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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통은 맏이만 제사지내는게 아니었다는자료


BY 공평님.보셧! 2002-09-02



추석에서 엿보는 여성학 이야기

▒ 글: 김포여성민우회 오은주


여성학은 여성들이 여성의 눈으로
여성 스스로를 위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창'
쌀쌀한 기운이 치맛자락을 스치더니 어느덧 추석이 가까워온다.
추석! 가장 풍요롭고 좋은 계절에 있는 우리들의 대명절. 하지만 왠지 마음이 무거워지고 걱정이 앞선다는 여성이 많다는 것은 왜일까?
여성학을 공부하다 보면, 참으로 여성학이란 내 생활과는 유리되어 박제(剝製)화 된 이론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가족 우리들의 이웃에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들을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바람직한 ??향으로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실천적 학문이라는 점에 매력이 있다.
마치, 여성들이 여성의 눈으로 여성 스스로를 위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라고 할까?
답답하게 막혀있던 세상을 열어주고, 안보이던 것이 보이며, 뿌연 한 관계들이 명확해지기 시작한다.
여성들이 피부로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남녀불평등의 핵심이 되는 가족이라는 구조를 보아도 그렇다.
근대 산업사회가 되면서 가정과 일터가 공간적으로 분리되자, 남성들은 생계벌이자, 여성들은 가사전담자라는 성별 분업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화폐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여성들의 가사 노동은 '진짜 일'로도 간주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한집안에서는 아버지가 최고라는 가부장제의 가족 구조와 이데올로기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고, 사회 구조 역시 정치, 경제, 문화, 법률 전반에 걸쳐 남성 위주의 사회를 이루게 된다.
예를 들어 가장 가까이 다가서 있는 우리의 명절 추석을 생각해 보자.
"와! 벌써 추석이구나. 이번 추석은 정말 기다려지고, 재미있겠는걸!"
과연 이렇게 생각하는 이 땅의 여성들이 얼마나 될까?
가부장적인 구조와 이데올로기가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명절을 맞이하는 우리 여성과 남성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명절 몇일 전부터 스트레스지요. 당일에 몇 시간씩 고생하고 가야되는 것은 둘째치고 가서 이박 삼일 밥 차리는 기계로 살아야 하는 게 너무 끔찍해요. 아침 먹고 돌아서면 차 마시고, 과일 먹고, 설거지 끝내기가 무섭게 정신차려야지요. 점심 먹고 나선 잠깐 쉴 수 있지만, 이때도 성묘를 간다거나 친척이라도 한 명 찾아오면 또 일이예요. 끝이 없어요"
"친정에 가서도 마찬가지예요. 친정에 갔다고 남편이 일하나요. 어쨌든 설거지 한끼라도 해야돼요"
"동서들간에 신경전이죠. 늦게 도착하면 명절내내 미운 털 박혀요"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나 맏며느리의 부담은 여전해요. 같은 명절 스트레스라도 맏며느리는 더 받지요"
"명절이라고 남자라고 편할 리 없어요. 운전해서 오고 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마누라 눈치보느라 불편해요"
"맞벌이라 집안 일을 잘하지요. 명절에 집에 가서 열심히 일하는데, 형이 불러 훈계를 하더군요. '서울에서는 몰라도 여기 시골에서 네가 일하면 제수씨 욕 먹이고, 집안 망신이다' 할 말이 없었죠. 일도 못하고내년 후년에도 이러다 보면, 나도 형처럼 방에서 TV를 보거나 담배나 피우는 명절을 보내는 습관이 들겠죠. 우리 아버지가 그 원조이구요"
가족 내에서의 입장과 역할에 따라 스트레스의 양상은 달라도 그 원인은 같다.
남편들이 번 돈으로 명절 상을 차리면서 여자들은 노동력을 댄다는 전형적인 성별 역할 분담이 나타나는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그를 근간으로 하는 명절 문화가 원인이다.
또한, 부계혈통으로 이루어지는 차례 중심의 명절이 되어 정작 화목을 도모해야 할 자리에 모두 다 파김치가 되어버린다.

역사 속의 명절을 알면
왠지 우리는 지금 속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지나간 역사 속의 우리 명절은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고 한다.
설날, 대보름, 단오, 추석과 같은 4대 명절 안에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차례의 모습은 없었다고한다.
'차를 올리는 예식' 이라는 뜻에서 생겨난 차례는 고려시대, 조선중기까지만 해도 명절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며, 조선 후기에 가서야 중국의 『주자가례』의 예법을 받아들인 후 간략한 제사로 우리의 명절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더욱이 지금과 같이 산해진미가 다 갖추어진 모습이 아니라, 술을 올리되 한잔만 올리며, 음식도 강정을 으뜸 음식으로 삼는다고 할 정도로 간소하게 치루었다고 한다.
무언인가에 우리는 단단히 속고 사는 기분이다.
또 놀라운 점은 오늘날 불변의 진리같이 받아들여지는 아들만이 제사를 지내되, 그 중에서도 맏아들이 제사를 모셔야 한다는 풍습이 예전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고 하는 고대 문현의 기록들이 있다. 자료를 보면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딸 아들 구별 없이 제사를 모셨다고 한다.
예를 들어 윤회 봉사라 하여, 아버지의 제사를 자녀들이 순서대로 해마다 각자 돌아가며 지냈다는 양반가에서 쓰여진 일기문들이 많이 발견된다.
또 분할 봉사라 하여 아들, 딸, 손자 자손들이 선조들의 제사를 나누어서 전담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제사는 아들이, 어머니 제사는 딸이, 할아버지 제사는 외손주가 등등 서로 의논하여 나누어 모셨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겪고 있는 명절문화,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 문화는 태초에 있었던 제도가 아니라, 오히려 조선 후기에 와서야 강화되어 내려 왔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지적이다.
이럴수가!
꽁꽁 숨겨놓아 알지 못해 겪는 고통들이 우리 여자들에겐 너무도 많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 보자.
'딸 아들 구별 없이 자식들이 돌아가면서 차례를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떳떳하고 뿌듯할까?'
'간단히 차를 올리고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와 서로에 대한 덕담을 나누며 '이웃과 함께 하는 공동체적 놀이 문화에 남편과 나란히 함께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성 해방은 곧 남녀가 평등한 인간화를 지향한다.
어렵지만 결코 어려운 일들이 아니다.
잘못된 점들을 바로잡아 함께 잘 사는 길을 찾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