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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끼워진 첫단추


BY 슬픈인생 2002-08-29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까마득하다......

시어머니 생신을 앞두고 시댁에 가야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얼키고 설킨 내 감정의 끈이 요며칠 몹시 아프다.

남편의 어머니인 시어머니께 잘해야함은 당연지사인데 그것이 인간의 도리일진대

내 마음은 꽁꽁 얼어붙어 인간의 도리마저 외면하게 만들고 자꾸 정신이 황폐해진다.

그렇다.

시댁식구들과의 어긋남은 신혼초 막내시누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오빠와 우애가 두터웠던 막내시누이는 신혼초인 초여름의 어느날 단칸방에서 시작하는 오빠의 삶에 넙죽 끼어들었다.

반라의 오빠곁에 무릎베게라도 해줄요랑으로 찰싹 달라붙어 두 오누이는 일요일만 되면 티비시청으로 화기애애하고

앳된 새댁은 두오누이의 다정다감한 모습에 그들 사이에 끼지도 못한채 제설자리를 못찾고 우왕좌왕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요일마다 이어지는 막내시누이의 초대하지 않은 방문에 어느날 앳된 새댁은 저도 모르게 싫은 내색을 하고 말았다.

그것이 시댁과 어긋남의 시초였다.

큰오빠집에서 기거하던 막내시누이는 갓 결혼한 둘째 새언니가 큰댁의 행사에 참석할때마다

눈을 아래위로 치켜뜨며 왔냐는 인사도 없이 기고만장 싫은 내색이 역력하였다.

맘 약한 신랑은 그런 막내시누이의 안하무인을 그저 모른척 비위맞추기에 안절부절이고

하극상이 왠말이냐는 새댁의 하소연에 어쩔수없이 슬쩍 왜그러냐며 질타라도 할라치면

막내시누이는 왜 엄마에게 효도하지않냐며 엉뚱한 소리를 해대었다.

신혼초인데 시부모와 같이 살지않는한 잘하고 못하고 어디 기회나 있었는지 효를 핑게삼아 억지를 부리었다.

큰동서는 그런 막내시누이의 버릇없음을 따끔히 질타하는 대신 아랫동서의 모욕당함을 은근히 즐기는 내색이였다.

한술더떠서 안하무인의 막내 시누이와 한 부엌에 나란히 서서 화기애애한 담소가 길어지고

이렇게 큰동서의 방관아래, 신랑의 묵언하에 막내시누이의 기고만장은 일년이상 지속됐다.

그럴수록 앳된 새댁은 시댁식구들이 다 무섭고 끔찍해져 하소연해도 소용없는 신랑이지만

그나마 신랑밖에 마음둘곳이 없어 모임때마다 점점 더 신랑곁을 맴돌게되었다.

그럴수록 그들은 신랑곁을 맴도는 둘째올케가, 둘째동서가 몹시 얄미웠나보다.

아주버님도 덩달아 새댁을 볼때마다 시어머니께 효도하라며 효에대한 강조를 하고

신랑은 신랑대로 결혼전 몇년간 둘째시누이댁에서 기거했던적이 있다며 둘째 시누이에게 자기 대신 마음의 빚을 갚으라며 채근을 해대고

둘째 시누이는 심적 물적인 확실한 은혜의 보답을 기대하는 눈치가 역력하고

시아버지는 시아버지대로 무슨 사업을 한다시며 거액의 급전을 요구하기 일쑤이고

시어머니의 늘 울먹이는듯한 징징거리는 말투와 웅얼거림에 새댁은 점점 그들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들과 만나면 만날수록 책임감만 자꾸 눈덩이처럼 커지고 의무감만 가득한채 죄인아닌 죄인이 되어야하니 늘 가시방석이였다.

사랑받는 귀여운 며느리가 되어 화기애애하게 시댁식구들과 잘지내고 싶었던 새댁의 결혼에대한 무지개빛 꿈은 처음부터 산산조각이 나있었다.

그들을 만나야 할 무슨무슨 행사가 다가올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속이 타 들어갔다.

그래도 어쩔수없는 시댁과의 인연에 십여년을 잘도 버티었다.

여름휴가 시작되는날 시댁에 들어갔다가 휴가 마지막날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이고

시부모생신때마다 천리만리 달려가 뜨끈한 미역국 끓여내도 십여년넘게 며느리는 생일이 있는건지도 모르고

아들내외 시댁에 가면 아들내외가 자는 방의 티비를 전파가 끊겨 지지거리는데도 못끄게 하고 환한 전등불도 못끄게 하고

불켜진채로 티비켜진채로 너희는 잠을 자거라 하며 깊은밤 내내 방문너머로 멍하니 아들내외를 쳐다보고 있는 시어머니

아들이 그만 주무시라하며 불끄고 방문을 슬쩍 닫으면 다음날은 끙끙 앓는소리를 내며 못일어나시는 시어머니

그러다 아무도 알은체를 안하면 슬그머니 일어나 밥한그릇 뚝딱 비워냈다.

끔직하다... 인간이 싫어지는 대목이었다....

한통속이 돼버린 시누이들과 동서의 틈바구니속에서 점점 겉도는 왕따임에도 꿋꿋하게 둘째 며느리의 도리를 해내었다.

헌데 어느날,

배낭가득 추석 장을 봐와선 밤새도록 음식을 만들어 아침일찍 차례준비를 하던 며느리가

제기그릇이 모자라 밤, 대추를 한접시에 담아낸다고

" 야! 이 미친년아 !! " 제사옛법도 모른다며 목청껏 욕을 내뱉었다.

제사 옛법을 잘 모르는 며느리에게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고 차근차근 알려만 주었던들 며느리는 밤, 대추를 한접시에 담지는 않았으리라.

그순간,

모든것이 정지되었다. 내 머릿속은 하얗게 비워지고 있었다.

십여년간 나를 버리고 시댁우선으로 참고 살았던 모든것이 허망해지며 더이상 참을 힘도 인내할 가치도 없어졌다.

시댁에 관한 모든것에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내안에서 이제 그만 끝~~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더이상 그들에게 며느리로서 동서로서 올케로서의 이러저러한 역할은 내맘속에서 지워졌다.

아주 기본적인 며느리로서의 의무만 해낼뿐이었다.

어쩌다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에도 이번엔 또 무슨일인가 싶어 겁부터 났다. 받기 싫었다.

하지만, 신랑이라는 끈이 이어져 있는한 영영 안보고 살수는 없고 이젠 아주 기본적으로 해야할 의무만 할뿐인데도

아직 남아있는 내안의 인간에 대한 도리가 나를 몹시 맘고생하게 만들어 그들만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늘 우울하다.

언제쯤 이 무거운 짐을 벗고 훌훌 맘고생에서 벗어날수 있을까?

시어머니 생신이 다가오니 내 안의 멍에가 나를 또 몹시 옥죄온다.

잘못끼워진 첫단추는 몹시 허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