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년째로 접어든다
오히려 편안하다
조금도 아쉬움은 들지 않았다
직장을 18년을 다녔었다
퇴직금도 아주 넉넉하게 받았다
오래다니던 직장을 쉽게 그만두려고 했을까?
아이아빠는 결혼초부터 계속 직장이 없었다
단 2년을 자영업을 하였었는데 아주버님게서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게되어 무든 수입을 아주버님께 드리라고 아버님게서 말씀을 하시어 그렇게 했다
결혼 17년차
결혼초 단 두해를 자영업을 하였으나 수입은 한푼도 없었다
그래도 나의 수입으로 나는 만족해하며 다행이라며 자족하며 살아왔었다
직장을 구하라고 수시로 얘기를 했었다
집안 식구들은 그럴때마다 극구 말렸다
이다음에 아주버님들 퇴직하시면 사업을 하실것이고 그때 자리하나 마련해줄테니 조금만 참으로 하셨다
그 조금이 10년을 넘어갔다
믿지 말라고 얘기를 할때마다 나는 못된 아낙네가 되어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큰조카 결혼을 하는데 마음에 맞는 가구가 없어서 온거리를 다닌단다
나는 듣도 보도 못한 가구이름이 오고 갔다
나는 왜 이렇게 허덕이며 살아야 하는가?
회의가 가득 일어났다
명예퇴직제도가 시작되고 위로금조로 갑절의 퇴직금을 받을수 있었다
그만두자
그렇게 그만두고 퇴직금을 아이아빠한테 무엇하나 해보라고 통장째 내어 주었다
아이아빠는 정말 신명?나게 돈을 썼다
속이 부글거리지만 참았다
쓰다가 쓰다가 정신을 차리겠지....
결국에 통장이 바닥나고
나는 작은 제과점을 하면 어떠냐고
기술을 익히면 그런대로 살아갈것 아니냐고 얘기를 했고 아이아빠는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한달만에
아이아빠는 못하겠다고 죽어도 못하겠다고 누워 버렸다
공장장을 두고 월금을 주고나면 늘 적자였다
그래도 기술을 익히면 될것을 ..............
나는 공장장 눈치를 보아가며 50여가지의 빵을 만들어냈고
공장장을 내보내고 아르바이트로 바꾸었다
결국 나는 병이들었고 버티다가 그만 두어야했다
아이아빠는
노숙자가 훨씬 편하겠다고
집을 나간다고 게속 노래르르부르더니 돈 몇십만원을 구해달라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졸라댔다
결국에는
50만원을 손에 쥐고 집을 나갔다
시댁 식구들은 참으로 부유한 생활을 한다
나는 손을 벌리거나 한번도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다
성격탓이리라
그렇게 일년을 지나고
친구들은 내게 전하를 했다
이제 그만 용서를 해주면 안되느냐고
사람이 무엇이 가장 귀한가를 알지 못하고
무엇이 소중한지를 알지를 못한다
"정말 고생다운 고생을 하고 길거리에서 신문지를 덮고 잠을 자보고 배고파 빵이 얼마나 귀한지 일할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를 깨닫기전에는 받아들일수 없어요"
아직도 멀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중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갔다
가족들의 시선이 매우 차갑다
괜히 갔구나 하는 후회와 아이에게는 그래도 할머니인데 하는 생각으로 편한 마음이 아니었다
돌아오는 시간
다른식구들은 모두 승용차로 돌아간다
장례차에 함게온 문상객 그리고 나와 아이
큰형님께서 차에 오르신다
"정말 수고 많았어! 다음에 봐!"
다정한 말씀을 문상객들과 나누신다
"큰엄마!"
아이는 큰엄마를 몇번이나 불렀다 아주 큰 목소리로
아주 철저하게 외면을 하고 차에서 내린다
큰형님은 종교를 갖고 계시며 단체활동도 아주 활동적으로 하신다
종교안에서 큰형님 내외분은 꽤 알아주는 지위?에 계시다
사랑
그리스도교의 사랑
그 사랑이 어디로 숨었구나
아이는 상처를 받고 돌아와 펑펑 울어댔다
참으로 요즈음에는 힘겹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일자리를 ?아야 하는데 중년의 여인이 무엇을 할까?
요즘 아이아빠는 아이와 매일을 주고 받으며 전화를 매일 주고 받는다
"엄마! 전화 하지말까?"
"아니 해, 엄마는 아빠와 남이 될수 있지만 너는 아빠잖아 그러니 네마음대로 하렴"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