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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생신 제껴버리다


BY talktalk 2002-11-06

'시부생신 제껴버리다'
제목이 조금 험악합니다.

'신혼초부터 화끈하게 망가진 여자'로 글을 올린 후 위기를 넘기고
이쁜 딸 아이를 낳았지요.
제 하소연이 늘 길어서 죄송합니다.
읽어 주실거죠?

출산 하루 전,
남편과 트러블이 있어서 제 눈이 눈탱이 밤탱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다른 일을(제 기준으론 사회적으로 별로 좋지않은 암웨이)
투자로 한다기에 안티사티트 알려주고 요목조목 설득을 하다가 지쳐서
이 일로 친정어머니도 사위를 설득을 해도
포기를 하지 않더군요.
암웨이를 할 경우 이혼이라면서 이행각서 써라하니
이혼서류일때만 도장 찍겠다네요.

그 동안 제 머리 속에 늘 따라다니던
시가의 모습들이 물밀듯이 다가와
급기야 제가 남편을 밀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퍽~~~뭐가 날라 오면서~눈두덩이가 시퍼렇게...
당신이 하려고 하는 일, 설득이 안되니 이제는 당신의 집에서도
알아야 되겠다면서 전화한다고 하니
해도 된다고 하더군요.

못난 아들 때문에 맘고생하실 시부생각하면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다음날 할까 내심 고민하다가
맞고 있는 새벽 2시에 시가에 전화를 하니
다행히도 시동생이 받더군요.
형이 이일을 한다고 해서 설득을 해도 되지 않을 뿐더러
급기야 주먹까지 날라 온다는 상황을 설명을 하고
오랫동안 보아온 형의 성격을 알면 못하도록 도움을 부탁한다고 했지요.
걱정하시니 시부모님께는 알리지 마세요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시누로부터 전화가...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겠는데요."
"경찰서에 신고하세요"
"앞으로 전화하지 마세요"딸깍
완전히 제가 착각을 했던 겁니다.
그래, 새벽 2시에 전화한 것은 내가 잘못되었다.
고민은 많이 했지만 남편의 앞으로의 사는 모습에 최소한
남편 본가의 충고가 남편을 잡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잘못된 판단이었던 것입니다.
남편이 헤매는 부분이 있다면 둘이서 해결하자는 주의였었는데
제가 맞는다는 부분에선 용서가 안되어서 에잇~시가에서도
알 것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시가에서 호되게 야단을 맞아보아야 남편이 제자리로 돌아오리라
생각했던 것이.....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바로 남편에게 전화벨이,
남편의 첫마디,"전화하지 마라, 그래 미쳤다고 했잖아~~~~"
옆방에서 듣는 나,
잉! 저번에 그토록 남편이 중재해주기를 바랬는데
그토록 이혼까지 할 결심으로 둘이서 난리를 쳤는데도...
내려가서 누이와 같이 쿵짝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남편이 내가 시누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다고 내게 강조를
하던 기억과 함께
순간 돌아버리더군요.

한참 멍하니 있다가 시누에게 전화를 걸었지요.
나......."아가씨"하니
시누..."내가 왜 당신의 아가씨예요?"
나......."전화를 했으니 끊지 말고 들어주길 바래요..."
시누..."이상한 여자가 집에 들어오더니...그렇게 배웠어요?
이성적으로 늘 이야기하던데 그것도 맘에 안 들어요.
친정엄마 전화 번호를 알고 있으니, 전화하겠어요,
그렇게 가르쳤냐고 따질 거예요.
결혼생활이 힘들면 이혼하세요.
이혼한다면 서울로 어른 모시고 전부 올라가겠어요"
나.....한참 듣다가 전화 끊어버렸지요.

저녁이 되어 남편에게 하소연했습니다.
그날, 엄청 술을 마셔댔습니다.
친정어머니에게 시누가 전화한다고 하니 말려달라고
울면서 애원했습니다.

어여쁘게 키운 딸로 인해
친정어머니가 시누에게 그런 소릴 들을 이유 없다면서...
남편...허둥지둥 대면서 알았다고 하더군요.

다음날 출혈, 병원 행...출산.
산후조리를 친정어머니가 도와주신다고 하셔서
친정으로 갔지요.
남편에겐 우리 둘이 해야할 일을 엄마가 도와주신다고 하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했지요.

