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889

이사한 집까지 쫓아다닌 악귀는 이웃주부


BY 무서버 2001-04-13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다. 인간에
게 남이 잘되는 것을 은근히 질시하는 심성이 숨어있음을
지적한 얘기다. 그렇다면 다른 부부의 금실도 이런 질시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최근 경찰에 꼬리가 밟힌 한 여인의 ‘한풀이’ 스토킹 행
각을 보면 이젠 남 앞에서 함부로 부부 금실을 과시하는 것
도 삼가야 될 것 같다. 특히 상대가 가정적으로 불행을 겪
고 있는 당사자라면.

부부생활이 원만치 않았던 이 여인은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이웃 부부를 지난 1년7개월 동안 갖은 방법으로 괴롭혀 왔
다. 이유는 단지 불행한 자신과 달리 이웃 부부의 금실이
너무 좋다는 것 때문. 문제의 여인은 이웃 부부의 금실을
깨기 위해 외도에 얽힌 음해성 편지를 보내거나 협박 전화
를 수없이 걸었다. 심지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편지에
칼날을 붙여 보내기도 했을 정도. 나중엔 상대 부부의 아내
이름으로 ‘밤이 외롭다’는 내용의 편지를 만들어 여기저
기 뿌려대기도 했다.

자신의 한을 엉뚱하게도 남의 사랑을 깸으로써 풀려했던 스
토커 여인. 여인의 그릇된 한풀이는 결국 그녀를 더 깊은
불행 속에 빠뜨리고 말았다.

지난 99년 9월의 어느날 경기도 광명시 A아파트. 주부 양
진옥씨(가명)는 편지함에서 자신 앞으로 온 편지 한통을 발
견했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지 않은 ‘익명의 발
신자’로부터 온 편지였다.

‘누굴까’하는 호기심으로 편지봉투를 뜯어 본 양씨. 놀랍
게도 편지에는 양씨의 얼굴을 순식간에 잿빛으로 만들어놓
을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나랑 네 남편이 전에 어떤 사이였는지 아느냐’.
첫줄을 읽자마자 양씨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이
것은 충격의 서막에 불과했다. 이어진 남편과의 성관계 등
을 묘사한 대목은 얼굴이 달아오를 만큼 노골적인 내용이었
던 것.

그날 저녁 양씨는 남편 김강무씨(가명·32)와 ‘설전’을
벌여야만 했다. 태어난지 얼마 안 되는 아들을 사이에 두고
금실 좋기로 소문났던 부부의 첫싸움은 그렇게 시작됐다.
김씨는 자신을 의심하는 아내에게 “그런 일이 없었다”며
“누군가의 장난이 분명하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화가 날
대로 난 양씨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다음 날 아침 김씨는 ‘구겨진’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아
파트 입구까지 나와 매일같이 남편 볼에 입을 맞추며 배웅
을 하던 양씨였지만 이날만큼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던 것.
그런데 이 장면을 멀리서 보고 있던 여인이 있었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살고 있던 주부 박강자씨(가명·34). 김씨
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그 편지는 바로 박씨가 보낸 것이
었다. 내용 역시 모두 박씨가 지어낸 거짓이었다.

다른 날과 달리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한 채 집을 나서는
김씨의 모습 때문이었을까. 박씨의 입가에는 어느새 만족감
이 담긴 미소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박씨가 양씨에게 음해성 편지를 보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질투’ 때문이었다.
자신의 집 베란다에서 마주 보이는 김씨 부부 집 베란다를
통해 이들 부부의 다정다감한 모습을 자주 지켜봤던 박씨.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밖에서까지 입맞춤으로 애정을 나
누는 이들 부부는 박씨에게 한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
러나 자신이 경험하지 못하는 행복한 삶을 사는 김씨와 양
씨 부부에게 묘한 질투심을 느끼게 됐고 결국 걷잡을 수 없
는 증오심으로까지 발전하게 됐던 것.

박씨에게도 가정은 있었다. 7년 전 한상일씨(가명)와 만나
두 아이를 낳고 살림을 꾸려온 것. 하지만 박씨의 결혼 생
활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신혼여행 첫날부터 남편과 싸
움을 벌인 이후 따뜻한 대화 한번 나눠보지 못했을 정도로
냉랭한 부부생활을 해온 것. 부부관계 역시 1년에 한두번
정도 에는 불과했다.

그런 박씨에게 있어 매일같이 다정한 모습으로 부부애를 과
시하는 김씨 부부는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었다. 더구나
아파트 단지 안에 하나밖에 없는 백화점에서 마주칠 때마다
늘 ‘꼭 붙어’ 있는 김씨 부부의 모습은 박씨의 감정에 불
을 지르고 있었다.

