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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고 싶은 날들.


BY 밀로스 2001-02-26

며칠 독감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혼자서 죽 끓여 먹고, 밥해 대고 다 했다.
이 집엔 달랑 남편과 나 뿐. 남편이라는 사람은
자기가 더 아프다고 난리였다. 밤새 게임하면서.

내가 화장실에서 기침하며 속에 든거 다 올려도
지 기침 몇 번이 더 심하고 아프단다.
밤에 열과 기침으로 잠 못 이뤄도 지 새벽까지
게임하느라 못자 놓고서는 자기도 못 잤단다.

이젠 상대하기도 싫다. 아직 아이가 없어서 다행이란
생각가지 든다.

너무 아팠지만, 친정엔 알리기도 뭐했다. 두 분다
편치를 안으시니.....

시댁은 같은 동네에 있다. 하지만, 도움을 바랄 수 없었다.
신혼 초, 몸살이 나서 기운 없이 전화 받았다고 나중에
앉혀 놓고 나무라셨다. 당신 딸은 입덧으로 다 죽어 가도 시댁에서
전화 오니까 기운차게 받더라고. 정말 잘 키운 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동에 사는 당싱딸이 코가 조금만 막혀도
"어이구 너거 아가씨는 감기가 너무 심하던데...."
하지만 여태껏 한번도 심하게 아팠던 걸 대한적은 없다.


다행이 이번엔 전화가 안 와서 망정이지 피 까지 나온
목에서 다 갈라지고 쉰 목소리로 전화받았으면 얼마나
기막혀 하셨을까.

누구나 아무리 노력해도 용서가 안되고 잊혀지지 않는
이빨 갈리는 일이 있을것이다. 결혼하고 꽤 늘어난 건 왜일까.

온몸이 내 본래 무게의 열배도 넘게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때 되면 밥챙겨다 먹이고 내 한 숟갈 뜨고, 히히덕 거리며 텔레비
보면서 온데다 흘려 놓을 과자 부스러기 다 치워 주고.
틈틈히 지하고 신간하고.

난는 여기서는 가장 기본적인 내 생명을 안전하게 지키고
연장해 나가는 데도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치도록 아픔에도 불구하고 불쑥 불쑥 나는 나의 힘은 또
뭐란 말인가. 아프면 해주는 밥 먹고 사다 주는 약 먹고
안 아플때 까지 암 짓도 안 하는게 상식이 아니였던가?

비 오는데 혼자서 병원에 가고 쓰러지기 전에 겨우
집에 오고. 거기다 지도 하도 아프대서 약사다 주고........

난 아무래도 원더 우먼이갑다.


안 살아야 겠죠? 이런 남편을 믿고 살 순 없겠죠?
내가 그 사람의 밥을 챙겨 주면서 깨달았습니다.
애정이 남아 있다면 아마 내 성격이라면 밥은 죽어도 안 해
줬을거라고. 근데 밥을 하고 찬 바람쐬며 시장엘 갔다
와도 하나도 화가 안 났답니다. 너무 담담했고 차분했답니다.

이유는 이미 마음이 남아 있지를 않아서 더군요.
기대, 희망 뭐 그런 것들도 함께.

사랑으로 차리는 밥상과는 다른 기분.

앓고 나니 확신이 섭니다. 절차 아시는 분 꼭 좀 리플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