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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연세 높으신것 흉 아니에요


BY 엘리나 2003-08-05

어제 아침에 동기인 김부장의 친정모친께서 별세하셨다는 말을 전해듣고 후배들에게 연락하여 문상을 다녀왔다.

일흔 하나이셔서 좀은 아까우신 나이지만  덜 아프시고 돌아가셨다고는 하나 동기의 눈에는 눈물이 그득하다.

 

왠지 요즘은 노인들과 같이 하는 날들이 참 많다

 

 오늘은 남편이 방학동안 아내의 건강을 돌보라고 종합검진을 신청해놓았기에 일찍 검진을 마치고 나름대로 영양을 보충 하려고 근사한 곳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데 막내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동생은 지금 출근하려는데 어제 저녁부터 할머니(내게 외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다고 언니는 방학이니 병원에 모시고 가란다.

 

날이 너무 더워 두시 넘어 차를 몰고 가 보니 할머니께서 앉으실 휠체어가 바람이 빠졌나보다

 

끙끙대며 딸과 함께 자전거방에 가서 바람도 넉넉히 넣고 동생집에서 할머니를 방바깥으로 모시고 나오는데만 땀을 한참 쏟았다.

 

이런때는  덩치 크고 힘이 센  내 아들놈이 있으면 업고 갈텐데..아쉽기만하다

병원에  가니 할머니는 의사선생님께 투정을 부린다.

 

 안아프게 해 달라고 ...

그 선생님은 나에게 웃으며 90넘어 사시는데 안아플 수가 있나요.

나도 아픈데....

 하면서 약을 짓고 나는 영양제가 든 링겔을  부탁드렸다.

 

설사 효과가 없을지라도 할머니의 마음이 잠시라도  의지가 되도록 말이다.

 

영양제가 투입되는 두 세시간동안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 어린 시절 초등학교때부터 어머니는 잘 살아보겠다고 사 남매를 두고 열심히 일하셨고 그 후유증으로 서른일곱의 나이에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두고 눈을 감으셨다.

 

그 때 막내는 여섯살

할머니에게는 외동딸인 엄마를 잃었지만  할머니는 그 다음날부터 강해지셨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요즘은 기초 생활 수급자니  의료보장이니 있지만 그 당시는 그런 제도는 아무데도 없었다.사위는 어디론가 돈을 벌겠다고 떠나고 남겨진 아이들을 먹이고 공부시키려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런데도 이웃에서 500원을 빌려서 시장에 가서 무언가를 받아와서 팔고는 100원을 남기고 우리 책을 사주셨으며 또 빌려서 작은 밑천을 삼으셨다.그리고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수학여행비를 여러 군데 가셔서 빌리시고는 내가 출발하는 운동장에서 주머니에서 백원을 꺼내주시면서 용돈으로 주셨다.

그 마음을 나는 기억하고 내가 교사가 되어서는 수학여행을 갈때 그리고 학교에 돈이 들때  아이들을 유심히 살피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자세도 그 때 경험으로 배웠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항상 너희들은 공부해야한다.

꼭 대학에 가서 너는 선생님이 되어라 하시면서 도라지도 까시고 온갖 일도  하시면서 잠시 틈이 나면 골목에 앉아서 멋쟁이 아가씨가 입고 가는 옷을 유심히 보시다가 인근 허름한 양장점에 가서 정말 요즘말로 할부로 원피스를 한 일년에 걸쳐서 이천원 삼천원씩 끊어주시면서 내 옷도 해주셨다.

 

지금 멋쟁이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안목도 비록 돈이 없어도 할머니는 그때 나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아닐까?

 

그리고 공부를 안하고 책상에 졸고있으면 불호령이 떨어지셨다.

 

 할머니는 교육도 안 받으셨지만 정말 우리 사남매에게 사랑과 사람이 살아가야할 길을 가르쳐주셨다.

 

그 덕에 나는 교사도 되었고 오빠도 고학을 하여 회계사가 되고 여동생도 작지만 자기 사업을 한다. 지금은 막내동생이 할머니를 모시고 내 인근에서 살고있다.

 

동생은 결혼보다 자기 일이 좋다고 할머니와 아주 밀착되어 정말 내가 봐도 참 잘한다.

돈도 많이 벌었나보다

 

우리 남매들은 동생이 고마워 무엇이든 보답하려 애를 쓴다.

 

 흐르는 세월에 장사 없고 이제 할머니는 남들이 이제 그만 사셔도 된다는 아흔 하나이시다. 불면 날아갈듯한 가녀린 몸으로 나를 맞으시고 내 아들에게도 언제든 사랑을 베푸신다.

 

그렇게 힘들던 시절

앞도 보이지 않고 절망적일때 돈 한푼 없이도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할머니이다.

요즘 가끔씩 돈때문에 생명을 자식과 버리는 것을 볼때 마음이 착잡하다

 자식은 엄마의 소유물도 아니고 지금은 빛이 안 보여도 아이의 장래는 얼마든 바뀔 수 잇는데 왜? 하는 마음이 든다.

 

나는 할머니를 통해서 사랑의 실천을 보았고 자식에 대한 대를 이은 사랑이 우리 가족들이 사회에서 행복해질수 있는 터전이 되었다.

 

일년전  넓은 새 아파트로 이사온 날 아주 멋지게 집을 단장하고 할머니를 모시고 왔다.

 

할머니께는 꼭 보여드리고 싶어서이다.

 

왠 지 할머니에게는 자랑하고 싶었고 내가 결혼하면서 부터 꼬박꼬박드렸던 용돈을 얼마전부터 쓰시던 안쓰시던 더 넉넉하게 현금으로 드린다.

 

그렇게 돈이 없으셨던 할머니

 

 이제 마음껏 쓰시래도 쓰시지도 못하신다.

 

할머니가 주사를 맞으시는 동안 아들이 운동을 마치고 왔다.

당장 제가 가서 업고 오겠단다.

아들은  제 친할머니에게도 또 외 증조할머니에게도 참 정성으로 대한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항상 내 어린시절 이야기를 해주어서인지 노인들에 대한 마음도 각별하다.

 

아들이 한의대에 진학하고자 일찍부터 마음을 정한것도 아마 그런 영향이 있지않나보다

 

아무것도 없어도 엄마는 공부했다는 말에 자극받은 아들은 잠을 줄여서 공부하고 아주 열심히 생활한다.

 

지금은 물론 세월이 틀린다지만 사실 내 어린 시절에도 잘 사는 아이들은 과외를 다 했다.

 

지금보다 어쩌면 있는집 아이들은 미리부터 다한 것같다.

 

하지만 진짜 공부는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목적의식이 분명하고 동기가 분명하면 비록 출발이 늦어도 언제든 먼저한 아이들을 앞지를수 있다.

 

그리고 성공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사랑이 어린시절에는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그 분이 할머니였음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연로하신 할머니를 보면서 우리 젊은 사람들이 무조건적인 노인들에 대한 편견을 버렸으면한다.

 

아프신 분에게는 좀더 정성어린 위로와 젊은이가 수고하여 번 돈도 아낌없이 지원했으면 한다.

그분들의 지금이 바로 미래의 나이고 내 아들딸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할머니께서 좀 덜 아프시고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하고 오늘도 할머니에게 지난날의 큰 사랑에 작은 마음으로  보답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