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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많은 울 언니


BY 시누이가 2002-05-07

어제 오늘 비가 오니까 그러나 기분이 착 가라앉은게 영 뜨질 않네요.
자꾸 속상한데 어디다 하소연 할데도 없고 ....
내가 너무 속좁은 여잔가 싶기도 하고..

난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벌써 이십년하고도 오년이나 지났나 보다.
그 긴 세월을 맘 한켠에 섭섭함을 한줌 버리지도 않고 지니고 있었던 것이 본색을 드러낸것이다.
이야긴 즉슨.
어제 출근하니까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가족이 교회에 안다닌다는 이유하나로 당신의 바로 위의 형님인
울아버지 돌아가신해 부터 지금까지 우리집에 발걸음이 없었다.
아버지 기일에 잠깐 마당에 들어오셨다가 그냥 가신적이 서너번 될까
내기억에 단한번도 신발을 벗고 집안에 들어온적이 없어서 ...
말은 못하고 섭섭하고 원망스러웠다.
아버지가 안계시니까 아버지 대신하신다고 울언니 시집갈때
같은 교회 집사 자제라고 온갖 생색다 내면서 중매해주었는데 언니가 싫다니까 별별 소릴 다 하더구만...
결국 착한 울언니 그집에 시집갔는데 몇달안가서 울고 불고 (울엄마랑 얘기하는걸 우연히 엿들었다)
아이가 하나있는 홀애비....
이런일이 있은뒤로는 작은아버지 작은엄마가 하는 말들을 우린 믿을수가 없었지만 울엄마의 간곡한 부탁으로 참고 인내하며 우리가 할도리는 다 했다 ..
왜냐?
간단하다
애비없이 자라서 .... 하는 것 땜에..
고향을 떠나서 살더니 돌아가시는 마당에 고향을 찾은 모양이다.
돌아가시기 몇달전에 아버지 기일에 친정에 갔다가 우리 형제들 모두가 문병을 갔었는데 ...
그때의 모습에 우리 형제들 모두가 눈시울을 붉혔었다..
너무나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과 흡사해서 ...

난 가질 않았다 ..
차로 다섯시간정도면 병원으로 가서 뵙고 올수야 있지만,
가기가 싫었다.
오빠들 편에 조의금만 보냈다.
문젠 작은집식구들이 사는곳과 우리 친정과는 거리가 엄청 멀다.
우리 친정이 시골이니까..
그리고 작은집은 군청소재지이고.
그런데 영결식은 우리 시골에서 하더라는 것이다.
아침에 친정집에 전활 했는데 글씨;...
시끌벅쩍하는 소리가 수화기를 통하여 들려오는것이다.
언니가 전활 받았는데 물어보니 우리집에서 음식준비하고 문상객들
맞을 준비를 하는 중인가 보다..
순간 꼭지가 열리는줄 알았다..
불쌍한 울언니...
언니...
그일을 왜 우리집에서 하는건데?
언니는 복도 많네~~~
울언니 그러게...하고만다..
서운한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냥 몇마디하고 끊었다.
그런데 오늘 또 전활 했다.
엄마랑 통화좀 하려고..
그런데 오늘도 어린애 소리가 들렸다
누구왔냐고 물었더니 그 작은집 언니랑 오빠들이랑 그들의 친척들이
산소에 왔는데 그많은 식솔들 식사 대접하고 있는모양이다.
이번엔 오빠랑 통활 하면서 오빠는 무슨 복이 많아서 그렇게 좋은일은 도맡아서 하는거냐고 ...한마디했다.
언니는 무슨 죄냐고...
오늘도 엄마랑은 통활 하지 못했다.
앞으로 산소돌보는일 또한 우리 친정 언니오빠가 해야할 숙제인거 같다..
나만 이렇게 못된건지 ..남들이 욕해도 어쩔수 없지뭐..
서운한건 서운한건데..
그 작은엄마랑 작은아버지 우리 형제들이 잘나갈때 뒤에서 좋은얘기
한마디도 해주질 않았다.
그러면서 형제들 결혼할때가 되면 아버지 대신 행세하려고 이것저것
따지고 들었었다.

그럴때마다 차라리 모른척 해주지 않음에 더욱더 화가나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그 섭섭한 마음은 가시질 않는다.
당신들은 교회에 다니니까 추도식으로 제살 지내야 하는데
우리더러 상차려 놓고 절한다고 이십오년동안 자기의 형인데도
단한번도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그 분들..
어떻게 해야 좋은 감정으로 잊을수가 있을까..
그 작은아버지의 아들은 목사님이시고 사위는 전도사랜다

그야말로 빵빵한 집안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