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우리는 또 싸운다.
나의 불평에 남편은 "니는 며느리 노릇 한게 뭐 있냐" 한다.
정말 내가 아직도 부모님을 기대하며, 포기 못하는 걸까?
92년에 결혼했는데....
그때는 신랑보다 두살 많은 시누이랑, 신랑보다 2살 적은 시동생이 시집에서 함께 살았다.
결혼한 첫날부터 눈물바다였다.
손윗시누이는 콩나물 한번 안가리고, 설겆이 한번 안도와주고 2년 후에 결혼을 해서 하는 말이 "너는 어쩔수 없는 희생양이었다"한다.
시아버지 환갑은 7년전이었다.
첫애를 가져서 예정일이 추석 1주일 전이었는데, 추석이 다 왔는데도 진통이 없었다.
부른 배를 안고 추석준비를 하자니 의자 하나없는 주방일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좀 쉬었다 하자는 말에 시어머니는 누우면 못 일어나니 빨리 끝내고 쉬자면서 밤 10시까지....
추석을 지내고 1주일만에 새벽에 진통이 와서 밤9시 딸을 낳다.
택시타면 5분도 안걸리는 거리에서 토요일 밤인데 시집에서 한명도 오지 않았다. 남편은 자기가 고아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했다.
친정엄마는 하루에도 몇번씩 부었다 가라앉았다하는 딸을 산후조리를 도우며, 시아버지 환갑하지말고, 진갑하라고 권유했지만, 시어머니의 고집으로 얘놓은지 22일째 되던 날, 시집도 아닌 우리집에서 친척들 다모시고 환갑을 치뤘다. 손하나 까딱안하고, 고생했다 한마디하고 끝이었는데,,,,
구정 나흘전이 시어머니 환갑이었다.
일본 온천여행을 신정에 보내 드릴 계획이었는데, 거절을 해서 당일 가까운 온천에서 온천을 하고 호텔뷔페에서 저녁을 했다.
신랑은 우리집에서 모시지 않는다고 불만이었다.
시누이가 시집을 가서 맨날 울고불고, 시어머니는 외손주를 반은 키워주신다. 구정에도 외손녀만 안고 계셨다.
나에게는 물론이고, 우리 얘들한테까지 인색한 시부모님이 싫다.
시누이에게 늘상 못해줘서 안타깝다지만, 우리에게까지 강요할 건 없지 않는가?
차라리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어서 돈으로 때울수 있는 형편이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