남편이 시부께 전화하라고 해서
병원에서 전화 드렸지요.
"어여쁜 딸 낳았어요."
친정엄마...아들이 아니라서 죄송합니다하지 그랬냐고 하셔서
제가 '잘못된 것 없죠. 어여쁜 딸인데..."
(친정어머니는 어른들 비위 맞추어라 라는 소리로
이해했지만 제가 그게 되어야 말이죠)

남편에게 시누가 전화해서 시가에선 50만원 보내면서
아버지, 어머니 명목으로 보약 지어먹으라고
보냈다는 군요.

전화가 있은 후 아직도 기억이 약간 희미하시다던 시어머니로부터 제게 전화가...
"욕봤제..."
"네, 어머니, 건강하시죠? 언제 아이 데리고 내려갈께요"
했습니다.
말이 없는 시어머니...
전화를 주시다니...

친정에 와서 밥먹으면서 눈물이 나더군요.
꺼억~꺼억하고 울고 말았지요.
시누와 있었던 일을 전부 이야기 하니
남편 눈이 돌아갑니다.
그 모습, 친정 엄마 앞에서 하고 있으니
나 못났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른이 알아야 하겠기에 못난 딸 되면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날, 남편은 친정 어머니에게 엄청 깨졌습니다.
"그 집엔 어른도 없나? 시누가 좌지우지하게"
"자네, 약속했쟎은가, 마음 고생 시키지 않겠다고...여동생이 이쪽을 어떻게 생각하기에
휘둘러 대느냐 말일세. 여동생 간수 잘하게나...부모욕을 먹히고 있는 것은 자네 여동생일세...자네, 남편이란 것을 포기하게...전부 올라온다고 하는데...기다리고 있겠네...딸이 못배운 부분이 있으면 내가 다시 가르쳐서 보낼테니 기다리게...

친정어머니, 딸 결혼시키면서 그동안 서운했던 점을 그대로 그 자리에서 표현해 버리더군요.
저도 놀랐습니다.
"상견례도 피하셨던 사돈, 부인을 며느리에게 띵겨 버릴 심사였고
내가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제는 이야기 해야겠네...
자네 어머니, 중풍에 자네도 장애인일세.
우리 집은 자식들이 독립해서 자신의 생활들 자신들이 하고 있네...
자네는 장남에 결혼 안 한 형제가 있고, 내가 좋아서 결혼시킨 줄 아는가?
자네 집이나 우리 집이나 비둥 비둥하네...자네 집은 뭐가 그리 잘나서 이쪽을 무시하는가?
못 배웠다고 하는데 못 가르친 것은 또 무엇인가?
시엄마가 그렇게 이야기 했다면 이해하네...
어른은 시간 지나서 그런 말을 하고서도 감싸줄 수 있네...
남편, 한쪽에서 얼굴을 못 들고 있습니다.
친정어머니가 이렇게 몰아부치는 것은 처음 봅니다.
친정어머니의 속이, 속이 아니겠지요.


남편, 며칠 후 경동시장에 가서 가물치며 호박덩이 낑낑대며 주안까지 사들고 옵니다.

다음날, 친정엄마...동대문에서 남편 나오라 해서 사돈 추석선물로 버섯세트 사다가
남편 손에 들려주면서 "사돈 어른 좋아하실지는 모르겠네..."
장모님 하지말고 '어머니'라 부르게...
저도 한 마디했지요.
내가 시어머니 앞에서 시어머님, 시어머님 하면 별로 안좋겠군...
남편, 지금은 어머니, 어머니 합니다.

추석 때, 시가에 전화를 해야하는데
말로써 이미 넘길 선들을 넘었고,
시누가 전부 전화를 받던데
어찌해야하느냐 하자 한참 생각하다가 시누를 무시하라 하더군요.
그러면서 한마디가 '대신에 대접받을 생각하지 말라'합니다.
저는 대접받을 생각 추호도 없었습니다.
이건 또 웬 말...
내려가서 내게 전화해서 시부를 바꾸어 줄테니
인사하랍니다. 그렇게 넘겼습니다.

그런데, 추석 때 혼자 서울 큰집 갔다가, 지방의 조상 묘 들렀다가
시고모집까지 인사가면서 장모한테는 한마디가 없더군요.

