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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트렸다....


BY 미류나무 2001-05-22

한동안 참 우울했다.
마음을 다스려 보려고 혼자서 무척이나 노력을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난 내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래...남편이 꼬박꼬박 갖다주는 월급가지고 집에서 이렇게 유유자적하게 살 수 있다는거.. 참 감사한 일이다.
남편, 월급 갖다주고는 내가 어떻게 쓰던지..그저 믿고 맡겨주고 간섭하지 않는 것, 시집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 그나마도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것, 먹고 싶은거 있음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사먹을 수 있다는 것...우리 남편, 그런거 가지고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그리고 저축할 수 있다는 것..

아..근데, 그게 다 최면임을...내가 행복하지 않음을 ..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내가 미쳐가고 있음을..

남편은 무척 바쁘다.
얼굴 보기도 힘들만큼 바쁜 사람이다.
일에 지쳐 쓰러져 자고, 일에 쩔어서 주말도 휴일도 없는 사람이다.
출장도 많고, 주말도 없다. 그저 일..일...일 뿐이다.
집에 같이 있어도 남편의 머릿속에는 온통 일 생각 뿐이다.
그래, 안다.
이런 남편이 있기에 내가 집에서 퍼져 잠이나 자고 텔레비젼이나 보면서 먹고 싶은거 배터지게 먹고 늘어져 있을 수 있다는 걸.
그런데, 이런 생활이 반복되니까 내가 견딜 수 없어지고 있었다.
남편은 일 때문에 수척하게 말라가고, 그 사람..너무너무 힘들어 하니까 그래도 남편보다야 내 팔자가 편한거 같아 아무런 넋두리도 못하고..그렇게 나는 점점 미쳐가고 있었다.

임신 9개월이라 몸도 마음도 피곤하고 버거웠지만, 남편이 힘들까봐 집안일 신경쓰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남편의 건강 신경쓰이고, 그 사람의 힘듬이 신경쓰이고, 나때문에 또 신경쓰이게 하지 않으려고 나는 미치고 있는데, 암말도 않아고 잘해주려고만 했다.
어느날부턴가 남편도 자기만 생각하고 내가 힘든지 어떤지에 대해선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곳에서 이렇게 갇혀 산다는거...
남편, 그나마 남편이 나의 유일한 말동문데, 그 사람은 나의 말을 상대해 줄 시간도 여유도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이고..

힘든 나를 돌아봐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내가 챙겨야 할 사람들만 눈에 보였다.
남편도 챙겨야 하고, 뱃속의 아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겁게 생활하려고 눈물겨운 노력도 했고, 친정의 힘든 이야기도 들으면서 뭔가 도움을 주어야 할 것 같았고, 시집에서도 가끔씩 뭐라뭐라 하시면 거기도 신경 써야 할 것 같았다.
힘든 남편, 나에게 가끔 힘들다고 말하면, 난 나 힘든 것은 뒤로 미루고, 그 사람이 걱정되고, 힘들다고 말한것에 신경쓰이고..


그렇게 살다보니, 내가 점점 미치고 있었다.
혼자 있으면 그저 눈물만 나고, 울다가...정신 차리려고 노래 부르다가..또 서글퍼서 울다가..아기한테 미안해서 걱정하다가 또 울다가.

그러다가 텨졌다.
모처럼 주말에 쉬는 남편과 말다툼을 했다.
근데...내가 미친년처럼 남편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남편은 어이가 없어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 미친사람이었다.
그렇게 소리 지르고 기운이 없어서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는데, 눈물만 났다.
나 왜 이렇게 살고 있는걸까.....

남편도 같이 소리 지르고 나가버렸다.
또 혼자였다.
낮이었는데도 혼자인게 너무 무서워서 막 울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한참뒤 남편이 들어와선 내게 ....'너 요즘왜 그러냐? 난 널 이해하지 못하겠다. 너 미친 사람 같애. '

그래...이해하지 마라.
나 미친거 맞는거 같다.
너가 날 이해 하겠니...너는 일이 전부고, 난 아무도 날 돌아보는 사람없이 내가 돌아봐야 할 사람들만 보이는데, 나도 이젠 지치고 힘들다.... 이해하지 마라...나 미쳤다고 그렇게 손가락질 하라고...

기운도 없어 말도 못하고, 눈감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다 소용없다..싶고, 그저 아기에게만 미암해서, 내 뱃속에서 아무 영문도 모르고 그 시끄러운 괴성과 스트레스에 괴로와해야할 죄없는 내 새끼만 불쌍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날 밤, 그동안 너무나 많이 힘들었었노라고, 아무말 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힘들고, 괴로웠었다고 남편에게 말하면서...2년동안의 설움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남편이 일 때문에 너무나 지쳐서 차라리 모든걸 다 포기하고 싶다고 할 때마다 , 힘든 남편 생각하느라 암말도 못하고 챙겨주어야 겠구나..생각했던것 . 내가 나를 깍아먹고 있는 일이었다는걸 몰랐었다.
친정식구들, 시집식구들의 그 수없는 넋두리, 요구 속에서 그것도 내가 챙겨야 할 몫이라 여기고, 참고 참고...그 듣기도 싫은 이야기 다 들어주고 있었던 것도 나를 깎아먹고 있는 일이었다는걸 몰랐었다.

나는 성인도 아니고, 군자도 아니고, 그저 사람인데,...냐 혼자서 스폰지가 물빨아들이듯 그저 빨아들이고만 있었다.
아무도 내 아픔엔 관심도 없고, 나의 쓸쓸함과 외로움엔 관심도 없었다.
그들 잘못도 아니다.
아파도 아프단 소리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나의 바보스러움이 잘못이다.
그 누구도 내가 이렇게 앓고 있었다는걸 알지 못했다.

몇시간을 서럽게 엉엉 울고..... 사람들도 무섭고, 만나고 싶지도않고, 무력하고...모든일에 자신도 없어지고..우울하고...
그랬던 지난 2년이 떠올랐다.

남편은, 몰랐다고 했다.
몇시간이고 울고 있는 나를 보고있었다.

울고 났더니, 숨통이 좀 트이는거 같았지만, 나의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병원엘 가보아야 할까....

이젠 아무도 이해하지 않으련다.
친정의 걱정도 이해하지 않으련다. 듣지도 않으련다.
시부모님의 요구에도 눈감고 귀 막으련다.
남편에 대한 배려도 안하련다. 내가 힘들면, 남편도 괴롭히련다. 남편이 힘들어도 , 내가 힘들어서 못견디겠으면 못살게 굴련다. 잔소리하고 바가지 긁고 징징거리고 소리지르고 ...나쁜 아내가 되련다.

나만 생각하려한다.
아무도 아무도 생각하지 않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