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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의 명절, 할 말 있다


BY kyou723 2008-02-05

보통 이맘때쯤 한국에서는 할인매장과 재래시장은 물론 거리에도 온통 명절분위기에 돌입한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제수용품도 등장하고, 예쁘게 포장된 선물세트도 소비자의 눈을 자극한다. 모두들 고향에 간다는 기대감에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지갑을 아까와하지 않는 모습. 명절의 즐거운 풍경이다.

어릴 적 시골에 살았을 때,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거나 공부하는 언니들이 온다는 기대감에 몇 일 전부터 밤잠을 설치며 손꼽았던 기억이 있다.

달력을 보니 벌써 2월, 구정설이 며칠 남지 않았다. 내가 사는 곳은 비록 독일이지만 마음의 토양은 여전히 한국이기에 내 책상의 칼렌더엔 음력달력이 존재한다. 다만 이즈음 있게 되는 명절에 대한 설레임과 기다림은 조금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있을 뿐. 그래도 이곳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쉬지도 않는 구정과 추석엔 퇴근 후라도 가족들끼리 모여서 명절을 지내는 경우도 있다.


** 독일에 사는 한인들도 세배돈을 주는 경우도 있다. 물론 많은 액수는 안주지만...

지금은 50-60대가 넘어선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은 한국적 향수를 그대로 간직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식들에게도 명절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식시키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내가 아는 60대 한인분도 설 명절에는 가족들이 모여서 떡국을 먹거나 세배를 한다고 했다. 독일의 명절인 크리스마스에,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데 모여서 음식을 먹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가장 큰 명절인 설을 자녀에게도 되새김질 해주고 싶어서라고... 물론 이곳에 유학 와 독일인과 결혼한 경우도 애착심은 대단하다. 한국에 있는 친정에게 금일봉을 보내거나 선물을 보내기도 한다. 비록 형식적인 부분이라고 냉대할지 모르지만, 사실 먼 타국에서 일일이 챙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독일인 남편은 아내가 하는 일이니 수긍은 하지만, 설 명절에 대한 인식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 엄마의 나라에 대한 애착이 강한 법이므로 자녀들은 엄마의 나라에 대한 동경이 있다. 또한 엄마도 자녀들을 한국식으로 키우길 고집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한국말을 가르치거나 한국문화를 알게 하기 위해 구정 설에는 한복을 입히기도 하는 것이다.

한독가정과 달리 이곳에 주재원이나 기타 유학 와서 살고 있는 한인부부의 경우는 설명절에 대한 관심이 좀더 지대할 수밖에 없다. 양가 부모 및 친인척이 모두 한국에 있는 경우가 많기에 한국식 사고와 가치관 그리고 명절에 큰 가치를 둔다.

물론 한국에 살 때보다 그 부담감이나 기대감은 덜하다. 그러나 효도하지 못한다는 죄송스러움과 함께 이중고를 겪게 된다. 그러니 무조건 해외에 나가면 양가부모에게 할도리에 대해 자유롭다고 비아냥거리지는 말았으면...


**이곳에서도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여 밥을 먹기도 한다.


 ** 한복을 곱게 입은 우리 아이들~

내가 아는 주재원 가정은 장남, 맏며느리 가정인데 항상 동서에게 먼저 전화를 건다고 한다. 혼자서 명절날 시댁에서 고생할 동서에게 미안하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동서가 없지만 생기면 아마도 같은 기분일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물론 동서 입장에서는 ‘미안함’으로는 성이 안차겠지만 말이다.

이번 설명절은 얼마 전 한국을 다녀간 후라서 전화만 드리려고 작정하고 있다. 사실 2주 전부터 한국에 계신 양가 부모님께 선물을 보내려고 했지만, 차일피일 날짜는 가고 이곳 생활에 젖어들다 보니 생각과는 달리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마음만 부담감을 가득 안은 채 말이다.

물론 금일봉을 보내려고 했지만, 한국여행에 대한 출혈이 너무 커서 긴축재정이 불가피했기에 이번 설명절은 전화를 통한 덕담으로 때우려는 심보도 자리한다. 그래도 외국생활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아시는 부모님께서 이해해주시니 더욱 감사할 나름이다. 그러나 정작 동서가 있을 경우, 한국 시댁에서 고생할 동서는 상대적 박탈감이 들 게 뻔하다.

‘가까이 있어야 자식이지, 멀리 있으면 소용없다’는 말에 기가 죽지만, 우리가 이곳에서 잘 사는 것이 효도라고 누누이 말씀하시니 효도하고 있다고 자부해도 될까. 그럼에도 너무 멀리 있음에 자식된 도리를 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다. 명절이 돌아오면 타국에 살고 있는 많은 자식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임에 동병상련을 느낀다. 그러나 날 다시금 보듬어안으며 어린 시절 기분좋은 명절을 상상하는 것으로 날 위로해본다. 그리고 타국에 있는 자식들이 큰 것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니라고... 더 깊은 미안함의 고뇌를 안고 살고 있노라고...

변명에 불과한 걸까. 누군가가 한국에서 아우성치는 것 같다.


박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