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글을 읽고 가슴이 저려옴을 느낍니다.
어디에다 이야기 할수도 없는 문제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집을 나온뒤 엄마가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것. 집을 나간것등등..
내가 그 시절 그 때를 보는 듯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엄마를 잃었습니다.
엄마는 병이 든 상태였고 늘 시골에 계셨는데. 저와 동생 오빠
집에는 조그마한 가내공업을 했었죠 . 그 때 내나이 12살 동생은 9살 오빠는 15살 . 그 때 새엄마가 오셨는데, 물론 중매 였겠죠. 엄마도 딸 아들이 있었는데, 이혼을 하셨나봐요.
그렇게 우리는 같은 집에 살게 되었는데 병이든 엄마는 꼭 3년만에 돌아가셨죠.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아버지는 너무나 잔인한 사람이죠. 엄마가 병이 났으면. 엄마를 돌보아야 정상인데, 아버지는 그런분이 아니셨죠..하여튼 새엄마와 7년을 같이 살았는데 그 때는 지금 생각해도 악몽이었죠. 늘 보따리를 싸고 아버지는 말리고
동생은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가고 , 저도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을 했죠. 새엄마가 오셔서 동생둘을 낳았는데, 우리는 그 애들을 한번 건더려 보지도 못했죠. 엄마을 심한 감시, 혹시나 자기자식한테 해를 끼칠까봐 노심초사였죠. 아버지도 그애들을 한번 때려 보지도 못하더군요. 엄마가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 이죠. 저도 사춘기를 겪었는데, 날 어렸을 때는 늘 죽음도 많이 생각했던것 같습니다.지금은 거의 잊혀져간 기억이지만.
하여튼 그 때는 엄마가 무섭고 항상 중심이 새엄마였기 때문에 엄마한테 밉보이면 큰일 이라는 생각이 늘 나를 사로잡더군요.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기숙사에 살았을 때는 정말 신이 났어요.
어렸을 적에 숨도 못쉬며 살았는 그런 것들이 없어지니까요.
결혼 할 때가 되어 집에 들어가려니까 엄마가 들어 오지 못하게 하더군요. 아버지도 마찬 가지였고. 그래서 그 근처에 전세를 얻으려고 하니까, 그제서야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그 돈을 자기에게 맏기기로하고 하면서요. 객지생활 5년을 하다 보니까 너무나 외로워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서운하답니다.
집에 와서 선을 몇군에 보았는데,
굉장히 부자집사람과 보게되었는데, 새엄마 하는말이
그 집에 부자니까 못사는 친정 도와주라고 하더군요. 그 때 내 심정 꼭 돈에 팔려 가는 느낌이 들어서 그만 두었어요.
내가 무엇이 좋아서 친정까지 도와주면서 시집을 가야하는지. 그때 집사정은 그리 나쁜것도 아닌데. 늘 엄마는 자식들 한테 바라는게 많은 그런 사람이었어요.
지금 새올케가 들어온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지금도 엄마는 자식한테 늘 돈돈 하십니다.
여동생 대학등록금에 영어학원비 어떤때는 쌀이없다 돈이 없다 등등 저한테는 이야기 하지 않는데 오빠한테나 여동생한테나 늘 손을 벌리십니다.
가까히 살아서그러는지. 너희아버지 양복이 없다. 반지가 없다 등등..우리오빠 고등학교밖에 못나왔는데, 그기에다 무엇을 바라는지. 올케는 늘 신세한탄을 동생한테 하나봐요.내가 첫애를 낳았을 때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싶다고 하니까 끝내 오지 못하게 하더군요. 내가 신랑한테 울면서 이야기 하니까 . 남편이 친정고모에게 이야기 했나봐요. 그래서 엄마한테 이야기 했는데 엄마는 끝까지 않된다고 하면서,,,, 점점 그렇게 우리는 멀어져만 갔고 지금은 ,거의 친정에 않간답니다. 그렇게 생각했죠. 친엄마가 아니다. 내가 아무리 친엄마라고 생각해도 아닌것이다라고..
그 다음에는 마음을 접었습니다.
그냥 보게되면 엄마 그러고. 아님말고. 제 자식도 아닌 남의 자식인것을 내가 뭘 바라겠냐고..그래도 동생은 친정옆에 살면서 자주왔다갔다 합니다. 어렸을 때 기억이, 그애는 기억이 별로 없나봐요. 성격도 나보다 밝고, 일찍 가출해서 혼자 살면서 고통을 많이겪고 자라서 그런지 ... 일찍 어른이 되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