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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생활이 참 덧없네요


BY 덧없는... 2002-10-07

남편이 고시공부하고 전 직장을 다니는, 결혼 11개월 된 여자입니다.
지난번에도 간간히, 공부하는 남편 뒷바라지, 무언가를 요구하는 시부모 때문에 힘들다고 글을 올리고는 했었어요.

남편에게는, 공부한다고 잔소리 한 적 없고, 제가 돈벌고 살림한다고 생색낸 적 거의 없습니다. 그건 남편도 인정하는 부분이예요. 저보고 100점이래요.

그런데 벌써, 남편이 공부한지도 9개월이 되어가고, 저도 저 나름대로 일에 치이고 살림에 치이고 이리저리 몸이 피곤하다보니 불만과 짜증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때문이었죠. 그 날도 남편이 돌아오기 전까지 화장실 청소, 행주 삶고 부엌 치우고 남편 오면 주려고 김치전 반죽까지 해놓았습니다.
저는 평소에 하던 데로 나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내가 한 일들을 자랑했는데(우리는 서로 그렇게 얘기합니다) 남편이, 다른 여자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솔직히 넌 부지런하지는 않지.. 그러는거 아닙니까? 보통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말인데, 신경이 날카로웠던 탓인지 불이 확 나더군요.
그래서, 니가 어째서 나보고 그런 소리를 하냐고 소리를 지르고 방으로 확 들어가버렸습니다. 남편이 기분을 풀어줄라고 방으로 쫓아와 내가 잘못했다고, 장난을 걸었지만, 전 눈물이 흐르고 화가 가시지 않더군요.

그렇게 해서 얘기가 시작되었는데, 난 너무 힘들다. 평일엔 회사 다녀와서 살림하고 자리 앉으면 10시에 11시 사이다. 너무 피곤하다.. 등등 내 하소연들을 했었죠.
그러나, 남편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듯, 다른 여자들 다 그렇게 살지 않냐고,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얘기가 커져서… 제가 그랬죠. 결혼하고 나니 내가 봉인 것 같다고, 여자라서, 아내라서, 며느리라서 너무 부담스럽다고, 너무 나한테만 바라는 게 많다고 했죠.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그런 얘기가 쭉 이어지고.. 한참을 조용히 듣고 있던 남편이 한 마디.
내가 좀 더 노력할게. 살림도 혼자서 다 하려고 하지 말고 나에게 넘기라고.. 같이 노력해보자고.. 하지만, 그래도 너가 너무 힘들면… 널 놓아주겠다고.. 그러더군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소름이 쫘~~악 끼치더군요.
너, 그게 무슨 소리야? 하니.. 장난으로 하는 소리도 아니고 진지하게 하는 얘기라면서, 좋아하는 사람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그렇게 힘들어 하는데 굳이 결혼생활 강요하는 것도 사실 못할 짓이라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하는데.. 마치 울 것 같은 표정이더군요.

니가 그런 소리 할 수 있어? 라고 말하니..

“나, 못되고 독한 놈이야.”

하더군요. 참 착하고 순한 사람인데..

그런 생각 언제부터 했냐고 했더니, 오늘 니 얘기 듣고 하는 얘기라면서, 전에는 그냥 자의식이 강해서 결혼에 안맞는 여잔가보다.. 라는 것 까지 생각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나, 당신 사랑해.. 하더군요.

참 웃깁니다.

또, 우리 몇 년 노력해보자. 나도 잘 할게.. 하면서, 그러다가 얘라도 생기면… 하는데..
그냥 노력해서 살자는 건지, 이혼을 염두에 두고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보자는 건지.. 잘 모르겠더군요.

부부싸움하면 가끔 이혼 얘기도 나오고 한다던데.. 제가 알기로는 금기된 단어로 알고 있습니다. 일단, 제가 듣고 나니 마음에서 지울 수 가 없고 남편이 한없이 낯설게만 느껴지네요.

제가 먼저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남편도 잠시 후 들어오더군요.
남편은 정면을 바라본 채,… 부드러운 소리로 ‘잘 자’ 그러더니 자더군요.
난, 이대로 냉랭하게 잠들수 없을 것 같아.. 남편쪽으로 돌아누워 안았습니다.

너, 그런 얘기 하지 말라고.. 너무 무섭다고..
눈물이 다시 나더군요.
남편도 절 꼭 안으면서 그러니까 왜 못살겠다고 그래… 살림하는 거 힘들지, 시집살이도 힘들지…
그러면서, 사랑한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일단은 마무리는 되었지만, 잠 든 내내 비몽사몽.. 남편도 그랬는지.. 잠결에 뒤척이다가 안으면서 사랑한다고 자주 그러더군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이 되니 왜 이리 낯설던지.. 전 눈이 팅팅 부어있고.. 남편은 먼저 샤워를 하고 있고..

지난 주 시어머니가 허리 수술을 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오늘 같이 가길 했었거든요.
그런데, 남편 혼자 옷을 입으며 갔다오겠다고 해서, 제가 어제 한 얘기 때문에 그러나 싶어 같이 가자고 했죠.

병원에 가니, 시부모는 일찍 안왔다고 한소리 퍼붓더군요. 그것도 나에게 일방적으로…
나한테 딸이 있는것도 아니고 며느리 하난데 일찍 좀 오지… 그렇게 철딱서니가 없냐고, 남들 보기에 체면도 있지, 아니 그래도 시어머닌데 당연히 니 일이지 하면서.. 열심히 쏟아붓습니다.

전 황당하더군요.
어제 밤에 전화할때도.. 힘든 데 오지마라.. 하더니.. 그래도 제가 내일 갈께요.. 하니.. 그래..
하고는 끊어놓고는.. 아침에 친척들 와서 괜히 한 소리 하고 간 모양입니다.
남편도 옆에서 조금 당황하더군요.

그렇게 냉랭히 있다가 둘이 밥 먹으러 나왔고, 밥 먹으면서.. 남편이 기분 풀라고.. 그랬지만.. 또 눈물이…

그렇게 있다가 저녁에 집에 왔는데.. 우리 밥 먹을 때도 아무 소리 안하고.. 비디오 같이 보다가 잤죠.

그리고, 오늘 아침, 또 밥 먹으면서 아무 소리 안하고… 남편은 먼저 학원하고.. 저는 회사에 왔습니다.

아무리 머리에서 떨치려고 해도 안 떨쳐지네요.. 그 이혼이라는 말…….

자꾸, 그 쪽으로만 상황이 상상되네요.

제가 남편에게 물었던말..

“너한테 마누라는 뭐야?” 했더니.. 사랑하는 여자지.. 그럽니다.

그럼, 넌 결국 어머니는 못버려도 마누라는 버린다는 말이네…

그러니, 어떻게 부모 자식 관계를 끊냐고 합니다. 역시.. 효자입니다. 아님, 너무나 현실적인 걸까요?

평생을 같이 할꺼라 믿었던 사람인데, 그런 말 듣고 나니.. 부부관계가 공허해집니다.
그리고.. 왜 이렇게 무섭게 보일까요? 남편이 말입니다.

제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려주세요.
그리고… 다시 좋은 관계가 될까요?
자꾸 멍해집니다.

우린, 언제나 시집문제로 싸웠지, 둘 문제로는 싸워본 적이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