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788

한심한 친정


BY 속상 2001-04-10

내게는 한심스런 친정이 있다.
정말 속상해서 못살겠다.

아들하나 데리고 이혼한 남동생이 엄마와 살고 있다.
남동생은 못되거나 하지는 않지만, 자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고졸인데, 탄탄한 직장에 다니다가 imf때 그만 두고는 지금껏 직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직장을 그만 두고 나니, 올케가 바로 이혼을 하자고 했고, 이혼해서 아들을 남동생이 맡았다.

그런데, 문제는 남동생이 직장이 없다는 사실이 아니고, 생활 습관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진장 게으른데다가 뭘 물어도 시원하게 대답하는 법이 없고, 집안에 뭐가 고장나도 그래서 좀 고치라고 해도 세월이 가는지 마는지...그저 한다는 말만 하고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하지를 않는다. 그래서 빨리 하라고 한마디라도 할라치면 오히려 성질을 부리면서 안한다고 벌렁 눕는다.
한마디로 같이 한집에서 쳐다보고 살기엔 속에서 열불이 나서 두눈 뜨고 제대로 봐 줄 수가 없는....그리고 아침에 제 시간에 제가 알아서 일어나는 법도 없고, 자기 몸관리도 전혀 안한다. 물론 지금은 건강하지만, 밥도 먹고 싶을 때 콱 먹고, 잠도 아무렇게나 자고, ....한마디로 믿을 구석이 없다.

패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자기는 자기가 꽤 괜찮은 사람인줄로 착각하면서 살고 있다는게 더 문제다.
착하긴 하다. 주사도 없고, 허튼일로 속썩이는 일도 없는건 사실이지만,ㅏ 이 어려운 때에 약은 구석은 하나도 없으면서도 자기 스스로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 않으니....

자기는 항상 자기가 잘하고 있다고 ?굔쨈?
그래....남자가 고졸의 학력으로 대한민국에서 인정받고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잘 알고, 그래서 맘이 아픈 것도 사실이다.
착하고 성실하지만, 그거 하나만 가지고 살기에 대한민국 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척박한지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 동생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그래 놓고도 고집만 세서 누구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뭐든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것도 없다.
그저 되는대로 닦치면 하고, 자격증같은거나 이렇게 쉴 때 좀 따놓으라고 하면 필요하지도 않은데, 해서 뭐하냐고 한다.
한마디로 준비를 전혀 안하고 산다는 말이다.
그러니, 정작 필요할 때는 이미 때가 늦은거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는데도 여전하고, 그러면서도 자기는 잘하고 있다는데야 할말이 없지.

그런데, 엄마하고 살면서 부딪히는게 만만치 않은 것같다.
엄마는 돈없는 노인네다.
당장 동생이 벌지 않으면 살기가 너무너무 힘드니, 동생에게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너는 왜 그렇게 사냐...잔소리가 많고,
동생은 그런 엄마가 자기를 전혀 인정해 주지는 않고 돈을 벌라고 그런다고만 생각한다.
동생은 솔직히 누구에게 인정을 기대하기엔 부족한 구석이 많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절대로 자식을 인정해 주지 않는 사람이다.
자식에게 칭찬은 절대 안한다. 항상 나쁜 점만 꼬집고 되풀이해서 말하지 절대, 결단코 칭찬은 안한다.
자식들이 크게 잘못하는게 없이 순종하면서 자랐어도, 엄마에게는 우리는 항상 바보같고, 제대로 하는일없는 자식들 이었다.

그 점이 나도 동생도 엄마에게 너무나 불만이었고, 난 일찌감치 엄마의 인정 같은건 포기했다.
아무리 잘해도 절대 칭찬은 안하니까......아무리 잘해도 어쨌든 무슨 꼬투리라도 잡아서 잘못했다고만 하니까....엄마가 원래 그러니, 애시당초 엄마의 인정을 기대하는게 어리석은 짓이라는걸 난 일찌감치 깨달았다.

조카를 엄마가 봐 주는 것도...엄마가 조카에게 조금만 소리를 지르거나 해도 동생은 난리가 난다.
엄마 입장에서 보면 , 늙으막에 손주 키우면서 아무것도 못하고 집안에서 꼼짝 못하니...답답하고, 또 몸도 많이 아픈 모양인데, 동생은 자기 자식만 귀하다 하고, 엄마가 아프다고 해도 위로의 말한마디 안하는 모양이다.

