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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며느리의 죄


BY 다음 2001-06-28

결혼 4년차에 32개월,10개월 두 아이의 엄마. 내 남편은 3형제 중 맏이.결혼해서 처음 옆 집에 살 때는 시댁과 관계가 너무 좋았는데...시어머니,첫 손주 너무 예뻐하셔서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 도장 찍으시고 시아버지 주사까지(지금은 아니지만)...그때부터였다. 시댁과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자동차로 20분 거리지역으로 이사를 왔다. 작년까지 꼬박꼬박 일요일마다 갔는데 그게 너무 부담스러웠다.이제는 시댁에 가는 것 자체가 싫다.일주일 내내 아이들에게 시달려 내 시간은 주말 뿐인데 일요일마다 시댁에 가서 하루 종일 TV보고 설거지하고...


작년말에 시동생이 결혼을 했다.1시간 정도 먼 거리에 사는데 동서는 맏이가 아니라는 이유 하나로 시댁일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그저 한 달에 한 번 잠깐 왔다 갈 뿐.시댁에 전화도 거의 하지 않고,모든 일을 우리가 알아서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시어머니도 그렇다.우리는 당연히 아침부터 가서 저녁까지 있는 걸로 생각하고 동서네는 오후에 잠깐 들리는 것에 만족(?)해하신다.

지난 토요일 친척집에 집들이를 다녀왔다.우리 그리고 동서네 똑같이 새벽까지 있다가 집에 왔다.다음날 시댁에 가기로 한 날이어서 우리는 11시경에 갔다.(작은 애가 늘 새벽 6시에 깨기 때문에 나는 잠을 거의 자지도 못했다.) 동서네는 늦게 일어났다며 오지 않았는데(이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기가 막힌 건 시아버지의 말씀!!!
-피곤한데 쉬어야지 어떻게 와.....


맏이는 피곤해도 피곤하지 않다???


나는 다 같은 자식이기 때문에 똑같이 자식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왜 나만 희생해야 하나? 내 죄는 오로지 맏이로 태어난 남자를 좋아했다는 것, 그것 뿐이다. 시댁 생각만 하면 미칠 것 같다.숨이 막힌다.오죽하면 남편이 고아였다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까지 했을까.내 안에서 두 개의 내가 늘 공존한다. 맏며느리로서의 온갖 당위적 의무를 내팽개쳐버리고 싶은 마음,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죄스러워 괴로워하는 마음 ...


같은 며느리라도 맏이가 아닌 며느리들은 맏며느리가 똑바로(?) 자기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한다.아니,강제한다.사회의 일반적인 통념에 적극적으로 편승하면서 맏이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더욱 좁힌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나를 죽이는 마음공부라도 해서 충실한 맏며느리의 역할을 해야 하나?
아님,나의 욕구에 충실한 대신 세상으로부터의 비난을 감수해야 하나?
아님,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접점은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