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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농사 짓는 농부의 욕심


BY 난나빠 2003-12-06

토요일인데 남편이 늦는다.

남편은 토요일 휴무인데 특근수당을 준답시고 나가서 연락도 없다.

내가 거는 전화에도 시큰둥. 그냥 좀 바쁘단다.

남편의 병이 도진걸까.

어제도 노름을 해서 돈 좀 잃었다더니.

혹시 그 노름판이 어제에 이어서 오늘 이어진 건 아닌지 아침부터 의심이 많이 일었었다.

내 손에 닿지 않는 남편의 하루

 

초등학교 5학년인 딸아이가 학교에 다녀와 내어놓는 소식이

방송반에 떨어졌단다.

준비없이 방송반 원서를 내고, 또 필기 시험에선 나래이션이 뭔지도 몰라 헤매었단다.

 

그런데,

같은 반에서 매일 모든 시험에서 1등만 하는 아이는 방송반에도 붙었단다.

 

그냥 화가 났다. 무어라 꼭 집어 표현할 수 없는 종류의 기분 언잖음.

 

사실 나도 학창시절에 이렇다하게 짠하게 살았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왜 이리 자식농사엔 욕심이 앞서는지..

왜 맨날 1등하는 그 아이를 한번도 이기지 못하는지.

 

다음주 화요일이 학교에서 학력평가를 보는 날이다.

그 학력평가에서 우리 딸이 시험을 잘 볼런지...

 

내가 맞벌이이다 보니,

5학년 딸아이가 3학년짜리 아들을 거의 엄마 수준으로 돌보고,

나 없이 심심할까봐.

이 학원 저 학원으로 하루를 돌려댄 것이 너무 속이 상한다.

방송반에 붙은 아이들 이름을 물어보았다.

나는 한 동네여서 붙은 아이들 엄마들이 얼마나 학부모회에서 열심인지

얼마나 자식교육에 열성인지도 들어 알고 있다.

내가 전업주부이고,

그 엄마들처럼 딸을 조금만 더 써포트 해 주었다면,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갑자기 아이들에게 긴장감을 조성시킨다.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다음 주에 시험보는 과목 문제집 다 가져와 하면서.

매일 하지도 않던 엄마노릇하려고 허둥지둥대는 나.

 

난나빠

맞벌이 환경에서 그래도 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기특한 딸인데

이 환경에서도 이것저것 도전의식을 가지고 열심인 딸인데

늘 허허거리며 성격 좋게 잘 지내는 딸인데

 

엄마의 속좁음을 가르치려는 게 아니거든

지금이라도 좀 웃어보자. 이 나쁜 엄마인 나야.

 

이론상으론 되는데, 감정상으로 정리가 안 되는 엄마의 욕심.

자. 진정하시고. 심호흡하시고.

나보다 나은 딸인데.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자.

 

자기 푸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