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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며느님들 화이팅


BY 힘내자구요, 우리 2001-01-17

전용선 깔자마자 아줌마에 와서 노는 일로 소일거리 삼는 아줌맙니다.전에는 길거리 가다가도 누가
"아줌마"
하면 뒤도 안보고 걸었었는데요. 요새는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텀인지 그 아줌마 소리도 반갑게 들리네요.
저도 결혼 10년 동안 시댁일로 속이 썩어문드러질대로 문드러져서요. 아줌마에 오면 이 속상해방에서 시댁하고 관련된 글들만 찾아 읽곤 하거든요. 많이 위안 받을 때도 있고요. 저랑 비슷하신 분들이 워째 이렇게 많은지......
시집 올 때 처음 맘이야 나만 잘하믄 이쁨 받을 거고 걱정이 없었지요. 글구 우리 시어머님 고생하신 얘기 들으면서 내가 많이많이 잘해드리야지. 다짐도 하구요. 시집에서 10년을 살았는 데 처음 시집 들어갈 땐 별 걱정을 안했지요.
하지만 살다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구요. 시어머니가 사셨던 그 어려운 세월을 오로지 저를 통해 보상받으려고 하시더라구요. 여그 사연 보면 시어머니께서 직접 대놓고 구박하시는 분들도 많은 데요.저희 시어머니는 저 없는 데서 그렇게 저를 헐뜯으시고 못살게 하시더라구요.
첨엔 아들한테 눈물 바람 일으키시면서 하소연 하셨지요.울 신랑 하루는 대천 겨울바다까정 저를 델구 가서 어머니한테 잘하라구 하더군요. 내 참 ...... 오랜만에 고향 오는 아주버님 붙잡고 새벽에 마루에서 눈물 바람 ...... 그 소리가 제 방에 들리는 디 저는 또 베겟머리 홍건히 적시구요.
그렇다구 제가 그리 못된 며느리도 아니었어요. (다른 자식들보다도) 일이란 일은 다 제가 젤 많이 했구요. 시골 농사 짓는 것도 일주일에 한 번 씩가서 도와드리구했지요.언덕 배기 논에 펌프질해서 농약도 주고 집안 청소며 빨랫거리며 온통 제 차진데도요.그렇게 절 못마땅해 하시더라구요. 엄한 친정에서 말댁꾸 한 번 못해보구 컸는 데 시어머니께 대드는 일은 상상도 못해보구 꾹꾹 참아넘기기만 했지요.
한 번은 어머니 여형제분들이 다섯 분 다 오셔서는 저를 가운데 앉혀놓고 설거지 한 번 안한다는 식으로 계속 몰아부치시대요. 날을 잡으신거 같더라구요. 그저 심장만 벌렁벌렁
가시고 난 밤에 가방 챙겨 놓고 내가 이 집을 떠나야 겠다 다짐을 하고 나니 꺼이 꺼이 울음이 나대요.온 식구들이 다 쫓아 나와 보는 데서 어머님한테 하고 싶은 속말을 다 풀어 놨어요. 미친년 처럼 땅을 땅땅 치면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하고 난리를 쳤답니다.
그러고 나니까 우리 어머님 그 담부터 그렇게 볶는 일이 없드라구요.

저는 그 전 까지는 요. 세상은 선한 거다 그렇게 성선설을 믿었는 데요. 착하고 바보같은 사람은 당하고 산다. 그런 깨달음 아닌 깨달음까지 얻었네요.
시집와서 배운 것은 쌈질이지만요. 그 쌈질 때문에 세상살이 편해질 때가 있습니다.
여그 글 들 읽어 보면 그저 순하디 순한 순둥이 며느님들 많으신데요. 저 같이 무식한 방법 말고도 부당함에 대응하는 방법이 많이 있을 거에요.

참고로 저희 시어머님 참 불쌍하신 분이세요. 세 할머니들의 시집살이에 (저희 시할아버지가 세번 결혼 하셨거든요.) , 어머님을 한 번도 인간 대접해 주는 일이 없는 시아버님(오죽하면 저 첨 뵈는 날 우리 시엄머님 흉을 보시면서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는 얘기 까정 하시겄습니까),혼자 되신 할아버님 시집살이 까지.
거기다 진짜로 불쌍하신 것은 알콜중독이신 큰 아드님이죠.
그런 모든 상황에서 어머님 인생 최초로 만만한 화풀이 대상을 만나신 것 같습니다. 바로 저
그런 며느리가 땅을 땅땅 치며, 엉 엉 대고 울면 한탄을 했으니 얼매나 놀래셨겄어요. 저 그러고나서는 편하게 삽니다. 이제는 나이가 드셔서 그런가 제 눈치도 엄청 보시고, 말 한 마디라도 얼매나 상냥하게 하시는 지 ......
그러나 제가 딸이 아닌 관계로 이렇게 상냥하신 어머님을 그냥 공손히만 모신다면 다시 옜날 그 버릇이 솔솔 살아나시죠.
저요 요즘 우리 시어머니 조정 하는라 애쓰기는 해요. 잘 해드리다가 옛날 버릇 나오시면 좀 쌀쌀맞게 하다가 암튼 애쓰고 산답니다.
여러 며느님들, 특히 부모님 모시고 사시는 며느님 정말 하늘에서라도 복을 여러분께 내려 주시길 바라고요. 명절 잘 지내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