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시골에서 어렵게 자라며 엄마의 이유도 모를
오랜 병고로 인해 난 대다수의 친구들이 자연히 가던
고등학교를 가지 못했다.
너무 배우고 싶었는데....
하얀 교복을 입고
스타킹 신고 까만 구두신고
묶은 갈래머리 나폴대며
센치한 여고생이 되고 싶었었는데....
정말 너무 그러고 싶었었는데....
산업체 학교엘 갔다.
하루 3교대로 돌아가는 방직공장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교대를 바꿔가며
새벽에 일어나 졸린눈 억지로 비비며
새벽별을 친구삼아 출근하고
더운 여름날 오후근무땐
현장입구에만 가도 후~~~욱 끼쳐오는
더운 열기에 등짝은 온통 천일염을 뿌려놓은듯
왕 땀띠로 고생을 했었지.
야간반땐 자정만 넘으면 쏟아지는 잠으로
비몽사몽 헤메며 선잠에 물 마신다는게
손에 들고 있던 도구를 입에 물고 있던
선배에게 뭐하는 거냐니까 물먹고 있단다.
밤별 보며 어린 나이에 집에 가고싶어
무던히도 울었고 옥상에서 하모니카 불며
향수를 달래던 참 모질도록 힘들다고 느꼈던
그 한때 4년이란 시간....
그래도 중도포기 않고 졸업을 했고
졸업장 손에 쥐던날
이제까지의 고생은 봄눈녹듯 사라지고
그저 자신이 대견하고 뿌듯하기만 했었지.
그걸로 끝인줄 알았다.
내 인생에 있어 고생은
지독히도 힘들다고 느끼던
삶의 나날은 이제 다 지나고
이제 내 인생에 쓰라린 고통은 없을줄 알았다.
결혼후 만난 여고 친구가 남편과의
힘든 결혼생활을 털어놓으며 딸만 둘이어서
남편이 바깥으로 돌면서 온갖 추잡한 짓을
다하는가 여겼다.
아들을 하나 더 낳는게 어떻겠냐는걸 절대 말렸다.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너만 더 힘들어질거라고....
근데 이미 그때 아이가 뱃속에 있었다.
죄많은 소리를 했다.
1년이 지날즈음 그 친구의 소식을 들었다.
남편의 여전한 행태를 더는 견디지 못하고
꽃잎같은 자식새끼 셋을 떼놓고
몰래 도망을 가버렸단다.
친정까지 찾아가 행패를 부리는 신랑에게
이혼소리는 감히 못했으리라.
정말 가슴이 아팠다.
어디가서 맨몸으로 어떻게 살까.
제 한몸 견딜수야 있겠지만
눈에 밟히는 고것들은 어찌 잊을까.
5년이 넘은 지금 뭘 한들
어느정도 기반은 잡아서 중심을 갖고
어디서든 떳떳하게 살고 있으리라.
야무지고 말도 참 아끼던 그녀가....
그 일이 이제 내 일이 되려고 한다.
나도 결혼을 했고 두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대학을 나온 남편,
동네에서 대학나온 남편을 맞은 친구는 나 뿐이었다.
내심 내 능력인듯해서 혼자 흐뭇했다.
남편은 술주정이 심했다.
아니 점점 세월과 함께 심해져 갔다.
더러 부딪치다가 손찌검이 오가기도 했다.
술취하면 온갖 주접스런 말들도 했다.
그래도 참았다.
지나면 나아질거라 애들이 커면 괜찮을거라 여겼다.
근데 아니였다.
밤잠 못자고 술취한 남편 피해 애들 손목끌고
도망도 무수히 다녔는데....
동네 시끄러워 챙피스러워 정말 정말
내색않고 드러내고 싶지 않았었는데....
이젠 여자까지 생겼다.
내가 알고서 끊었다고 하면서도
이어져 온지 8개월이 넘었다.
이제 아무것도 남은게 없다.
재산도 모은 돈도....
그저 빚만 수천 재산처럼 남았다.
이혼하려 한다.
나가려니 등짝 누일 방한칸
얻을 돈도 없다.
나가서 당신 좋아하는 여자와 살라고
?은인생 마음 속이며 살지말고
하고 싶은데로 하래도
그럴땐 그년 친구일뿐이며
나를 사랑한단다.
절대 이혼은 안해줄태세다.
나보다 대여섯 더 많은 그녀.
자기보다 연상의 그녀가 좋긴 좋은가보다.
거질말로 일관하며 아직도 나를 기만하고
있는 남편이란자.
결혼하면 이젠 행복할거라 믿었는데....
힘들었던 여고시절을 옛일처럼 얘기할거라 여겼는데....
내 인생의 고통은 어디까지 일까.
내일의 내 삶에 준비되어 있는 불행은 또 무엇일까.
두렵다.
조용히 정말 눈감고 자다가 아침에 싸늘해져버린
주검을 맞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