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 14일 일요일
7년 전 오늘도 일요일이었다.
잠이 안 온다.
너무나 힘들었던 1995년의 일들이 생각난다.
목숨 걸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이별을 통보받았다.
캐나다에 1년 간 연수를 갔다온 그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것이 이유였다.
7년을 서로 사랑한 사이였고 그렇게 믿었던 사람에게
하루아침에 버림을 받았다.
95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2년동안 말도 못할 방황을 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나에게 다시 살아갈
이유를 준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다.
그리고 결혼을 한 날이 바로 7월 14일 오늘이다.
첫사랑의 아픈 기억을 잊고
행복할 날들을 꿈꾸며 아버지의 손을 놓고 신랑의
손을 잡고 걸어 들어온 날이 바로 오늘이다.
그 때로부터 7년이 흐른 지금..
나에게 또 한번 마음 아플 일이 생기고 말았다.
오늘이 결혼 기념일인 것 조차 아무 의미가 없다는 듯한
남편의 표정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고
나의 직감이 들어 맞은 것이다.
남편에게 사귀는 여자가 있다.
어제 저녁 우연히 메일과 핸드폰 문자를 통해
알게 되었다.
6개월이나 지난 사이에 날마다 만나 왔나 보다.
직장에서 같이 늘 얼굴을 보다 보니 친해질 수 있다지만
본격적으로 사귄 건 6개월이 되었나보다.
둘 사이에 오늘이 무슨 날인지 축하주를 마시자는
얘기가 오가고 있었다.
까무러칠 일이다.
결혼 기념일 저녁에 남편과 마시려고
얼마전 사둔 포도주병이 저렇게 값싸게 느껴질 줄이야.
예전에 겪었던 마음 아픈 일때문에
정말 딴 건 안 바라고
변치 않을 영혼을 가진 사람과 일생을 보내고 싶다고
그렇게 기도를 하며 살아 왔는데..
나의 바램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또 한 번 예전의 악몽을 치뤄야 할 거라는
이상한 담담함만이 몰려 온다.
매일 메일을 나누고 시를 보내고
몇 분 간격으로 문자를 보내며 즐거워 하고
같이 쇼핑을 하고 야외를 나가고..
자기 부인은 현재 둘째가 8개월.. 뱃 속에 있는데..
이럴 수가 있는지.
글을 쓰는 동안 잠깐 분노가 가라앉고
나는 왜 이런 일들을 겪어야 하는 건지..
서글픈 생각에 눈물만이 앞을 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