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305

버릇


BY 김혜란 2002-10-21

" 설탕 두우개, 크림 둘, 그리고… 커피 둘이면, 옳지!. 됐다. 후후후…"
난 여전히 커피가 아니면 글 한 줄도 읽질 못하고 계속 그 자리만 연거푸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읽기만 하고 마는 내 괴상한 버릇 때문에 아예 책을 펴기도 전에 커피 물 바글바글 끓여, 달고 부드러운 커피 한 잔을 들고 방으로 들어갈 계산을 하고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인가? 어줍잖은 대학생의 흉내를 낸다고 자판기에 동전 집어넣고 잘 알지도 못했던 갈색의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한 후로는 은근슬쩍 인박힌 듯 난 아예 커피 아닌 차는 손도 대지 않게 되어 버렸다.
평소에 책읽기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에도 오른 쪽에 뭔가를 두지 않으면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아서 볼펜이라든지, 아님 하다 못해 뻥 과자라도 옆에다 놓아두어야 책의 내용이 술술 들어 왔던 그 버릇이 결국에는 십 오륙 년이 넘게 커피로 바뀌어 버리고 만 것이다.
반드시 다 마셔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어떤 때는 반 이상을 남길 때도 있을 만큼 뭔가가 옆에만 있으면 된다는 버릇 때문에 그날도 커피를 옆에 놓아둔 채로 난 열심히 책읽기에 열중이었다. 다행히도 집 근처에 글방이 있어서 거의 일주일에 세 권 정도는 빠짐없이 빌려다 읽었고 그러함으로 내 책읽기의 갈증 해소에 대한 금전적(?)인 지출이 줄어듬에 만족했었다. 넉넉한 생활이라면 얼마든지 사 놓고 내 손 옆에 놓아두어 자주 읽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련만 사실 우리의 형편에 그만큼은 사치 아닌 사치였으니 난 그저 빌려 읽을 수 있음만으로도 감사했다.
인기소설가 양 아무개 씨의 산문집이었을 게다. 그 날도 여전히 커피 한 잔을 들고 책상에 앉아 몇 장을 읽던 중 갑자기 화장실에 다녀오고 싶었다. 커피는 한 모금 정도 마셨을까?
아무런 생각 없이 책은 그대로 펴놓은 채였고 얼른 갔다 와서 읽어야지 하는 마음뿐이었지만 아뿔싸!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목격한 장면은 아들 녀석이 썩 기분 좋은 얼굴을 하며 의자를 타고 올라가 책상 위에 놓인 책에다 뜨거운 김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줄줄줄 부어대고 있었다. 난 정말 악! 하고 소릴 지를 뻔했다. 가뜩이나 빌린 책이라 손 때 묻지 않게 하려고 신문지로 표지를 싸서 조심스럽게 읽던 공은 스르륵 사라지고 커피 속의 설탕으로
책은 사정없이 찐득거렸다. 울렁거리는 가슴 안고 마저 읽지도 못한 책, 아쉬운 책을 글방으로 가져가, 카운터 옆에 커다란 글씨로 적혀있는 < 오염, 훼손 시 책 값의 5배 배상!>이라는 문구에 맞춰, 자상한 눈길 한 번도 주지 않는 주인의 얼굴만을 힐끔거리며 나는 눈물을 머금고 책값을 변상해야만 했다. 두 번 다시 책 읽을 때에는 커피를 마시지 말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