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생활하면서 더러 속상한 일들이 일어나긴 했어도 여기에
와서는 다른 분들의 속상한 글을 읽으면 나의 속상한 일은 별 것도
아니다 싶어 몇 번 글을 쓰려다 말았습니다.
그런데 요전에 한 친구와 만난 이후로 뭔가 풀리지 않는
속상함이 있어 여러분들께 이야기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십대 초반의 주부입니다.
물론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종류의 사랑도 좋아보이고 때로는
동경도 해보지만 그래도 실제 생활에서는 애호박을 찌개에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가 더 절실한 문제이고 하루의 할 일이 소홀하지나
않았나하는 것을 체크하다보면 그런 생각을 오래할 겨를도 없이
하루가 지나가곤 한답니다.
그런데 몇일 전에 참으로 오랫만에 저의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답니다.
그녀는 몇 년 전에 다른 지방으로 가서 살다 온 덕분에 그나마
유지하던 친구들 관계가 소원해져 제일 친했던 나와의 관계가
유일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주변에 별 교제없이 지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도 나의 궁금증이 발동하여 몇차례의 연락을 시도하여 겨우
만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집에서 만나기로해 거실 쇼파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처음에 볼 때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그녀는 좀 수척해진 것 같았고
눈의 촛점을 먼 곳을 바라보는 듯이 공허해보이기도 하고
나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다가 잠깐 잠깐 딴 생각에 빠져드는 듯이
보이다가 희미하게 웃음지으며 다시 이야기속으로 들어오는 모양이
뭔가 예사롭지 않은 일이 있어 보였습니다.
몇 번의 나의 다그침에도 전혀 이야기하지 않다가 내가 화를 내며
돌아갈 쉬늉까지하자 그녀는 나에게 사실을 털어 놓았습니다.
한남자와 사이버상으로 서로 메일 몇번 주고 받았는데 그녀가
빠져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것도 그녀가 의도적으로 메일을 보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메일을 보낼 때 실수로 잘못보내 서로 확인하려다가 알게된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정말 남자와의 메일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기대도 상상도
하지 못하고 살던 그녀에게 그사람과의 몇 번의 글을 주고받다가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그사람의 영혼에 반했다고 하더군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나의 친구는 자기식의 룰을 정해놓고 그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 어찌보면 답답하고 어떤면에서는 성실한 그런 사람인데
어쩌다가 글 몇편으로 영혼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넋이 나간 듯한 그녀가 혹시 그사람을 만나서
속되게 말하자면 그런 관계를 가진 것이 아니가 의심도 해보았지만
정말 그런 일은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더이상 염려할 일도 아닌 것 같았던 것은 그녀가 나즈막이
이제는 더이상 메일도 서로 하지않아 하고 말하며 벌써 끝난 일이야
하며 힘없이 웃는 것 이었습니다.
이해가 가지않아 별 것 아닌 일에 빠져드는 친구에게 화가 나려다가
왠지 그 모습이 측은하기도하고 여러가지 생각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다
여러분에게 털어놓는 것입니다.
내가 이야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현관에 놓여있던
슬리퍼를 신으면서 그녀는 그래도 잠시였지만 행복했어하고 들릴락
말락 속삭였습니다.
그녀의 일시적인 외로운 환경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나같은 사람의
차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고차원적인 만남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녀는 주관적인 입장이겠지만 행복해 보이기도 했고 어찌보면
쓸쓸한 아름다움 같은 것이 어려있게도 보였습니다.
그래도 딱하고 갑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끝났다고하니 다행한 일이지요.
속상합니다. 아직까지 그 친구의 어리석은 얼굴을 생각하면.
여러분 생활에 충실하고 마음 단속 잘해야겠다고 생각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저의 이야기 들어주셔서 고맙구요 알찬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