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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이 내 불행의 시작이다


BY 밤기차 2003-08-25

괜한 내 호기심이 불행의 시작이다.

결혼전 남편이 무지무지 사랑하던 여자가 있었다.

어떤 이유로 헤어졌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적어도 내 남편이 그여자가 싫어져서 헤어진건 아니란건 확실하다. 아마 그여자쪽 집에서 내 남편이 좀 탐탁치 않았던것 같다.

이상의 내용은 11년전 결혼하기 직전 내가 장난 삼아 ' 나 말고 사귀던 여자 없어' 하고 물어보니 내 남편 입으로 술술 진술한 내용이다.

솔직히 그땐  기분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었다. 이렇게 솔직히 얘기하는거보니 뭐 별거 있는 사이는 아니었나보다 라는 맘이 좀 있었고, 그래도 이젠 내 남자다라는 베짱도 있었던것 같다.

그래도 어떤 여자였는지는 무지무지 궁금해 살짝 알아봤었다. 학번이 같아 한 두다리정도 건너니 금방 알 수 있었다. 알고 약간 긴장했었지만 흥, 하고 넘어갔다.

일단 나보다 키도 한참 크고, 공부도 한참 잘했고, 집안도 한참 좋고 객관적으로 그여자가 더 이뻤다. 그래도 그땐 괜찮었다.

 

얼마전 우연히 아주 우연히 그여자가 우리동네 살고 있다는걸 알았다.

근데 이상한건 11년전 보다 지금이 더 궁금했다. 어떻게 사는지, 어디에 사는지, 어떻게 변했는지, 혹시 내 남편도 이걸 아는지.

그냥 지나갔으면 좋았을걸 내 호기심이 발동해 내가 궁금하던 모든걸 알아냈다.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도 알아냈고, 남편이 뭐하는지, 그여자는 뭐하는지, 어떻게 변했는지도 알아냈다. 내 남편은 그여자가 이동네 살고 있는걸 모르고 있는것 같고 그여자도 내 남편이 이동네 사는지 모르는것 같다. 근데 호기심이 풀리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아니다.

혹시 난 그여자가 두리뭉실한 아줌마가 되어 부시시한 모습으로 동네를 돌아다니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 궁금해했던건 아닐까. 그런데 내가 확인한 그여자는 결혼전보다 몸무게만 5킬로그램 정도 빠진 그모습 그대로였다. 11년전에는 통통하게 귀여운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아주 날씬하고 성숙한 아줌마가 돼 있었다. 아무도 그나이로 보지 않을 것 같은 모습으로,  당당한 커리어우먼의 모습으로. 내가 죽었다깨도 살수도 없을뿐 아니라 입어도 소화못시킬 옷을 자연스럽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어느날부터 난 불행하고 불안하다. 혹시 이 좁은 동네에서 그들이 만나면 어떡하나, 그렇다고 내가 언니집 근처라고 졸라졸라 이사온 이동네를 갑자기 뜨자고 할 수도 없고.

난 오늘도 남편 눈치를 살핀다. 뭔가 달라진게 없나. 누굴 만난 기색은 없나.

모르고 지나갔으면 아무것도 아니었을걸, 알아서 난 지금 불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