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논객님들께 아래와 같은 생각을 물었습니다.
사실은 답을 요구한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사려깊은 논객님들은 제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알아냈을 것입니다.


1. 박근혜님이 한나라당의 당무에 있어서 불간섭으로 지켜보는것이 옳은가?

2. 박근혜님이 국정문제에 있어서 침묵하는 상황은 바람직한 것인가?

3. 최근 탈당을 요구하는 친박네티즌이 많은데 탈당을 해야하는 시점인가?

(만일 탈당 시점으로 본다면 창당을 하게 될텐데 지금의 지지율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보는가?)

4. 지금의 지지율이 다음대통령 선거까지 이어진다고 보는가?

5. 냉정하게 평가해서 박근혜님의 장점은 무엇이고 고쳐야할 부분은 어떤 것이 있는가?


전체적으로 묶어서 제 생각을 개진해보려고 합니다.

한나라당은 이명박대통령 직계와 방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난 한나라당 경선당시에 구성된 계파와 18대 공천을 통해서 친이측의 세는 훨씬
늘어났습니다.
지금 친박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의원은 30명 남짓에 불과합니다.
언론에서는 50~60명을 말하기도 하지만 친박임을 자부하고 흔들리지 않을 의원은
제가 언뜻 파악하기로는 30여명이라고 현재로서는 말할수 밖에 없습니다.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드러났듯이
친이면서 안상수대표에게 표를 던지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친박원내대표를 끝까지 밀어부치려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봅니다.

지금 한나라당의 친박이라는 의원들의 생각이 한가지만이 아닙니다.
엄밀히 말해서 노장파와 소장파가 박근혜님을 모시는 생각이 다를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달리말하면 초선의원과 재선이상의 의원들간에도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표님은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분이라는것은 잘 아실테고...
그렇다면 지금에 있어서 박근혜님의 생각은 어떨까요?
그동안의 행보를 유추해보면 당의 전반에 관한 책임은 지도부가 이끌고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씀을 하신걸로 압니다.
그말은 당무는 친이명박계지도부가 잘 이끌어주면 된다는 아주 원론적인
주문이었던 것이지요.

당내에는 주류 비주류가 존재합니다.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전두환시절에만 드러내 놓고 경쟁하지 않았을뿐 박정희시대.노태우의 3당합당시대와
김영삼시대.김대중,노무현시대,또한 지금 이명박시대에 걸쳐서
여당내에서 비주류가 있었고 권력투쟁이 있어왔습니다.
그때 탈당한 비주류는 없었습니다. 심기일전,와신상담 기다리면서 권력자의 눈치를
살펴왔고 경우에 따라서는 협조와 반대를 분명히 표해왔습니다.

지금 박근혜님은 권력자의 눈치를 보지 않는 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습니다.
그것은 국민의 힘이 뒷받침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비주류로서의 역할은 주류를 견제만 하면 될뿐 나서서 할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견제도 너무 자주하면 안되기 때문에 가끔씩 정말 잘못되었을때
박근혜님의 어법대로 간결하게 메시지만 주면 되는 것입니다.

당무는 국회의원이고 당원이기 때문에 가끔씩 간섭도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침묵하는 것이 도와주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실정이 있을때마다 국민들이 뒤에 있다는 믿음으로 나서서 대통령을
제어하자고 한다면 월권이 될 수가 있습니다.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통치하라고 맡긴 자리인데
국정운영에 침묵한다고 나무라는 것은 박근혜님을 흠집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박근혜님은 아주 절제된 인간이기도 하지만 정치인입니다.
정치인은 정치적인 고려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정치적인 고려를 하지 않고 바람에 의해서 움직이게 되면 바람이 시들해지는 순간에
동력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정치인은 나가야할때와 움츠릴때를 잘 판단해야합니다.
노태우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전에 전두환핵심들에게 수모를 참 많이 당했습니다.
2인자라는 말이 무색하게 견제를 많이 받았지요.
결국은 후보를 낙점받았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김영삼대통령은 3당합당으로 민주계라는 소수파였지만
은인자중하던 시절을 거쳐서 날카로운 투쟁력으로 후보를 쟁취했지요.
그는 숙일때와 나설때를 잘 이용한 정치인으로 기억됩니다.

김대중대통령은 이회창대세론에 밀려서 기대하지 못한 승리를 얻었습니다.
김영삼정권에서 국민적 지지를 얻음으로서 경쟁후보인 이한동,이인제를 누르고
후보를 쟁취했습니다. 당시에는 여당이라는 프리미엄에 개인적인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이미지를 확실하게 포장한 이회창후보의 승리가 점쳐지던 시절이었습니다.
김영삼대통령은 이인제를 뒤로 밀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당시 신한국당의 당원들은 이회창을 선택했습니다.
자신만만했던 이회창은 이인제의 탈당과 출마로 인해서 보수표를 뺏기는 바람에
김대중에게 정권을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이인제가 얻은 표는 당시 500만표정도여서 이인제의 출마가 결정적인 타격이었습니다.

김대중정권시절에 보수층의 반감이 뭉치게 되는 게기가 되었고
이회창은 다시한번 손쉬운 승리를 꿈꾸게 됩니다.
그러나 김대중대통령은 민주당후보선출을 위한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노무현시대를 열어주게 됩니다. 이회창후보는 투표직전까지
각종여론조사에서 이기는 결과가 나옴으로써 경계심이 흐트러 졌다고 봅니다.
야당의 후보선출 흥행은 매우 성공적이었지요.
당내에서 정동영을 물리치고 민주당후보가 되었고
당시 정몽준후보의 국민통합21 이라는 신생정당의 인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회창이라는 큰 인물이 버티고 있었던 야당인 한나라당과
정몽준,노무현 합작의 통합여당의 한판 승부였습니다.
마지막에 극적으로 정몽준의 노무현지지철회가 패인일 정도로
이 사건은 민주당 세력과 젊은 진보세력을 묶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노무현의 승리는 진보세력과 호남세력의 10년합작 정부였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의 시절은 보수와 진보가 자주 부딪히는 시기였습니다.
진보는 물러나고 보수가 들어오는 길목에서 어느 후보라도 한나라당의 간판이면
승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표의 패배는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합니다.
경제를 살려야한다는 구호에 세뇌된 국민들이 토목,건설사사장 출신을 경제전문가로
오인하여 경제살리기라는 대의를 이명박에게 준것입니다.
또한 보수층들이 보수라고 잘못 생각한 후보를 조건없이 밀어준 결과였습니다.

지금에와서 보지만
이명박대통령이 경제전문가가 맞습니까?
또한 보수를 대변하는 사람이 맞습니까?

앞으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사람은 앞서 열거한 대통령이 된 사람들에 대해서
깊이 있는 연구와 대통령이 된 과정을 짚어봐야할 것입니다.
노무현은 노사모를 중심으로 한 젊은이들과 소통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매우 정치적인 행위로써 성공한 케이스 입니다.
젊은이들과 소통하지 못하면 대통령 되기가 힘들 것으로 봅니다.
이명박대통령도 젊은이들의 일자리 창출에 대한 의지가 이명박후보를 지지하게끔한
결과가 된 것이었지요.

역대대통령의 경우를 열거한 이유는 다음에 말씀드리지요.

(2부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