편이구요.

결혼 준비를 하면서 몇 번 의견이 어긋난 적은 있지만 크게 다투거나 결혼을 하네 마네 난리통을 친 적은 없었습니다. 대부분 남편의 조율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구요. 특히 예단과 같은, 우리는 하고싶지 않지만 부모님들에게는 중요하고 내가 직접 협상에 나서기는 위험이 큰 절차는 남편이 몇 단계에 걸쳐 시부모님의 의견을 듣고 조율했습니다. 둘째 특유의 애교를 내세웠던 덕인지 몰라도 시부모님은 내심 서운하셨을지 모르지만 무탈하게 넘어갔어구요. 그 이후로도 명절날 친정과 시댁 중 어디를 먼저 가느냐와 같은 내가 보기엔 시덥지도 않은, 하지만 양가 부모님에겐 쓸데없는 자존심 경쟁과 같은 일도 남편이 나서서 교통정리를 싸악- 해주었습니다.

엄마는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할 때 본인을 제쳐두는 것이 늘 서러웠다고 했습니다.
저는 반대입니다. 워낙 어릴 때부터 명절에 반찬을 몇 가지를 하느냐를 두고도 할머니와 엄마와 아빠가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고 지쳐서 그런지 제 자존심과 자존감에 큰 스크래치를 내는 일이 아니면 한발짝 뒤로 빠져있는게 속 편합니다. 곧 다가오는 시아버님의 환갑을 어떻게 치를지 결정하는 일도 시어머니와 남편, 시누이가 알아서 결정했는데 어찌나 편한지 모릅니다. 남들이 보면 며느리가 할 도리를 못한다 또는 무책임하다고 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게 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할 줄 아는게 없는 며느리나 남편한테 다 맡기는 부인 캐릭터가 된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믿을 수 있는 남편의 등 뒤에 가끔 숨어도 되는 "무기한 특권"을 가졌으니 마음껏 쓸 요량입니다. 앞으로도 쭈욱- 계속-.

특히 남편분들은 자신을 한번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명절만 되면 아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이야기한다고들 하죠.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화를 내고, 평소라면 그냥 넘어갈 일에도 도끼눈을 뜹니다. 갑자기 금성에서 온 것처럼 행동하는 아내와 갈등 없이 지내기는 외계인과 수다를 떠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아내의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순간, 당신은 명절을 무사히 보낼 능력을 얻을 뿐 아니라 1등 남편이 되는건 따놓은 당상일 겁니다.
아내가 시댁 어른, 특히 시어머니와 함께 둘러앉아 전을 부치고 있을 때 물어본 것은 아닌지. 남자가 집안일하는 분위기가 아닌 시댁이라면, 어른들 있는 자리에서 ‘이 전 같이 부치자’라고 냉큼 대답하기는 정말 힘듭니다. 그러나 도움이 왜 필요 없겠는가. 아내는 분명 당신이 도울 일을 찾아 그림자처럼 움직여주길 바랄겁니다. 요리가 젬병이라 손대면 사고치기만 일쑤라면 할 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쓰레기 버리기나 설거지처럼 조용히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설거지하고 있는 아내에게 그릇을 야무지게 날라다주고 식탁을 광나게 닦은 다음 ‘지금 음식물 쓰레기 버리고 올까?’ 하고 물어보는거죠.

저는 평소 자녀나 남편이나 자유방임주의입니다. 잔소리를 않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자녀에게나 남편에게 최선을 다하여 양육하고 봉사하고 있습니다.그깟 명절이 뭐라고 부부 서로간의 신뢰가 깨지고 미움이 쌓일만큼 다툰답니까. 니집에 잘했니 마니 언성 높일게 전혀 없다는 겁니다.
사실 본인 고향집에 가면 긴장하게 되서 꺼려진다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남편도 알겁니다. 이런저런 일들을 시어머니와 내가 1:1로 논의하다가 내가 다치기 보다는 본인이 수고하는게 모두에게 낫다는 것을요. 시댁에 가서 내가 하는 일은 시어머니를 거들어 식사를 차리고 몇 차례의 설거지를 하고 시부모님이 가꾸신 신선한 농작물을 챙겨오는 것 뿐입니다. 반대로 친정에 가면 요리하고 상을 내고 뒷정리를 하는 모든 과정에 남편이 낄 곳은 없습니다. 남편은 장모님이 한 맛있는 밥을 배터지게 먹고 딸들과는 대화도 없던 아빠가 방언 터지듯 이야기를 쏟아낼 때 장인 어른의 맞장구를 잘 쳐드리고 오면 됩니다.

무조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이런 것입니다.
충분히 상대가 스트레스를 받을만한 상황에서 든든한 방파제가 되어주는 것.
결코 만만하지 않은 시댁이지만 늘 시골 할아버지댁에 가는 것처럼 발걸음이 홀가분한 이유는 바로 무조건 믿을 수 있는 남편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명한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첨부사진)
가깝고도 긴 추석 귀경길 전쟁 속 주인공이 될테지만,
남편이 미리 점수 딸겸 직접 차려준 저녁밥 먹고 힘을 내 봅니다. (사실 운전은 남편이 합니다..^^)
그러나 설거지는 제가 한다고 했다가 한참 애먹었다는 진실.


모두가 보름달처럼 행복이 꽉 찬 한가위가 되길 바라며... !!

[오늘의미션] 남편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