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시부모님과의 이야기를 올렸던 36살 며느리입니다.
시아버님과.. 새시어머님 사이에서.. 힘들었던 12년의 세월과..
처음으로 시부모님께 말대꾸 하면서 내 목소리 높였다던..그일..
반대하는 결혼 해서 맘에 안들어 한다던 시아버님.
난.. 한다고 했는데...
이 집으로 시집와서 종처럼 살았던 인생이 억울해..
착한것이 미런스런 것으로 착각하시기에..
맘에 안든 며느리에게 어떤 대접을 받고 싶냐고.. 여쭙고..
그 시간 이후로.. 지금 1년 6개월동안 의절하고 삽니다.
전.. 그일이 있는 날..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 했습니다.
앞으로 내가 고생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혼자 맘 편하게 살고 싶다고..
몸이 힘든건.. 얼마든지 참고 살 수 있지만..
인격적으로 무시당하는 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개들이 하는 동거를 해서 나와 신랑을 찢어 놓지 못했다는 시아버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도저히 그분을 용서 할 수 없었지요.
두 아이의 엄마인 나에게.. 지금와서..
지난날의 반대했던 결혼을 꺼내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이런식으로 나를 공격하는 그분들에게 나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엇고.. 나도 화 낼 줄 아는 사람이란것을 알리고 싶었죠.
하지만.. 내가.. 이분들이랑 싸우면 무슨 소용있냐..
이혼하고 혼자 살면.. 이런 대접을 받지 않을텐데.. 싶어서..
조용히 이혼을 요구 했는데..
신랑이 당신 부모님이 방발을 했다며..
이해하라고.. 내 하가 풀어질때까지.. 나 편할대로 하라고 하더군요.
그일이 있는 후.. 1년 6개월동안 의절하고 살았어요.
물론 남편은.. 부모니까.. 어떤 말을 하여도 이해가 되었겠지요.
부모님의 말씀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지만..
따진다든가..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냥.. 그 일에서 쏙 빠지는 그런 타입이죠.
부모 앞이든.. 내 앞이든.. 누구 편을 드는 일은 없구..
중립 위치를 고수하지요.
난.. 용서가 쉽게 되지 않았어요.
그렇게 1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시부모님.. 월세 사시고.. 빛이 있고.. 외아들.. 우리 몫이죠.
쓰시던 가락이 있어서 절약도 안되고.
빛은 늘어 가는데.. 며느리가 알뜰파라서.. 예전처럼 돈을 잘 드리지 않죠. 나도 자식 키우니까.. 그렇게 되는 거구요.
여유도 없지만..
그런 것들이 맘에 안들어.. 조건 좋은 며느리 봤으면..
그분들 표현에 교사 며느리 봤으면.. 받들어 충하며.. 용돈도 많이 줄텐데.. 나 같은 며느리 들어와서 비위 못 맞춰 준다고..
결혼 반대이야기를 꺼냈던 거지요.
하지만.. 거기까지 이해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나셔도 하실 말씀과 하지 말아약 할 말씀이 있다는 걸 잊으신 것 같아.. 화가 났고..
이 모든 것들..이담에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기에..
암튼.. 여기까지 왔습니다.
한편으론 그분들도 불쌍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문제는..
저희 친정 엄마가 중풍으로 쓰러 지셨습니다.
119에 실려가서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벌써 한달이 되어 갑니다.
반신 마디가 되어 누워 계시지요.
울 신랑. 가보지도 않네요.
바쁘다고 이해 하자고 하는데..
참.. 자존심도 상하고 .
내 맘 보다.. 우리 친정엄마 자존심이 상하실것 같아 죄송하답니다.
내가 시부모님께 그런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남편 표현엔..
우리 엄마가.. 남편.. 생모 죽고 혼자 자랐다고 불쌍하다며..
얼마나 잘했는데.. 엄마는 ..일요일에도.. 사위 기다리며..
울면서 그럽니다. '내가 지놈을 얼마나 이뻐했는데..''
집에 와서.. 속상해서.. 남편에게 자기 몫은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지금껏 장모한테 얻어 먹은 것만 해도 얼마며..
보약이며.. 얼마나 자기를 끔찍히 생각했냐구..
엄마가 베픈거 생각해서 도리는 고사하고 갚는다고 생각하고
병원 한번찾아가 보라고 말했죠.