김씨 부부에 대한 질투심을 혼자 키워오던 박씨는 급기야
증오의 대상이 되고만 이들 부부를 ‘응징’할 생각을 품게
됐다. 그 시작이 바로 ‘음해성 편지’였다. 마치 박씨 자신
이 김씨의 옛 애인이었던 것처럼 꾸민 편지를 보내 양씨의
질투를 유발시킨 것.

김씨 부부의 다소 냉랭해진 모습을 보며 ‘효험이 있다’고
여긴 박씨는 그날 저녁 또 한통의 편지를 김씨 집 편지함에
넣었다. 먼저 보낸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김씨의 옛애인
임을 강조하는 내용. 한술 더 떠 김씨와 가졌다는 성관계에
대한 ‘노골적인’ 현장묘사까지 담겨져 있었다. 양씨의 분
노와 김씨의 당혹스러움이 더욱 커졌음은 불 보듯 뻔한 일.

2~3일에 한번씩 보내는 ‘괴편지’로는 모자랐는지 박씨는
‘괴전화’까지 하기 시작했다. 편지함을 뒤져 나온 고지서
를 통해 이들 부부의 전화번호를 알아낸 것. 박씨는 “내가
편지를 보냈던 여자”라며 전화를 해 “네 남편 화끈하더
라”는 식의 말을 쏟아내곤 했다.

이미 도를 넘어서버린 박씨의 행각은 급기야 양씨 이름으로
된 편지를 사방에 뿌리는 것으로까지 이어졌다. ‘나는
XXX동 XXX호에 사는 양진옥입니다. 난 요즘 밤이 너무
외롭습니다. 저를 이해해주시는 분 누구라도 제게 연락 주
세요’라는 내용의 편지를 아파트 곳곳의 편지함에 꽂아넣
고 다닌 것. 동일인의 필체로 보이는 이 편지로 인해 김씨
에 대한 양씨의 오해는 풀렸지만 가슴 속 상처는 점점 커져
갈 수밖에 없었다.

참다못한 김씨는 지난해 3월 경찰에 진정서를 냈다. 이웃에
사는 듯한 웬 부녀자가 얼토당토 않은 거짓이 담긴 편지와
전화를 자꾸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다음 달 김씨 부
부는 부천으로 이사를 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박씨의 ‘시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김씨 부
부가 이사하던 날 이삿짐센터 차량의 전화번호를 적어둔 뒤
연락을 해 김씨 부부가 새롭게 자리잡은 집의 주소와 전화
번호를 알아냈던 것.

그 후 박씨의 행각은 ‘협박’ 수준으로 치닫게 됐다. ‘아
들을 죽이겠다’며 편지봉투에 연필깎기용 칼날을 붙여 보
내는가 하면 전화를 걸어 양씨나 김씨가 전화를 받으면 그
냥 끊어버리는 식으로 김씨 부부를 최근까지 괴롭혀 왔다.

한편 박씨의 스토킹이 계속되는 동안 경찰은 김씨가 낸 진
정서를 토대로 수사를 벌이고 있었다. 일단 김씨 집에 걸려
오는 전화를 대상으로 발신자 추적에 나섰지만 신통한 결과
를 얻진 못했다. ‘전화번호 추적’을 우려한 박씨가 아파
트 단지의 백화점에 있는 공중전화만을 이용해 협박전화를
걸었기 때문.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경찰은 괴전화의 주요 발신
장소가 아파트 단지의 백화점 공중전화인 점에 착안해 수사
망을 압축해갔다. 이 과정에서 백화점 CC-TV에 찍힌 수상
쩍은 여인의 모습이 포착됐다. 공중전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다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끊어 버리는 장면이 수십 차
례 녹화된 것. 경찰은 이 여인의 얼굴을 단서로 A아파트
주변에서 탐문수사를 펼친 끝에 지난 3일 박씨를 검거할 수
있었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박씨는 1년7개월간에 걸쳤던 그녀의 협
박행각에 대해 “너무 질투가 나서 그랬다”고 말했다. 1년
에 한두번 ‘관계’를 가질까 말까 할 정도로 메마른 부부
생활을 하는 자신의 처지가 양씨에 비해 너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는 것. 마음으로도 몸으로도 사랑받지 못해 쌓여있
던 불만이 결국 단란한 다른 가정을 깨려는 ‘스토킹’으로
발전한 셈.

채워지지 않는 자신의 욕구를 음해와 협박으로 풀어보려 했
던 박씨. 그 대가는 ‘따뜻한’ 사랑이 아닌 ‘차가운’ 쇠
고랑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