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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BY 곰곰녀 2002-01-23

요즘은 머리 속에 좀 복잡합니다.
언제부턴가 '나'는 없어지고,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사는 느낌입니다.

처음 결혼을 했을 때, 가족끼리 데면데면한 분위기가 우리 친정과는 사뭇 달라 나름대로 많이 노력하고 살았습니다.
어른은 어른대접을 해주고, 아이를 아이 대접을 해주고,
집안의 경조사도 꼭꼭 챙겨가며, 내가 이러면 다른 분들도 함께 챙겨주실거라고 믿었습니다.

친정에서는 어릴 때부터 풍족하게 자랐고, 결혼을 하고도 늘 친정식구들이 모두 챙겨주고, 수입이 적은 저희가 오히려 도움을 받았었죠.
가족들끼는 그렇게 다 주고 받고하며 사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결혼생활이 5년이 되어가는 지금,
전 자꾸 속이 좁아지려고 합니다.

친정과 시댁에 가능하면 꼭같이 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봉건적인 사고방식에서 못벗어난 시댁 어른들 때문에 친정에 하는 일은 몰래 하는 일이 되어가고,
시댁에는 잘하면 잘 할수록 자꾸 족쇄처럼 발목을 붙들리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요?

시부모 생신에 꼬박꼬박 선물하고, 명절이나 제사에 비용 드리고, 한달에 얼마씩 용돈드리고, 시댁 조카들 입학,졸업선물과 생일선물까지 챙기는데, 우리 시댁식구들은 시누들도 그렇고 아주버님들도 그렇게 모두 받기만 할 뿐 누구하나 챙길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태 우리 아이 내복 두어벌과 양말 몇켤레 외에는 받아본 기억이 없네요. 우리 아이 돌상도 친정에서 차려주셨는데, 아무도 오지를 않더군요.

처음엔, 놔두라고 손사레 치시던 시부모님도 이젠 그러려니하고 저희가 드리는 생활비며 식사대접을 받으시고 흐뭇해하십니다.
부모님 흐뭇하신거야 좋지요. 하지만 왜 다른 자식들은 모두 나몰라라하는데 저희만 그렇게 효자 노릇을 계속 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음 착한 우리 신랑은 시댁가서 밥 먹을 때 반찬이 좀 없다 싶으면 당장 음식을 배달시키거나 모시고 나가 먹자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제 눈치를 보고, 다음에 친정에 가면 또 친정식구에게 돈을 쓰죠.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니 절단나는건 저희 집 재정밖에 더 있겠습니까?

요즘은 신랑이 친정에 잘하는 것도 하나도 안반갑습니다.
한만큼 또 시댁에 해야 맘이 편할 사람이니까요.

요즘은 착한 사람이라는 말이 욕이라죠?
전 이제 더이상 이렇게 바보같이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이 화합하고 잘 지내면 더할 나위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혼자서 다 감당해내기엔 너무 속이 끓습니다.

올해부터는 저도 이젠, 해야 하는 일만 하고 살 생각입니다.
할 수 있는일, 하고 싶은 일, 해도 되는 일들은 그냥 넘어갈랍니다.

나이드신 시부모님, 사시는 동안이라도 잘 해드리려 맘먹고 살았는데, 이대로 가면 나중에 모시는 일까지 저희에게 넘길 것 같아서 싫네요.
부모님을 모시는 일 자체가 싫다는 것이 아니라,
늘 이런식으로 맘약한 우리가 떠맡게 되는 자식이라는 의무를 억지로 지기는 싫은거죠.

우리가 다른 형제들보다 벌이가 나은 것도 아니고,
우리가 여유가 있어서 그렇게 인사를 차리고 사는 것도 아니건만,
이젠 모두 당연하다고 여기는 그 표정들이 미워서라도 정말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니면 욕을 얻어먹고 말겠습니다.

이젠 괜히 늘 맘이 약한 신랑도 보기싫고,
나이 드셔서 자식들한테 싫은 소리도 못하고 만만한 자식에게 기대시는 시부모님도 원망스럽게 여겨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