제가 따다닥~~~~해대니
남편 잘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서 엄마한테 전화했더군요.

산후조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시부생신이랍니다.
아이 데리고 내려간다고 하네요.
제가 반박을 했지요.
나는 괜찮은데 아이는 한달10일...
아이가 그 먼거리(왕복 10시간)를 힘들어서 가지 않는다고...
출산비용(자연분만+무통분만+인큐베이터)까지 들어서
힘 닿는 대로만 하자고 하는 나와
생신가는 것은 당연해서 경비를 빌려서 가자는 남편과 티격태격.

시부생신이 다가올수록 고민했습니다.
시누이 보는 것도 힘들고 이런 상황에 못 내려가니 하트가 그려진 카드와 선물을 준비해서
우편으로 보낼 요량이였습니다.
시부가 신행 때 내게 시어머니 모시라고 했던 것은
그 시대의 사고라고 생각하고 나서 마음속이 편해져 버렸고
어른은 어른이라 그것만으로 축하 드리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또 열을 받습니다.
조상 모신다고 대구에서 서울 큰집까지
2달 간격으로 올라오는 시부께서
아이는 내려오라는 것을 생각하니 화가 납니다.
어른들이 신생아를 오라 가라...
어른들도 힘든 길을 경기를 일으킬지 모를 신생아를...
죽은 자의 제사는 뻔질(흐미~,갈수록 거칠어집니다)나게 다니면서...
막 태어난 손녀가 어떤 상태인지 말도 못하는 아가를 보고 귀엽다고 할
모습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치고
도대체 어른들이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 건지...
아이를 가진 것을 티낸다는 시누나 남편이나 다들 인간미라곤 하나도 없다고
남편에게 강경하게 나갔습니다.

남편에게 "그렇게 빨리 보고싶으면 어른들이 움직여~뭐하는 거야"
"당신도 어른들이 보고싶다고 딸을 무리해서 데려가고 싶어?
"아기가 경기 일으킬 것 생각해 보는 거야?"
부전자전에 부전모전이란 말이 입에서 뱅뱅~~~~차마 말을 못꺼내고...
에잇...

시부생신 날, 산부인과 병원을 가면서
빌딩들을 봅니다.
이런 모습들이 결혼인가...
그 동안 시가에서 할 것만을 강요당한 입장이라
이제는 아니다.
시부생신 전화해야 말아야 하나 고민스럽더군요.

시누에게 당한 이 모멸감들, 시누는 도저히 용서가 안됩니다.
나아지는가 싶더니 아직도 헤매는 남편
그들이 정해놓은 맏며느리의 위치,
이곳에 글을 쓰면서 많이 방황했지요.

시가에서 요구하는 것들은 포기시켜버리자는 생각이 들었지요.
아침마다 여지없이 떠오르는 시가, 이미 속병이 들기 시작하고
얼굴에 자신감도 잃어버려가고 있는
내 자신의 중증을 없애버리기 위해서...
병원을 나서면서
서점으로 향했습니다.
에잇~~~
틀을 없애버리는 거얌.
숨막히는 유교적인 틀 다 깨버리자!!!!

내 사고나 몇 개월간의 고민이 과연 어떤지 궁금해서
읽고 싶었던 이하천의 '나는 제사가 싫다'를 여러 서점을 들려
어렵게 입수했습니다.

그날 저녁, 책상 위에 책의 제목이 보이게끔 놓고서
남편에게 할말이 있다면서
'아버님께 전화 안했어',
앞으로 당신에게 우리 부모에게 이리하라고 강요도, 기대도 하지 않겠다.
내 스스로가 틀을 깨버리기로 했어.
시부생신 제낀 것은 미안하지만, 기회로 삼았다.
시누가 정녕 자신의 부모를 생각한다면 나한테 이렇게 할 수가 없다.
이미 하라 마라 미리 손대서 신혼도 깨졌고 겪어보지 못한 이 지독한 모멸감과
내려가서 부딪힐 상황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시간이 지나 내가 앞으로 우러나오면 스스로 하겠다.'했죠.
(저의 내심에는 '너가 그렇게 배웠냐'는 말이 친정엄마를 욕하는 것이라
판단하니 용서가 안되고, 친정엄마에게 전화까지 해서 따질거라 하니
기가 막히고, 올케에게 할말 다하면서 자신의 부모들은 알아서는 안된다고 미리서 배수진을 치고...
그래...너의 그 태도로 무엇이 너를 괴롭게 하는지 느껴봐라 라는 심사가 자리하더군요.
시부생신에 전화 안하는 것은 예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자신도 생각하지만
너가 한 행동과 말들이 우리 부모를 욕되게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한번 느껴보시게나 하는 심정이었죠.
며느리가 제 부모생신 안 챙기는 것을 보면 어떤 느낌일까요?
제 부모가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것은 뻔하겠지요.
내 부모를 무시했으니 부모가 무시당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번 당해보시게...)
저 무섭죠?

