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친정부모님은 그야말고 아끼고, 절약하고, 안 입고, 안 쓰시면서 30여년을 그렇게 모으셨어요. 아버진 시장장사일을...어머닌 파출부를 하시면서....저희 자식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셨죠.
지금은 다 시집 보내고 두분만 사시는데 이제 나이도 있으시고,건강 문제도 있고 해서 집에 계세요...
전 딸 셋에 막내딸이라 귀여움도 많이 받으며 자랐고, 또 부모님 생각하는 맘이 막내딸 치고는 참 기특하다는 소릴 들을만큼 보모님께 잘 하려는 맘이 많습니다.
결혼후 2년동안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났지만 신랑과 정말 알콩달콩 보내면서 한달에 2,3번 친정에 가서 친정 식구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고, 틈틈히 용돈도 드리고 하면서 잘 지냈어요.
근데 임신 후 입덧을 너무 심하게 하는바람에 너무 힘들어서 친정집 근처로 이사를 왔어요.
신랑 퇴근이 늦어도 전 퇴근후 친정에 들러 저녁먹고 오니까 훨씬 입덧도 덜 해지고, 맘도 편하고, 끼니걱정 안 해도 되고, 부모님도 곁에서 매일 보니 참 좋더군요.
그리고 한달이 지났습니다.
근데 서서히 짜증이 나고 불편합니다.
이러는 제가 너무 싫어 혼자서 곰곰히 생각해 봤어요.왜 그럴까?
첫번째 이유는 자식들에게 너무나 희생적이신 부모님, 그래서 아직도 결혼해 장성한 딸을 아기로 보는게 싫은 거에요.
임신하고서 회사다니는 저 힘들까봐 가끔 집에 오셔서 청소,다림질,설겆이를 해 주고 가시는데 왠지 집에와서 싹~ 비워져 있는 휴지통들, 잘 정리된 침대시트를 보니 갑자기 우리 사생활이 없어진거 같아 싫더라구요...고맙고 죄송 해야할 부분인데 말에요...
그리고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 얼마전 여자가 혼자가다 강도 당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 뒤로 계속 저녁먹고 제가 집에갈때 부모님께서 따라나오셔서 절 집앞까지 바려다 주고 가세요.
버스가 막혀 조금이라도 늦으면 '어디냐?'전화하시고, 주말에도 매 끼니를 챙겨주시니까 끼니때가 되어 가면 '왜 집에 전화 안 받냐?'시며 조급해 하세요. 한번은 '오는 길이니까 못 받았지'하며 짜증을 냈어요.
신랑이 출장을 가면 예전에 멀리 살땐 친정가서 자기도 했는데 가까이 살면서 매일 보니 특별히 친정에서 자기 싫더라구요...내 집이 편하지...그래서 저녁만 먹고 가려는데 엄마가 따라오시는 거에요...같이 자 준다고...
정말 불편해서 싫다고 해도 오셔서 제가 너무 기분이 안 좋은티가 많이 났답니다.
결국 엄만 소파에서 주무셨는데 그날 아침 또 그 모습을 보니 제 자신한테 화가 더 많이 나서 정말 제 자신이 미웠어요...
어제는 좀 그런 부모님이 부담스럽고 저도 좀 하루쯤 떨어져 있고 싶어서 저녁 약속있다하고 집에와서 혼자 저녁을 때웠습니다.
그리고 좀 한가하게 티비를 보는데 9시가 되니까 전화를 하시는거에요.
어디냐구? 집이라고 했더니 어떻게 혼자 가는데 무섭지 않았냐구...집에 들렸다 가지 왜 그냥 갔냐구...
정말 짜증이 나서 '그러지 좀 마. 내가 뭐 어린애야? 알았어..끊어'하고 끊어버렸어요...
그리곤 정말 제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고 미워서 혼자 막 울었답니다...
부모님은 저희 불편할까봐 눈치보시느라 집앞까지 와서도 들어오시지도 않고 도망가듯 가시고, 집에 오셔서두 김서방 퇴근전까지 가신다고 금새 일어나 가시는데...
두번째 이유는 부모님의 나약한 모습을 매일 본다는게 이렇게 힘들고, 가슴아픈건지 몰랐어요. 멀리살면서 한달에 2,3번 뵐땐 몰랐는데 매일 보니까 두분 사시는게 정말 궁상맞고, 가슴아프고, 측은하더군요...직장도 없으신 두 분께서 대충 끼니 때우시며, 자식들 걱정하시며, 아픈 몸 추스리시며 사시는 모습이라니....
그전엔 한두번 부모님 용돈 드리고, 선물 사 드리는 거에 만족해 했는데 막상 옆에 사니까 부모님 생활비 걱정도 되고, 참기름 떨어진거 같아 그것도 사 드려야 하고, 아빠 메리야스도 많이 낡았고....
왜 시부님처럼 자식들보단 당신들이 우선이고, 나이들어도 당당하게 자신들에게 투자 하시지 못할까 싶어 괜실히 화도나구...
첨엔 아가 낳으면 직장 그만두고 애만 키우며 살고 싶었는데 애를 부모님께 맡기고 내 월급으로 부모님 양육비 차원으로 생활비를 드려야 겠다 생각하니 갑자기 제가 부양해야 할 책임이 커 진거 같고....
부모님은 다 제 걱정되고, 저 편하게 해 주시려구 그러시는건데....
곧 태어날 아가 맡아 키워주실 거구, 매 끼 챙겨주시느라 힘드신데....
그 고마움을 알면서도 왜 보면 자꾸 짜증이 나는지...
다시 먼대로 이사가고 싶고...
저 정말 나쁜 이기적인 딸인가봐요....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