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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Hallo 베를린


BY kyou723 2007-04-23

Hallo, 베를린!!!

베를린에 입성한 지 열흘이 지났다. 남편 부임지 때문에 베를린행이 결정되자 우리의 집 정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결혼 7년차 살림이란 게 뒤져보니 산더미같았다. 혼수로 구입할 땐 그런대로 좋았던 물건도 정리하려고 보니 쓸만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결국 좋은 물건들은 이웃과 친척들에 골고루 나눠주고, 몇 가지 옷가지와 책들만 항공기와 배로 실어보냈다.

6살 어린 딸은 자신이 1년 동안 다루며 품었던 피아노를 넘겨주는 게 내심 서운한가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나 학원에 다녀오면 피아노 먼저 닦던 아이였다.

“엄마, 독일에 가면 피아노 사주실 거죠? 꼭이에요”

다짐을 하며 내 새끼손가락을 강제로 꺾어 끼우고 손사인까지 받아내는 암팡진 녀석이다.

그땐 그랬다. 학문과 음악의 나라, 독일에서 음악적 소향을 키워줄 수 있으리라. 내 딸에게 큰 비전을 심어주리라....

독일에 와서 며칠 후 피아노를 전공하는 유학생에게 넌지시 물었다. 피아노를 구입할 수 있는지... 그녀는 피아노 값이 비싸다며 말을 흐린다. 아마도 조금 적응되면 알아볼 수 있겠지. 딸아이에게 한 약속을 되도록 지켜주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이다.

 

독일에 대해서 말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인내심을 가져야한다고 했다. 관공서의 일이나 기타 인터넷 및 전화 설치 등도 한국보다 시일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 꼼꼼한 일처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자위하는 것 같다. 베를린에 도착해 이틀째 되던 날, 우리집 장롱을 조립해주는 기술자가 왔다. 영어를 대충하는 이여서 어느 정도 말귀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엉덩이가 산만하고, 수염이 덥수룩한 볼프강(43세라고 함)은 오후 4시까지 장롱 손잡이 하나 조립하고 갔다. 몇 시간을 꼼지락 거리더니 자로 재고 나에게 ‘맘에 드는지’ 물어보면서 겨우 장롱 손잡이 하나 다는 것이다. 다음날도 나에게 위치를 정하라고 하며 천장의 등을 이리저리 꼼지락거리더니 반나절 동안 천장의 등 하나 달고 갔다. 그래도 설치한 느낌이 견고하고, 아무튼 볼프강 덕분에 독일어 회화 몇 가지는 알게 된 것 같다.

3일째엔 외국인청에 등록절차가 있었다. 한국인 유학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곳이 이곳이라고 한다. 줄을 몇 시간을 서서 기다려 번호표를 받고 번호표를 받고도 그날 순서가 되지 않아 다음날 또 순서표를 받곤 한단다. 특히 직원들의 태도가 경직되고 강압적이어서 무진장 스트레스를 먹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아는 독일분이 예약을 해놓으셔서 3시간 정도 걸려 끝날 수 있었지만, 약간 경직되고 거만하다는 인상을 지울 순 없었다.

 


복잡한 서울생활을 뒤로 하고 이곳에 도착해 며칠을 지낸 느낌은 한가로운 전원생활을 한다는 기분이었다. 아침에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리고, 거실의 커튼 사이로 찬란한 아침햇살이 비치는 이곳, 도시 전체가 공원을 방불케 하는 나무와 꽃들이 내 시야를 자극했다.

아이들과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그리 멀지 않은 베를린 중심지를 워킹투어를 하며 한가로운 여정을 보내는 지금이 왠지모르게 죄스러운 마음이 들 정도다.

그러나 어느 한 편으론 앞만 보고 질주했던 내 지난 삶에 대한 작은 보상이리라 생각하며 이 시간을 마음껏 만끽하고자 한다. 그동안 일과 육아로 지쳐있던 내 심신이 작은 쉼을 얻을 수 있는 충전기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 길진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내 가슴 밑바닥에서 요동치는 욕구가 잔잔한 쉼의 시간을 오래 끌진 않으리라는 것.

과거 야욕과 피로 물들었던 독일땅, 그리고 지금은 침묵의 평화로 미래를 지그시 주시하는 듯한 시선. 그들에게서 묘한 공통분모를 발견하며 웃는다.

베를인이여!!! 긴장하라. 한국의 당찬 아줌마가 왔다!!!!




박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