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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적그적


BY kori 2001-04-29

결혼한지 7년째인 주부다. 7년이면 적지않은 세월이고, 그 세월속에 시댁에 대해서 무디어지거나 적응할법도 한데 나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지나간 일들에 대해 원망의 감정이 더 커져만간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그래서 더욱 힘들다. 차라리 실컷 미워하면 그만인데 그게 잘못이라는걸 알기 때문에 그러지도 못한다. 미운감정과 사랑과 용서라는 신앙의 양심이 치열하게 싸운다. 하루는 미워하다가 다음날은 용서.... 그 반복이 7년째이다.

난, 시댁의 형편에 대해 전혀 모르고 결혼을 했다. 가난하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랬더라면 학생신분이었던 내 남편과의 결혼을 미루었을것이다. 결혼을 하고서 1년쯤 지나서야 나는 시댁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난한 티를 전혀 내지않는 시댁이어서 감쪽같이 몰랐다. 사실, 가난하다는것,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극복되어질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으니까. 문제는 시부모님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문제였다. 시아버지는 말하자면(주위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사깃꾼이나 다름없었다. 주위사람들에게 금전적인 피해를 주면서도 미안하거나 갚으려하거나 하지않았다. 교회헌금까지도 손을 댔다. 교회사람들이나 친척에게 빚을 지고도 갚으려하지않았다. 나는 교회에 가는게 참 곤욕스러웠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첫아이를 낳던날, 시아버지는 분만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내 남편을 끌고 갔다. 시어머니는 아이는 여자혼자 낳는거라고 시아버지의 행동을 거들었다. 뱃속의 아이가 한달째 성장을 멈춰서 유도분만을 하고 있었는데, 담당의사는 혹시 수술을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던 참이었다. 남편은 어이없이 끌려갔다. 옆에 같이 있었던 친정식구들은 아이를 막 낳고 나온 내게 말했다. 내 남편, 끌려가지않을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섭섭해 하지말라고, 시아버지 대단했다고...
학비를 벌기위해 내 남편은 신문배달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시부모님은 거의 전혀 신경을 쓰지않았다. 남편은 다친 몸으로 배달을 나갔다. 한달수입이 15만원이었는데 그거라도 벌어야 한다면서. 시어머니께 사정을 해서 그 돈을 얻으려고 했지만 시어머니는 꿈적도 하지않았다. 그 때쯤 시부모님은 시동생을 미국연수까지 보냈었다. 2주일 경비가 150만원든다고 했는데... 게다가 시누이는 성악레슨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15만원이 없다시며 거절했다. 시동생은 대학4년을 부모님께 의지하며 아르바이트 한번 하지않고 졸업을 했다. 내 남편은 공사장일과 신문배달을 하며 학비며 생활비를 벌었다. 시댁형편을 안 이후로 우리는 시댁의 도움없이 우리힘으로 살려고 노력했고, 그랬다. 그런데도 우리가 처음 요청한 도움도 거절하시는거였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것.....
그 때 쉬지못한 남편은 후유증으로 무릎연골에 이상이 왔다. 가해자였던 우리는 친정도움으로 합의금을 마련했는데, 시어머니가 그 돈이 아까웠는지 하시는 말씀이 그랬다. 얘, 차라리 들어가 사는게 낫다더라.... 돈 650만원 때문에 아들을 감방에 가라는 어머니.
우린, 이혼을 할뻔도 했다. 부부사이의 문제가 아니었다. 시아버지가 우리몰래 남편명의로 빚을 천만원이나 졌다. 은행직원은 그 돈을 갚지않으면 신용불량자로 취업도 못할거라고 우릴 괴롭혔다. 시부모님은 자식이 그정도도 감당못하느냐, 더한것도 감당하고 살아야지라면서 오히려 당당하셨다. 따지고 드는 내게 그정도도 감당못하는 며느리는 필요없다며 남편에게 이혼하라고 역정을 내셨다.
난, 지금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못해 왼팔을 거의 쓰지 못한다. 친정에 가서 산후조리를 하려했는데 시어머니가 반대를 하셨다. 당신이 하시겠다며. 그런데 3주도 채 해주시지않으신데다가 아이를 낳자마자 퇴원한(의료분쟁이 시작한 시점이어서)나와 아이를 거의 돌보지 않으셨다.
우린, 지금 시부모님과 떨어져 지방에 산다. 오늘은 시동생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나는 처음으로 내 위주의 행동을 했다. 지금껏 그래도 도리는 해야한다며 싫어도, 힘들어도 시댁에 맞춰왔었다. 나는 결혼식에 가지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못갔다. 7시간 넘게 걸리는 서울에 아이를 안고 갈 힘이 내겐 없다. 팔이 아파서 아이를 10분도 안지 못하는 상황이므로. 물론 시부모님, 내일은 내게 역정을 내실것이다. 그런 역정들이 내게는 사소롭다. 지나간 일들은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으므로. 38Kg으로 몸무게가 줄어 뼈만 앙상히 남고, 거식증에 걸려 하루에 커피 7잔으로 일주일을 지냈던적도 있었는데 그때에도 나는 내위주의 행동을 하지않았었다.처음, 난, 시댁을 거슬렸는데, 아아, 왜 이리 마음이 홀가분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