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신명식
친일파 논쟁에 대해
오늘 오전 페북을 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안철수의 조부가 민족반역자’라는 글입니다. 이런 선정적 글이 인터넷 공간에서는 인기를 끌지요. 앞으로 민주당과 새정치신당의 경쟁과정에서 지지자 사이에 소모적 비난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어떤 논쟁이 벌어질지 눈앞에 쫙 그려집니다. 한겨레에 나온 기사이니 이걸로 공신력을 삼으려 하겠지요.
비판을 하려면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해야 합니다.
2012년 11월 페북에 올린 글 다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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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발간에 참여한 덕분에 약간의 식견이 있는 사람으로서 이건 짚고 넘어가야 겠습니다. 몇일 전 한겨레가 안철수 후보 소개를 하면서 조부의 일제강점기 금융조합 근무 경력이 논란거리라고 했습니다. 그 후 인터넷공간에서 온갖 근거없는 욕설과 반박이 난무했습니다.
일제하 일본군이나 만주군 중위는 고등관7등의 고위직입니다. 군수와 동급입니다. 군국주의 국가에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런 점에서 명백한 친일파 입니다. 해방후 공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안호인씨는 이렇습니다. 1933년 발행된 경상남도직원록에 보면 의령금융조합 서기로 나옵니다. 1938년 경상남도직원록에는 동래금융조합 서기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즉 그 위 직급인 이사, 조합장은 아니라는 거지요. 그밖에 어떤 일제강점기 기록에서도 안호인씨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금융조합이 관변단체이기는 하지만 다른 구체적 친일행위가 없다면 직위만으로 보아 조합장이나 이사는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하물며 미관말직인 서기는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한 인간에 대한 평가는 정확한 기록을 기반으로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문가의 판단을 존중해야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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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관말직이라도 뚜렷한 친일행위가 있으면 행위범으로서 단죄해야 합니다. 또한 일정한 직위 이상을 차지했다면 직위범으로서 단죄해야 합니다. 면서기나 금융조합서기가 식민지 수탈기구의 최말단조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직위만으로 민족반역자니 친일파니 비난하기는 어렵습니다.
해방 후 악질적인 민족반역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친 게 “너나 나나 먹고 살기 위해 친일했다”는 오십보백보 주장입니다. 도지사나 놋그릇 몇 개 전쟁물자로 공출당한 소작농이나 다 살기위해 친일했다는 논리입니다.
이걸 그대로 이어 받은 게 뉴라이트들입니다. 이들은 친일행위를 따지자면 조선인 중에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소위 물귀신작전입니다. 나아가 친일파청산을 강조하는 좌파들의 숨은 의도가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고 북한정권에 정통성을 주려는 것이라고 이른바 종북타령을 합니다.
1938년 금융조합에서 서기를 지낸 사람에게(구체적 친일행위를 입증할 사료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음) ‘민족반역자’라는 낙인이 가능할까요?
제 외가쪽 어른 중에는 일본인 측량기사 보조로 폴대 붙잡고 다니며 측량을 배운 분이 계십니다. 해방후 이 분야의 원로가 되셨지요. 이러면 저도 일제의 토지수탈에 앞장선 ‘민족반역자’의 후손이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