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친정엄마에대한 미움을 참을수가 없어서 여기에 쓴다.
그 지긋지긋한 기억들이 오늘 나를 몹시 괴롭히고있다.
다 지난 일이라고 마음을 추스리고 달래지만 그 지옥같던 시간이 자꾸 떠오른다.
엄마와 동생이 싸울때마다....
위로를 받고싶어서 글을 올려본다.
시사프로나 뉴스를 보면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대부분 아빠이더라
그러나 나는 나이 스물셋이 될때까지 엄마에게 맞아왔다.
지금의 남편에게 도망가듯이 동거를 시작한 덕분에 학대받은 기억은 거기까지이다.
울엄마는 처녀시절 유부남인 아버지를 만났고 그사이에서 내가 태어났다.
유뷰남과의 관계가 오래갈수 있었겠는가.
엄마는 혼자서(?) 술장사를 하신다는 이유로
나는 버려지듯이 할머니에게서 자랐다.
(그나마 내가 제일 감사하는것은 나에게 지극한 사랑을 쏟아주신 할머니....그분을 생각하면 아직도 목이메이고 콧날이 시끈거린다.)
엄마는 나를 미워하셨다.
물론 잘해주신적도 있지만...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난 엄마의 화풀이 대상이었다.
다혈질적인 엄마는 무슨문제든 화가나면 나를 때리셨고 할머니와도 가끔씩 육탄전을 벌인 기억이난다.
할머니는 항상 너희엄마가 여자의 힘으로 가장노릇을 하려니 얼마나 힘이들어겠냐면서 엄마를 이해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엄마를 미워한적은 없었다.
난 엄마와떨어져 할머니와 살았던 관계로
엄마가 보고싶었지만 갈수없었고 한번씩 엄마가 와도 좋다고 허락하면 엄마집에갈수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때쯤 버스를 타고 그날도 설레이는 마음으로 엄마의집에 갔었다.
그런데 아기가 있었다. 내 동생이란다.
엄마와함께살고있는 아기가 부러웠다.
그것도 잠깐...
난 나에게도 동생이 생겨서 너무 기뻤고
나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너무나 기뻐했다.
그이후로도 동생은 엄마와살고 나는 할머니와 지냈다.
중요한 사춘기시절 나는 엄마가 어떤 사람이라는것에 눈을떴고 반항하기시작했다.
엄마를 지나간 남자들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내 아버지까지도...
할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몇년을 할머니에대한 그리움으로 허약해져있었다. (그때만큼은 엄마도 나에게 잘해주었던것 같다)
엄마랑 같이 살면서
고딩때 엄마는 동네 언니들이 놀러온 자리에서도 내가 말을 듣지않으면 매질을 했었다. 그때는 정말 너무나 창피하고 퍽퍽소리가나게 맞았지만 아프다기보다는 수치스러움에 치를 떨었었다.
동생은 인형처럼 이쁘게 생겼다.
내가 봐도 정말 이쁘다.
엄마는 동생에게는 많은 사랑을 쏟았다.
내게는 고등학교 졸업시켜준것만도 감사하라고 큰소리를 치면서 동생은 대학에 그비싼 학원에....
그덕에 동생은 참을성도 없고 허영심도크고...
며칠전 엄마는 동생과 싸웠다면서
나보고 동생에게 전화해서 타일러보라고 하신다.
나이 육십을 바라보는 엄마가 동생에게 대접 못 받고 사는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바로 전화를 했지만 바쁘다며 끊고 통화할수가 없었다.
다시 통화를 하긴했지만 역시 동생은 나를 언니로 생각하지않는것같다.
그래도 나는 니언니라고 엄마연세를 생각해서라도 그러지말고 잘 좀 해드리라고 너 시집가면 내가 모실거라고 큰소리를 쳤다.
어제 엄마에게 전화를 해봤다. 동생은 잘하냐고..
비싼 선물이랑 용돈이랑 받았다며 만족해하신다.
사과도 받지 못하고 선물에 흡족해하는 엄마가 너무 화가났다.
그렇게 사과말한마디없이 선물로 때우려는 동생이 너무 싫다.
또 싸우고 나면 나에게 전화를하겠지...
이젠 친정일은 신경쓰고 싶지않다.
엄마에게 사랑받고싶어서 선물도 돈도 해드렸지만 그때뿐 엄마는 내게 관심이 없다.
이제는 사랑받고싶지도않고 노력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환경에서도 나를 이만큼 키워주셨던 할머니께 감사하며
어긋나지않게 잘살아준 나에게 감사하며
정말 힘든 순간에 나에게 안식처가 되어준 남편에게 감사한다.
결코 엄마,동생흉을 보려는것은 아니다.
단지 너무나 상처가 많기에 오늘은 마음이 너무아파서
누군가의 위로를 받고싶어서...
마음이 아프다.
난 아직도 자다가 엄마꿈에 울면서깬다
이런 내가 너무싫다.
나이가 서른다섯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