내 보기에는 그 위로의 말을 기대하면서 섭섭해 하는 엄마도 딱하다.

그저 따로 사는게 제일인데, 조카는 동생이 키우던지...엄마도 능력이 있었다면 아들하나 바라보고, 동생의 말한마디에 울고 웃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러니, 전화만 하면 내게 속상한 이야기 파붓고...나 정말 미치겠다.
나도 피가 섞였는데, 그런말 들으면 속이 상하지, 멀쩡할리 없다.
엄마말 들어보면 엄마의 입장도 이해가 가고, 동생말 들어보면 동생의 입장도 이해못하는 바 아니다.

내 보기엔 동생도 한심하고, 엄마도 딱하다.
자의든 타의든 상관없이 이혼했고, 직장도 아직 구하지 못했다.
아침마다 늘어지게 자고 자기가 잔 이불도 개지 않는다.
밥도 먹고 싶으면 먹고, 먹기 싫으면 안먹고, 새벽에 자고 싶으면 자고, 낮에 자고 싶으면 낮에자고...지 아이가 , 아직 어리긴 하지만,ㅏ 무슨 짓을 해도 이쁘다 이쁘다 ...다 받아주기만 하고.
가끔 막노동 할 일이 있으면 나가는 데, 그것도 엄마가 30분에서 1시간을 죽도록 깨워야 겨우..일어나서 씻고 느릿느릿 나가고.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가.

엄마도 마찬가지다.
안깨우면 될 것을 끝까지 깨우면서 싸운다.
깨우는 이유는 동생이 돈을 안벌면 엄마 사는게 답답해 지기 때문이란다. 동생 버는 돈에 목숨걸고 살고 있는 거다.
아프다고 아들한테 하소연해도 아들 반응이 없다고 섭섭해서 울고, 조카한테 짜증 부리고.
매일 나한테 하는 소리는 내가 늙어서 이게 뭐하는 짓이냐...남들은 문화센터니, 어디니 잘만 사는데....이런 말만한다.
난 엄마가 이런말, 하는 것도 너무나 딱하다.
어렵겠지만, 엄마가 엄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살았으면 좋겠다.
한평생, 즐거운 일이란 없는 엄마의 인생이 딱하고 때로는 지겹다.
즐거운 일...엄마는 즐거운 일을 만들줄 모르는 사람이고, 매일 복이 없네 어쩌네 그런 소리만 한다.

오늘 엄마가 그런다. 동생과 엄마는 복도 지지리도 없다고...그래서 내가 그랬다. 복이 없는게 아니고 처신을 잘못하는거라고.

시집도 편치 않고, 매일 죽는 소리만 하고, 친정도 그렇고..
내 남편도 불쌍하고 나도 불쌍하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엄마하고 같이 살자니, 조카는 누가 키울 것이며, 시부모님도 우리하고 같이 살고 싶어하시는데, 남편 눈치도 보이고...특히나 엄마는 항상 입버릇처럼 나랑은 같이 모산다고 한다. 엄마는 아들 하나만 보고 살았지, 나한테 그렇게 정주고 살지도 않았고, 나도 엄마하고는 같이 못살겠다.

그렇지만 엄마도 동생도 조카도 불쌍하고...내가 구체적으로 도와줄 어떤 방법도 생각나지 않고...조카를 좀 키워주고 싶어도 내 자의가 아니라 환경적인 문제 때문에 그럴 수가 없는 입장이다.

그러니 이 노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엄마의 늙으막이 너무 안쓰럽고, 동생의 앞날도 한심하고, 어린 조카의 앞날은 또 어떤가....
매일 엄마의 하소연을 듣고 있다가 한동안은 우울증과 불면증에 걸려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오늘도 통화하고 났더니, 일이 손에 안잡히고.... 한숨만 나오고.
엄마는 나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내내 한다는 소리는 '살고 싶은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다. 콱 죽어버려야지.."
이 말 듣는 것도 이젠 끔찍스럽게 지겹다.

나 지금 임신중인데, 엄마는 여전히 나한테 하소연하고...나는 여전히 그 소리 들으면 마음이 갑갑하고, 우울하고.

이런 상황이 그저 짜증스럽다.
이젠 남편 보기도 낯뜨겁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