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 다니는 딸만 둘 둔 딸딸이 엄마다.
둘째 가졌을 때부터 본격적인 스트레스를 주기 시작하여 낳은 후 1년은 악몽처럼 지냈다.
내가 고기를 좋아해서 아들을 못 낳았다고도 하고 약국에 체질 개선하러 가자고도 했다.
견디다 못해 작정하고 돈 없어 셋은 못 난다며 어머님이 돈을 대 주실 수 있느냐, 키워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우리 시모는 둘다 못 하겠노라고 대답했다.
하기사 며칠 여행 갈 때조차 아이를 못 보아 주겠노라며 친정엄마에게 이야기하라고 대 놓고 말한 시모니 키워줄 리는 만무하다.
그 일년간 가끔씩 내가 미쳐가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몇년후 동서가 들어와 아들을 낳았다.
질투는 커녕 안도했다. 이제는 좀 낫겠지 싶었는데 오히려 더 쪼았다.
큰 아들의 아들하고 둘째 아들의 아들하고는 다르단다.
동서는 아들 낳았다고 기세등등했다.
작년 동서와 크게 다투고 그 과정에서 못 들을 말을 들은 나에게 오히려 야단을 치는 시모에게 실망해 둘 모두에게 오만정이 떨어졌다.(동서가 부자여서 였을까, 아들을 낳아서 였을까는 모르겠다.)
이제는 할 일은 하지만 너무 시댁에 가기 싫다. 억지로 가기는 하지만 어울리지 않고 할 일만 하다 온다.
근데 며칠전 시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요즘 새로 시작한 일(아이가 유치원에 가 있는 동안에만 하는 일이다.)에 대해 묻더니 대뜸 그럼 애는 안 낳을 거냔다. 대는 이어야지라고 하신다.
어쩐지 지난번에 만났을 때 애나 잘 키우지 하며 한숨을 쉬더라.
그게 아들이나 낳지 하는 소리였을 줄이야.
이제는 포기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구나. 내 평생 아들 낳는 일에 바치라는 소리잖아.
이제 아이들 좀 키워 놓고 내 인생 새로 시작하려고 했는데.
선택할 수만 있다면 나도 아들 하나, 딸 하나 키워보고 싶다.
하지만 그게 안되니 주신대로 딸 둘 예쁘게 키우고 있는데 우리 시모는 포기를 못 한다.
우리 때문에 (아들이 없어서) 걱정이 되어 자다가도 새벽에 깨어 두분이 걱정을 하신단다.
잊을 만 하면 날 괴롭히는 시모.
그럴 때마다 난 그 뒤 일주일이 넘게 지옥 속에서 지낸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며.
내 몸, 내 노력, 내 가족 인데 왜 다른 사람이 이리도 진절머리 칠게 날 괴롭히는가.
난 이미 선택을 했는데 왜 그 선택이 결국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사람에게서 간섭을 받아야 하는가.
날 지켜주어야 할 남편은 왜 날 지켜주지 않고 방관하는가.
강제로 어떻게 하는 것도 아닌데 흘려 들으면 되지 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느냐고 하면서.
만일 친정에서 남편에게 어떤 부당한 압력을 준다면 난 온몸을 던져 그걸 막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데 왜 내 남편은 그렇게 안 하는가.
왜 대를 이어야 된다는 웃기지도 않은 이유 때문에 내가 괴로워 해야 하는가.
시동생의 아들로는 대가 이어지지 않는단다. 끊기는 거란다.
왜 내가 속상함을 하소연 하면 흘려 들으면 될 것을 왜 그러냐며 내가 예민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일까. 본인이 당해도 그렇게 쉽게 흘려 들을 수 있을까.
이런 억울함들로 내 속을 불덩이가 들어 있는 듯 하고 내 몸은 썩어가는 듯하다.
더구나 시모는 본인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설사 자기가 잘못 했더라도 부모고 가족이기 때문에 내가 당신을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고 하신다.
며느리에게는 이리 힘들게 하시면서 아들은 천금같이 귀해하신다.
그런데 나는 시모가 어떻게 하시든 공경하며 화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하느님, 다음 생에서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특히 한국에서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