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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남편은 안전한가요?


BY 정재하 2003-10-17

책방에서 며칠전 산 칼럼집 <아름다운 동행>---출판사:영컴북스, 저자:김동성---이란 책을 읽다보니 한 나쁜 남편이야기가 실려있더군요. 마치 우리 남편을 보는 것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더이다. 저자가 연재하고있다는 한 사이트에 그 글이 실려있어서 퍼다가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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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씨는 아내에게 너무너무 미안했다"

 

직업상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갖가지 사연들을 접하게 된다.
특히 부부간의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사연을 접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부부들이
그 내용은 다르지만 어떤 형태로든 문제점을 안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겉으로는 원만하게 사는 부부같지만 알고보면 속으로 갈등과
불신과 오해가 있는 경우가 적지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자들끼리의 저녁 술자리에서 그런 얘기들은 자연스럽게 오가게 된다.
부부간의 문제는 은밀한 프라이버시에 해당되기 때문에 섣불리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기가 쉽지 않지만 남자들은 술한잔 먹은 김에 털어놓게 된다.
어느날 필자는 D씨와 저녁을 먹게 되었다. 압구정동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D씨는 결혼 15년차가 되는, 가정적이고 젠틀한 사람이었다.
필자와는 사업상 긴밀한 관계에 있어서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
10년 넘게 알고 지내면서, 적어도 어디 가서 '싫은 소리'는 안듣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아왔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D씨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풍겼다.
그동안 필자로 하여금 "여러가지로 안정된 사람이구나"하는
인상을 받게 하던 D씨가 그날은 이상하게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
"김국장님, 아내한테 미안한 적은 없었습니까?"
술이 얼근하게 오른 D씨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가 그렇게 묻는 의도가 무언지 몰라
잠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D씨는 술잔을 들어 한숨에 비우더니 말을 이었다.
"나는 아내한테 참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참 좋은 아내인데 나는
아내한테 최선을 다하지 못한거같애서요"
그의 얼굴엔 한줄기 쓸쓸함과 회한이 스쳐지나갔다.
"제가 보기엔 도사장님께서는 가정적이고 매사에 철저한 분이신데,
아내한테 미안할 일이 뭐가 있으십니까?"
"제가 가정적이고 매사에 철저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꼭 아내한테 최선을 다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요"
D씨는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분명 그는 자기의 아내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는 "솔직히 아내한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은 남편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필자의 말에 공감은 하면서도
"나는 특히 아내한테 미안한 남편"이라고 말했다.

그날 D씨는 필자한테 많은 얘기를 했다. 그가 털어놓은 얘기들은
어떻게 보면 그만의 얘기가 아니라 세상의 남편들이 어느 일정부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D씨는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서 그런지 돈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했다고 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은 물론이고 사업으로 전환한 후에도 돈에
대한 그의 집착은 식을 줄 몰랐고 그런 집착은 아내와의 사이에 골을 만들었다.
사업을 시작한 이후, 그는 일정한 생활비를 아내한테 주고는
돈관리를 직접 했다. 아내는 부족하지 않은 생활비를 받았기 때문에,
돈관리를 남편이 해도 별다른 불만을 갖지 않았다. 사업을 하기 때문에
수입이 일정치 않은 상황에서 아내는 매달 일정한 생활비를 보장받는
것이 오히려 편했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수입이 어떻든간에 무조건
일정한 생활비는 보장받는다는 것이 '리스크'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아내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도 있었다.
남편이 다른 주머니를 차고있다는 생각은, 물론 D씨가 허튼 곳에 돈을
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를 믿지 못해서 돈을
다 맡기지 않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아내는 정말 알뜰한
여자였고, 아이들 옷은 메이커로 사주어도 자기는 '만원짜리 패션'을
입는 식이었다. 남편이 자기한테 모든 수입을 갖다준다면 통장에
넣어놓고 알뜰살뜰 가꿔나갈 수 있을텐데. 그러면서도 아내는
"그래, 어렵게 공부해서 자수성가한 사람이니까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그렇겠지,
자기도 은근히 돈모으는 재미에 힘도 나겠지"하는 생각으로
이해를 하고 넘어갔다. 그래도 자기는, 남편이 월급봉투도 안갖다주고
생활비를 일일이 타서 쓰는 여자들에 비하면 낫다는 생각도 했다.
D씨의 아내는 일단 넉넉한 생활비를 받고 있었으니까.

