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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나는이, 바다님..... 힘내세요!


BY 칵테일 2000-08-15

제목이 긴 글이 연이어 나오길래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들을 읽어보니 참으로 공감이 가는군요.
정말 남과 더불어 사는 일이 쉽지만은 않지요?

위로하는 마음에서 저도 제 지난 이야기 하나 해드리죠.

저는 지금 분당에서 살고 있는데, 지금 살고 있는 단지 말고 그 전에 살던 동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17층짜리 아파트의 5층에서 살았어요.
복도식도 아니고, 계단식인 비교적 조용한 아파트였죠.

저희 가족은 아주 단촐해요. 새벽에 나가 밤중에 들어오는 남편, 그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던 얌전한 아들, 그리고 저죠.

우리 아랫집엔 정말로 심술궂게 생긴 할머니가 사셨어요.
만화영화에 나오는 마귀할멈처럼 턱이 뾰족하고, 눈매가 사나워보이는.... 전혀 인자해보이지 않는 인상이신 분이셨죠.

첫번 째. 이사온 후 낮에 남편이 그림을 걸기 위해 거실 벽에 못을 치고 있었어요. 못을 다 박을 무렵 우리집 현관문이 왈칵 열리더군요. 그 소리에 놀라 제 남편, 의자에서 나뒹굴었습니다.

"뭔 소리여? 못치는 거여?"
"예. 저희 어제 이사와서 그림 좀 걸려구요. 죄송합니다."

나뒹굴다 일어난 제 남편, 옷을 추스리며 그랬죠.
"그래도 노크는 하고 오셔야죠. 남의 집을 그냥 여시면...."
"아, 됐수다. 못 더 칠거유? 더 칠거면 내 보는 앞에서 다 치구랴."
"?????"
황당했지만 할머니 말대로 했습니다.

두번째. 집에서 조촐한 모임을 갖느라 손님들이 많이 왔어요. 더러는 5층이라 걸어온 모양이에요. 아무래도 발소리가 좀 났겠죠?
현관문 딩동소리 시끄러울까봐 미리 현관문은 아예 열어두었지만, 그래도 사람들 들락이고, 시끌시끌한 소리가 좀 났을 거에요.
인터폰이 10~20분 간격으로 계속 울리더군요.

경비아저씨 "아랫층 할머닌데, 바꿔달라는데요"
나 "또 무슨 일로?"
경비아저씨 "시끄럽다고, 언제 사람들 다 가냐는데, 바꿔달래요"
남편 (전화기를 뺏어들며) "직접 내려가보죠"

인터폰 몇번 받은 남편 열받았는지 경비에게 뭐라 할 태세.
제가 남편 손 잡아내려놓고, 경비에게 정중하게 인사한 뒤 광어회 한접시 얌전히 받쳐들고 할머니댁에 갖다드리고 마무리.
물론 우리 손님들, 애들도 거의 떼놓고 와서 조용히 놀았고, 설마 어른들이 거기서 뛰고 놀았겠습니까?

세번째. 에어컨 달던 날. 호스연결하느라 드르르 드릴로 벽을 뚫기 시작하자 바로 튀어올라오셨더군요.
전 예상하고 아예 현관 문 활짝 열어두고 대기(?)하고 있었죠.

"에어컨 다는데요. 이건 경기도 도지사가 와도 해야하는데요. 시끄러워도 조금만 참아주세요. 할머니"
"어이구, 젊은 새댁이 돈두 많구랴. 이깟 더위 뭘 못 견뎌서 에어컨이랴? 유난시럽구먼. (인부들을 보며) 거... 빨리 좀 해여. 동네 시끄러워 못살겄네. 거참."

우리 맞은 편 아줌마, 빼꼼히 문열고 할머니에게...
"어이구. 할머니두... 할머니가 돈대서 다는 것도 아닌데 뭘 그러세요. 이 정도는 서로 참아줘야죠."
그렇지만 한참을 궁시렁거리다가 내려가셨다.

네번째. 우리 부부는 샤워를 유난히도 많이 하는 편. 어느 날, 둘 다 샤워를 마치고 쥬스한잔 가지러 방 밖을 나섰다가 혼비백산!
뜻밖에도 거실엔 귀신처럼 그 할머니가 서 계셨다.
"뭔, 오밤중에 물을 그렇게 오래 써!!!!!"
그때 시간이 10시정도께. 난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버렸고, 남편은 드디어 할머니에게 마구 해대고......

그 뒤. 우린 아예 안방 화장실 수도꼭지를 아예 잠궈버렸다. 그 화장실을 임시 창고로 썼다. 화장지니 티슈박스니, 못쓰는 장난감..... 이딴 거 보관하는 임시 창고로 이사갈때까지 그랬다.
그리고 우리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거실쪽 화장실을 아이와 함께 썼다. 그 날의 악몽을 다시 겪기 싫어서.

.......
아주 작은 평수 아파트도 아니고, 복도식도 아닌 아파트에서도 충분히 이런 유난스런 사람 만나면 곤혹치루고 산답니다.

님들이 한 일과 말들 글로나마 읽으니, 잠시 제 속도 후련하여 지나가다 제 글도 한번 올려봅니다.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