무조건 두 분 생신 때는 내려가야 한다고 하는 남편 말에...
축하할 일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아니다면서...
시어머니 생신도 앞으로 제낀다고 했습니다.
시어머니 생신만큼은 챙겨드리고 싶은데...
시누가 매일 시어머니 옆에 있고 생신 때
같이 있을 자신이 없는 저이기 때문입니다.

남편 '그렇게 살아라'라는 한마디만 하더군요.
당신이 우리 친정을 그렇게 보는데...나도 똑같이 할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기로 스스로 마음먹었습니다.
남편에게 '이런 상황에선 각자의 부모들에게 할 것이 있다면 자신들이 하자'
라고 했습니다.
결국 부모에 관한 일은 형제들이 지극히 해야한다는 제 의지를
제 입에서 한 셈입니다.

사들고 온 책을 읽어 제꼈습니다.
내 사고가 과연 어떤지...
위험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맏며느리의 이런 상황이라면 그리고 이곳에서
고민하는 이야기들, 어디에서 고민이 오는가를
스스로 알게 되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다음날 퇴근 길, 남편, 소주 2병 사들고 옵니다.
안주를 사다가 옆방에서 혼자 마셔댑니다.
'이야기 좀 하자, 어떻게 살고 싶은데'하고 묻습니다.
'대화를 하면 꼬이기만 하니 글로 쓰겠다'하고서
중간 중간 자신에게 '착각하지 마라'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지금 남편에게 띄울 글을 어렵게 작문하고 있습니다.

생후 2개월 된 딸을 봅니다.
부모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느끼면서
딸이 커서 자신의 길, 자신의 사고와 선택에 따르겠지만
사회에서 평등하게 살고 남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엄청 중요)이 무엇인지를 터득하는 것은
집안에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고 사는
엄마의 모습부터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정어머니도 유교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 분위기에서 자란 나이지만
결혼을 통해 내 집부터 불평등함을 없애는 것이 우선이라 봅니다.

시가가 지극히 유교적인 사고로 나를 지배할려고 해도
나는 합리적인 부분에서는 끌려다니지 않을거라 작심했습니다.
그리고 내 잠재의식 속에 맏며느리는 이렇게 해야한다고 부모에게서 받은 무언의
사고들이 그동안 나를 지배해서 결혼과 동시에 자신을 스스로 얽매이게 했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훌훌 털어버리기로 했습니다.
시가의 집안에서 그 집 장남이 어떻다는 둥, 그 집 며느리가 어떻다는 둥
말을 날라도 동요 않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잠잠해지면 시부모에게만 기분 상하지 않게 할 것입니다.
시누는 왕따 시켜버릴 작정입니다.

새댁이 시아버님 생신을 챙기지 않아서 딸이 그것을 보고 배운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제 딸에게는 시부생신, 시모생신도 불합리한 상황에서는
제낄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너희 시가가 이러이러해서가 아니라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자라게끔
방법을 터득해 보겠습니다.

그동안 이곳에 하소연 하면서
스스로 마음도 잡혔고, 내가 몰랐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가에서 결혼으로 새로운 사람이 등장했는데도...
그 새로운 사람을 대하는 데에 시가에서 기본적인 예의가 없다고 판단합니다.
인권에 관해서는 아예 무식한(나쁜 어감이 아니라 아는게 없다는 표현) 사람들이라고...
또 하나는 나를 그토록 거부하는 이유는 시가 자신들도
편히 살고 싶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습니다.

