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이라도 마음이 가벼워 질 것 같아서 시댁을 간김에 친정을 들렀다 왔는데 오히려 더 큰 덩이를 안고 왔다.
항상 친정은 비켜갈 수 없는 높디 높은 산으로 나를 가로 막고 서 있다.
휴유~
누구에게도 마주 대하고서는 이 긴긴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신들 뿐!
요즘시대에, 인간의 게놈지도가 밝혀져서 모든 병을 알아내고 또한 치료할 수 있다는 시대에, 나의 엄마는 무병을 앓고 있다.
내가 대여섯살 때쯤에 시작되었던 엄마의 접신은 여태 엄마와 친정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삼십년 세월을 아니 육십육년의 일평생을 엄마는 그 어떤 소설이나 드라마 보다 기구하게 살아왔다. 엄마의 하나뿐인 딸인 나의 평생숙원과제는 엄마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이다.
결혼생활 8년!
친정을 생각하면 눈에선 뜨거운게 흘러내리고 가슴은 돌덩이가 얹힌다.
언제나 엄마는 내게 슬픔의 앙금으로 남아있다.
살아계신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여겨야할 만큼의 여유도 내겐 없다.
아직 내가 생을 덜 살아봐서 일까?
한해 한해를 보내면서 조용히 지낸적이 없던것 같다.
한오빠가 사고로 다치고 또 한오빠가 교통사고로 다치고 또 한오빠가 이혼한다며 난리치고....
오빠들은 아직 미성숙한 사람들 같다.
제 스스로 처리를 못하고 항상 엄마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것이 엄마의 업보라 여기며 산을 찾아 기도를 하고 수양을 쌓아야 한다는데 엄마없는 친정집은 생각하기도 싫다.
어제 그 컴컴하고 음울한 분위기의 옛집에서 엄마의 얘기를 듣고 있으려니 눈물만 나고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냥 어떤일이 있더라고 엄마가 거기, 내가 태어나고 자란 그 친정집에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엄마의 마음이 편안하고 우리 집안의 불행이 그쳐질 수 있다면 내 그리움쯤은 접을 수 있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십이년이다.
아버지의 침술로 엄마에게 내린 신을 묶어두었는데 이젠 아버지의 신을 받아 엄마의 신과 합치는 굿을 해야 한단다.
그리하여 엄마는 침술로 인정을 베풀고 떠돌아 다녀야만 모두가 평온해진다고 한다.
완강히 그 세계를 부인하던 나도 이젠 조금씩 믿고 싶어 진다.
이 모든 불행을 단순한 인생의 과정이라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기가 막히기 때문에...
엄마에게 태산을 업혀주고
내가슴에도 그 산을 안겨준, 원망하고 싶지만 물리칠 수가 없는
그것은 정말로 가혹한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