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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고민 끝에 글을 올립니다.


BY merlion 2001-03-01


제 아기는 2월 27일로 6개월이 되었습니다.
한달여전인 1월 21일 압구정동 미성아파트 건너편 '베이비스토리'란 곳에서
선금 10만원을 내고 백일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기 사진을 어디서 찍을까 고민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자꾸 시기가 지나더라구요, 아기는 자꾸 크고...
그래서 나중에는 시간에 쫓겨 급히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친척언니가 육아잡지에서 봤는데 연예인들이 많이 찍은 곳이라면서 얘기해준 곳이 그 곳이었습니다.
바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괜찮겠지' 하는 맘에 사전답사도 하지 않은 채 전화문의만 해보고 예약했습니다.
1월 21일 1시에 정확히 시간맞춰 10분 전에 도착했습니다.
저희집은 송파구 오금동이라서 아직 어린 아기를 데리고 가기에는 그리 적당한 거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쁜 백일 사진을 갖고자하는 바램에 나름대로 아침부터 친정엄마와 아기 목욕시키고 로션바르고 크림바르고
새 옷을 입혔습니다. 옷이 날개라고...(아기도 그런가봐요), 정말 예쁘더라고요.
아기를 한껏 멋내고 약간의 기대와 설레임으로
그 많은 짐(엄마들은 아실거에요. 어린 아기 한번 데리고 외출하는 게 얼마나 짐이 많고 번거로운지...)
을 싸안고 갔습니다. 아기 일생에 기념이 되는 특별한 촬영이란 생각에 사실 외출복 하나 제대로 없는
우리 아기를 위해 지출도 좀 했습니다.

하지만 도착했을 때의 상황은 저희 일행(제 외할머니,친정엄마, 남편)을 당황하게 했습니다.
어찌된 것인지 이미 다른 아기가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예약된 그 시간은 우리 아기만을 위한 시간인 줄 알았는데...
그 아기가 얼마나 울어대는 지 저희 아기는 울지도 못하고 멍하게 있더군요.
얼마를 기다린 후 촬영은 시작되었습니다.
이 아기 찍고 저 아기 찍고,... 정신 없었습니다.
게다가 촬영이라고 아기를 다 벗겨 기저귀만 채워놓은 상태에서 다른 손님이 들어오니 사진을 찍다말고
신규 예약 상담을 하려고 달려가더군요.
날씨는 춥고 콧물은 흘리고...조심스러웠는데...너무나 속상했어요.
지루하게 기다리던 우리 아기는 드디어 울음을 터뜨렸어요.
게다가 시간이 좀 지나니 점심식사시간이 되더군요.
배가 고프신지 촬영은 마구마구 빨리 진행되었어요.
저는 오랫동안 미술을 했고 대학 전공도 디자인이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소품의 위치, 구도, 배경등에 대해 제 의견을 말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정신없이 진행되는 촬영과 또 약간은 고압적인 태도로 촬영에 방해되니 저쪽 구석에 가 있으라는
그들의 요구에 할머니, 엄마, 저, 남편까지도 구석의자에서 궁금함을 억누르고 앉아있었습니다.
이럭저럭 20컷 정도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 촬영을 하고 나서는 허탈하기도 하면서 한편 불안했습니다.
과연 저렇게 성의 없게 찍어준 사진이 잘 나올까?

며칠 지나서 연락이 왔습니다. 사진 고르러 나오라고...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서면서 생각했습니다.
사진을 보기전에 그 날 촬영했던 그 곳 사장님의 불성실했던 태도와
내가 느꼈던 실망감에 대해 짚고 넘어가리라...
요즘 같이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 사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가 중요한 것 아니냐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종류의 특수한 작업은 과정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착하니 마침 그 사장님이 전화를 받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예에, 마음대로 하세요. 소비자 보호원에 고발하려면 하십시요!."
하면서 전화를 끊더군요.
미루어 짐작하건대 어떤 엄마의 항의 전화 같았습니다.
그 때는 남의 일같았습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사진은 그런대로 나올줄 알았습니다.

밀착을 뜬 작은 크기의 사진을 봐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수준이하였습니다.(참고로 그 곳은 기본 가격이 15만원(3장)인 굉장히 비싼 스튜디오입니다.)
게다가 필름까지 잘못 보관하여 한 컷의 필름이 손상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속상해하니 그분들은 여러 장중에 한장을 가지고 뭘 그러느냐는 식의 반응이었습니다.
그 사진 여러분들도 보시면 공감하시겠지만 진짜 백일 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컷이었거든요.
그 곳에서는 사과조차 하지 않은 채 재촬영해주면 되지 않냐고 하더군요.
하지만 제 아기...다시 찍기에는 너무 커버려서 백일사진으로서의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구하려고 밀착뜬 사진을 가져가려고 하니까
선금 10만원에도 불구하고 절대 가져갈 수 없다고 하더군요.
실랑이가 벌어진 끝에 사장이란 분이 입에 담기에도 험한 욕을 하더군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나왔습니다. 수준이하의 사람과 더이상 얘기하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돈을 버는 것이 장사를 하는 사람의 목표이겠지요.
하지만 방법은 정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은 찍는 사람의 마음이 담긴다고 합니다.
그런 기본적인 인성과 직업윤리관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이 '아기전문 스튜디오'라는 이름을 내걸고
우리 귀여운 아기들의 모습을 필름에 담아내는 작업을 한다는 게 속상합니다.

저는 지금 저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너무 후회합니다.
연예인들이 찍었던 곳이라는 말만 듣고 혹한 제 자신이 참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연예인 사진은 잘 찍어주었겠죠. 아마 광고효과를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해 무료로라도 찍어줬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같이 평범한 사람은 아무렇게나 찍어주든 어떻겠습니까? 연예인처럼 사회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니...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찾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선금 10만원 날리는 것 저희에게는 적지않은 금액이므로 정말 아깝습니다.
하지만 더 잠못 이룰 정도로 속상한 건 우리 아기 일생의 단 한번 뿐인 백일 기념사진을 남겨놓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귀여운 아기 얼굴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 미안함이 남을 것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긴 글을 올리려고 할 때 남편과 가족들이 말리더군요.
그냥 재수 없었다 생각하고 정신 건강에 해로우니까 그 시간에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라고...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생각했습니다.

아기 엄마라는 것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저같이 서툰 초보엄마의 경우에는 더더구나...
요즘은 길에서도 우는 아기가 있으면 그냥 지나쳐지지가 않더라구요. '왜 울까? 어디가 불편하지?'
아기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는 지금은 처녀때와는 달리 세상 모든 아기들이 다 사랑스럽더라구요.
아기랑 관계된 선택을 할 때 엄마들이 얼마나 조심스럽고 조바심나는 지 잘 알기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됐어요.
제 글 읽고 판단은 엄마들이 하시겠지만
'압구정동 베이비스토리'에서 촬영 생각하고 있는 엄마들은 좀 더 신중히 결정하세요.

우리 아기 돌 때는 저희는 미국으로 유학갑니다.
여기서 돌사진을 찍고 갈지 말지 아직 모르지만 여기서 찍게 된다면 정말 여기저기 열심히 알아볼 거에요.
정말 괜찮은 사진관 찾을 거에요. 그 때 다시 글 올릴께요.

제 글이 다른 엄마들의 선택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저 포함해서 엄마들! 우리, 아기 열심히 예쁘게 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