3일 뒤, 마지막 내가 해야할 도리를 생각하면서 가게의 시부에게 전화를 드렸지요.
가는 귀 먹으신 시부, 손님이 많아 몇 시에 다시 전화하랍니다.
남편 들어와서 입이 귀에 걸렸네요. 좋은가 봅니다.
시간은 흐르고 취중이라 내일 다시 전화를 드리겠다고 하니
제 눈치만 봅니다.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남편에게 시누의 전화가...
시누..."전화했었어?"
남편..."안부 전화한 거다. 너 고생이 심하지?" 둘이서 쏭알 쏭알~~~
(흐미, 자신의 부인에게 막말을 해대는 여동생에게 부드러운 그 목소리란...
제 속으로...그래...형제간에 동생한테 잘 하려는 당신의 의지를 나는 알고 있지...
당신은 내가 이혼을 결심했어도 형제애는 형제애라고 생각하고 있군...
빗나간 형제애로 생각되지만 따지지 말자...
넘기면서...에이구...이 배신자야~~~~형제애가 무엇이길래 여동생하나 못잡고
부인에게서 이혼 당할 위기까지 만들고, 양쪽에서 당하나~~~
그래...형제애가 통한다는데...거기에 나는 끼어들지 않을 거다...
여동생의 행태를 그대로 보아 넘기다니...여동생을 사랑하는게 아니고
여동생이 마음 다치는 이야기는 피하는 구만...
그래... 그 잔잔한 미소에 내가 꽁깍지가 씌었다.)

나...... "당신이 오늘 전화했어?"
남편..."아니, 안했는데..."
(시누이가 받을까봐 시부에게 전화 드렸는데
시누이가 반응을 보이네...거참...내가 했는데...가만 있지...왜 그러지?)
나... "이제 알았어". 한마디 내뱉고
속으로 시아버님은 모르시는구나. 다행이다 싶고,
시누는 철벽이구만...자신이 자신의 집일을 다 알고 있어야 속이 편한 miss...
역시나 너는 엄마에게서 배운 그대로를 하고 있고, 그 집의 시엄마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순간 알아챘지요.

조금 있으니 시부에게서 전화가...
시부의 생신을 제꼈는데도 늘 앉아서 전화 기다리지 않고
전화하라고 야단 안치시는 시아버님...자신 부인을 장남에게 띵길려 해서
어른 대접 안하려고 마음 먹는 맏며느리이면서도 시아버님을 사랑하고 싶네요...
이미 상황을 간파하고 계신 건가?

남편과 연애할 때 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했던 남편...
남편의 손가락이 잘릴 때 자신의 손가락을 주겠다고 했던 시아버지...
내가 흘리는 눈물이란 것은 우리 엄마의 뒷모습...남편의 아버지에 향한 그 눈...
아~~~~~울고 싶어라~~~~

그러나 개혁은 개혁이겠지요?
남편이 언젠가 "본가(대구)의 무뚝뚝함에 웃음을 지어낼 수 있는 것이 너이고...
개혁할 수 있는 것이 너다"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제 성격이 활달해서랍니다.
남편의 본가에선 식구가 모인 식탁에서 말 한마디 없다는 것이었죠.
밥먹을때는 복 달아나니까 말하지 마라 라는 시가의 분위기...
나는 그때 왜 그것을 내게 기대하는가 스스로들 하지라고 반박을 했지요.
이 부분이 어렵습니다.
시가를 내려가면 시누는 제끼고 화제거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에이구~~~

남편은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제가 결혼하고서 친정어머니의 뒷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아픔,
남편도 부모에게 향하는 마음.
남편이 알아서 해주면 좋겠지만 나만큼 모질지를 못해서
모진 제가 칼을 빼드는 수도 괜찮겠지요?

저는 지금 유교문화와 장남문화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결혼해서 5개월 동안 제가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느낌.
좋군요.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니 거기에는 우리가 너무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시가로 인한 잘못된 인습은 깨져야 합니다.
공부를 하니 살 맛이 나네요.
동요도 안할 겁니다.

그러나 정녕 만삭의 임산부가 새벽에 남편에게서 맞고 있는 상황과
그 원인제공이 남편에게 있다면
참다못해 새벽 2시에 시가의 도움을 받으려고 전화 한 것은 잘못된 일일까요?
시동생이 전화를 받았지만 제가 직접 시부에게 전화를 했었어야 옳았을까요?

리플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