사랑은 받아본 사람이 베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난.. 지금.. 이 잘난 외 며느리란 자리로..
이담에 지 엄마 아빠 병수발 생각해서.. 돈 벌고 있는데..
지금 혈압으로 약을 먹고 있는데..
혈압이 엄청 높아요.
같이 돈 벌어서 노후 대책 하자고 해서..
정말.. 집팔아서 시부모 수발 들까봐....맞벌이 하고 있는데..
화가 났습니다.
'너는 우리 부모에게 도리 못하면서.. 니 엄마 병원에 가보라고 하냐고?"
지금껏.. 생각했던 남편..
지난날.. 시부모님의 발언이 잘못 됐다고.. 내 맘대로 하라고..
해놓구선.. 도리?
내가..이집에 뭔데? 며느리 대접을 해주면.. 나에게 함부로 하나?
난.. 이 집에 의무만 주어진 바보스런 며느리쯤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
화가 무지 났습니다.
그래서.. 한마지 했죠.
아주 냉정을 되찾고 남편에게 그랫죠.
"그래요?.. 내가 당신 부모님께 연락 안하고 있어서.. 지금 내 엄마한테 그런 거라구?.. 알았어.. 울 엄마 죽어도 당신 장례식장 가자고 안해. 절대로 병원 가지마..나도..자기가 우리 엄마한테 한만큼 꼭 그만큼만 할거야. 당신 부모 쓰러지만.. 당신이 직장 때려치루고.. 내려가서 수발하든 말든 맘대로 해 "
뜨끔 하면서 얼굴이 하얗게 되더군요.
난..내가 시부모님께 지금 잘하고 있다고 생각은 안해요.
그분들이 화가 나서.. 예전..당신들이 원하는 조건의 며느리를 못 봐서.. 나에게 그런 말씀을 했다고 생각은 하지만..
중풍으로 쓰러져 있는 내 엄마에게 내 신랑이 이러는건.. 도저히 참기가 힘듭니다.
조용히 엄마에게 전화를 넣었습니다.
김서방 기다리지마.. 나도.. 그사람이 엄마한테 한 만큼.. 지 부모에게 할거야..
저,.. 무지 나쁘죠?
화가 나서요.
종처럼 살아온 12년이란 세월이 억울해서요.
그리고.. 용서 할 수가 없습니다.
내 엄마가 얼마나 잘했는데..
난.. 이현실을 도피하고 싶어집니다.
혼자 살았으면.. 하는 생각..
이런 줄다리기 하기 싫습니다.
내가. 지금것 살아 온건.. 신랑 하나 보고 산 건데..
종처럼 생각하는 시부모.. 마치 돈 찍어내는 며느리로 생각하는 사람들..
뜻 대로 되지 않으면.. 별 오만 가지 이야기를 다 끄내고..
이집 며느리.. 저집 며느리.. 다.. 거내면서 비교 합니다.
우리 어머님.. 주위 며느리는 왜..그리 하나같이..
시부모님께 50만원씩 주는 며느리만 있는지..
전문직이 아닌 내가 원망 스럽고..
한이 됩니다.
뭐.. 전문직이어도.. 이제는 내가 그분들을 위해.. 일하지는 않겠지만..
아파있는 내 엄마.. 가뜩이나 우울증까지 왔는데..
자식 많아도.. 자주 오지 않는다고.. 소외감 까지 느끼고 있는데..
일주일에 한번 찾아가는 못난 딸..
내 삶이 먼저고.. 이렇게 출가외인이라는 이유로.. 이기적이 되어버린.. 내 삶..
지금..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엄마가 불쌍해서..
내가.. 못 배워서.. 시집에서 이런 대접을 받는 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도저히 못했습니다.
엄마는 최선을 다해.. 가르쳤으니까요.
난.. 솔직히.. 이쯤해서.. 시댁이랑 화해 하고 싶지 않습니다.
상처로 된.. 가슴.. 아직 아물지도 않았고..
그분들도.. 변해야 이담에 나랑 같이 살수 있기에..
변한 모습이 있어야... 내 맘이 풀어 질것 같습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나쁜년..능력없는 며느리 찾는 그분들 앞에 헤헤 거리며
도저히 마음을 풀 수 없을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