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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얘기,들어줄래요


BY 미쳐가는못된년나 2003-01-25

내 얘기, 들어줄래요. 아줌마닷컴 회원 가입해, 칠이년 쥐띠 동호회만 들락거리다 어느 날 갑자기 너무 회의가 들어 화들짝(?) 탈퇴했다가 오늘밤 또 기어들어왔어요. 웃기죠, 갈곳 없는 여편넵니다. 이런 토크토크 코너도 있었군요. 익명을 보장하는, 그리고 공감을 주워가는 곳. 좋군요.

저는 홀시어머니와 그의 효자 외아들 그리고 돌이 막 지난 딸과 살고 있는 며느리이자 마누라이자 엄마입니다. 전엔, 웃기지만 잡지사 기자였어요. 번역도 했고 백수로 지낸 시간도 적지는 않았습니다. 대학동기와 결혼해 야, 너, 이러면서 지내는 외양으로만 보자면 되게 편하고 재미있을 것 같지만. 제 결혼생활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불협화음과 부조화와 불합리 그리고 세습되는 관습과 착한 여자 컴플렉스, 그 자체입니다.

남편은 해외출장이 잦은 일을 하고 있어요. 미국서 몇 년 근무하다 들어와(미혼 때) 여기 회사 해외사업부 취직해서도 한 달에 절반은 외국 돌아다녀요. 그 사이 홀시어머니와 사이좋게 지낼 것을 '명'받은 관계로 결혼생활은, 남편보단 시어머니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절대 중요했죠. 시어머니는 옷도 사주고 외식도 시켜주고 심지어 애기 낳았을 때 용돈에, 꽃바구니에 카드까지. 남편이 안 하거나 못 하는 일을 전부 자처해서 했어요. 봐라, 이렇게 좋은 시어머니 또 있냐 이러면서.

저...
지금 죽어버리고 싶어요. 이혼하자니 무섭고 계속 살자니 미쳐버릴 것 같고. 남편이, 지난 연말 플라자호텔 뒤 북창동 플레이보이(라고 무척 유명한 홀딱쇼 보여주는 곳 중 하나로 한 사람에 적어도 사오십만원은 내야 술도 먹고 여자도 먹을 수 있는 곳, 아는 게 병이라고. 선배 기자들 종종 거기서 스트레스 풀 때 속으로 미친새끼, 이러면서 겉으론 아, 그래요 하고 이 얘기 저 얘기 온갖 더러운 얘기 다 들어 어떤 곳인지 동네 목욕탕만큼 훤해요...)에서 친구랑 놀았던 영수증이 나와 한바탕 했어요. 같이 자는 것도 싫고 손이 닿는 것도 싫고 눈이 마주치는 것도 싫고 심지어는 그와 결혼해 이러고 사는 저조차 싫어요. 스무살 때부터 봐온 친구라 서로 잘 안다고 믿었는데. 그래서 물려받은 재산도, 특별한 재능도 없고 이상형도 아니지만 그냥 친하니까, 서로 잘 이해하니까 결혼해 이러고 사는데. 개새끼, 저 원고 써주는 회사 볼 일 있어 서울 나간 김에(용인 살아요) 친정 간 사이 그렇게 지랄을 한 거예요.

남편이,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그런 곳에 간 것부터 다 미안하다고. 영수증 발견하고 "너, 북창동 갔더라"이랬더니 대뜸 그렇게 나왔어요. 메신저로 잠깐 얘기했고, 전화로 싸웠고 밤마다 울음이 터졌어요. 늘 바쁘고 정신없이 쫓기는데 간혹 불쌍하다가도 마치 간통현장을 본 것만 같은 더러운 기분 들어 도저히 맨정신으론 앉아 있기가 어려웠어요.

시어머니, 우리 멋진 시어머니 왈. 초장에 네가 그렇게 세게 나오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어떡하겠니. 애까지 있는데, 헤어질 수도 없고. 나도 너한테 불만 많지만 참고 산다. 네가 마음을 열고 이해해라. 토할 것만 같애요. 부부싸움에 불쑥불쑥 끼어들어 제 아들 편드는 것도 역겹고 내 인생 좌지우지 자기 마음대로 머리채 휘어잡고 끌고 나가는 것도 화가 나고.

전부 귀찮아요. 자기 생일이라고 백만원 짜리 코트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육십만원 일시불 끊게 만드는 시어머니도 귀찮고 비행기 타고 멀리 멀리 출장 갔으니 이제 마음 좀 풀렸겠지, 제멋대로 구는 남편도 귀찮고, 용돈 삼만원이 웬말이냐 미니멈 오만원 웬만하면 십만원 내놔봐라 하는 시외할머니도 귀찮고 하나밖에 없는 시누이 강남서 잘 나가는 전업주부, 그런데도 궁상 떠는 꼴도 귀찮고...

집에 모아뒀던 위스키, 처음 손을 댔어요. 남편 출장 가고 집 비운 사이, 티 안 나게 평소처럼 일도 하고 책도 보고 테레비도 보고. 미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환멸에 또 환멸 겹겹이 쌓여가는데. 취하지 않고는 잠들 수 없는 밤이 벌써 한 달 돼가요. 모든 게, 절망스럽고. 재미없어요. 제가, 엄살을 떨고 있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