그러던 어느날 D씨는 돈문제 때문에 아내와 크게 다투는 일이 생겼다.
아내가 비로소 그동안 가슴속에 품고있던 섭섭함을 토로했다.
"자기는 너무 이기적이야.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부족한 점은
없는 사람이지만 아내에 대한 마음은 100프로는 아니야. 난 부부라는게
돈이 다는 아니라고 생각해. 솔직히 나는 살다 어려워지면 포장마차라도
함께 하면서 살수 있는 각오가 돼있어. 그렇지만 자기는 나한테 백프로 오픈을 하지 않으니 섭섭한거야"
그날 저녁 D씨는 가까운 친구와 소주를 마시며 그런 얘기들을 했고,
친구는 "부부는 일심동체야. 서로 섭섭한 마음을 갖고있으면 그게 결국
골이 패이게 돼"하고 말했다. D씨는 이것저것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자기가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소홀히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내한테
100프로 최선을 다하지는 못했다라는 깨달음에 도달했다.
자기 하나 믿고 묵묵히 살림을 꾸려온 아내. 특히 시집식구들한테 싫은 소리 한번 안듣고
외며느리로서의 역할을 다해온 아내. 솔직히 D씨는 아내한테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는 있었지만, 성격상 곰살스럽게 대해주지도 못하고
그저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주니 남편의무를 다하는 거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게 사실이었다.

언젠가 D씨는 공직에 있는 친구와 술한잔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친구가 말했다.
"부부라는 게 꼭 밥먹고 사는거 지장없다고 다되는 건 아니지. 부부라는 게 뭔가?
이 세상의 수많은 남녀 중에서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자식놓고 살면서,
결국엔 노후에 두 사람이 의지하며 살 사인데, 그렇다면 모든 것을 공유하고
아파하고 견디는 사이 아니겠어? 그런데 요즘 보면
하루에도 수많은 부부가 이혼을 한다니, 이 세상이 너무 혼탁하게 돌아가는 거지.
나도 아내한테 참 미안한 마음이 많은 사람이야.
가난한 공무원 만나서 고생 많이 했지. 공무원이니까 가난은 해도 밥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었지. 그런데 나역시 아내한테 숨긴게 있었는데,
부끄러운 얘기지만 뇌물로 받은 목돈을 통장에 갖고 야금야금 빼쓰다가
어느날 여자하나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그 돈 다 날렸어. 몇천 되는데,
그 돈 진작 아내한테 줬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나한테 여유돈이 없었으면
계집질도 안했을 거고---. 그 일이야 영원한 비밀로 간직해야하겠지만,
내가 받는 양심의 고통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네. 아내 보기도
미안하지만 애들한테도 부끄러워서 두고두고 참회하는 심정으로 살았지.
그 사건 이후로 아내한테 최선을 다하자고 개과천선했지.
내가 이런 말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부부는 이 세상에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이라는 거야"

D씨는 며칠전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러갔다고 했다.
사업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부부간의 오붓한 시간을 좀처럼 갖지 못했던 두 사람은
그날 모처럼의 데이트가 무척 즐거웠다고 한다.
"오랜만에 아내 손을 잡아보니 전기가 찌릿 오더군요. 이제부터 아내를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동안엔 아내한테 고맙게만 생각했지,
가슴으로 사랑하지는 못했는데 이제는 사랑하는 마음이 새록새록 생겨나더란 말입니다."
결혼 15년 차에 아내에 대한 사랑이 싹텄다는 말이 필자에게는 새롭게 들렸다.
이 세상의 많은 남편들이 그저 생활비 벌어다주는 것으로 남편의 역할을
다했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D씨는 힘주어 말했다.
D씨의 말은 필자에게도 강한 메시지를 던져주었는데,
이를테면 부부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해주었다.
과연 나는 아내에 대해 얼마나 솔직하며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나는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며 아내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는가?
우리부부의 '충실지수'는 과연 얼마나 되는가?
필자는 그날밤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올림픽대로에는 밤이 아주 깊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