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거의 의처증 비슷한 환자인 반면 너무 가정적이고 자상한 남자다.
어찌 보면 여자를 잘 못 만나 자기 인생도 잘못 가고있었는 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고 동거에 들어 간 지 삼개월쯤 그는 입대를 했다.
가난한 그의 집 도움 받기도 싫었고
다행히 영어 수학 실력이 좋았던지라 과외를 시작했다.
한 팔에 아이를 안고 한 손은 지휘봉에 의지한 채...
산후 회음절개가 잘못 되어 앉기가 몹시 힘들어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과외시간 내내 버텨야만 했다.
때로는 쌀이 떨어진 적도 있었다.
다행히 그 날 오후 과외비를 가져 와 해결할 수 있었지만...
공순이들이 주로 자취하는 다닥 다닥 붙은 작은 방 하나를 월세로 얻어
달랑 조림식 이불장 하나 수저 둘, 냄비 하나 솥단지 하나...
공동수도에서 물 길어다 먹으며 그렇게 살았다...
난 거의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외부와 일체 단절한 체 아이를 보며
그리고 생계를 위한 과외...
전두환 시절 갑자기 과외금지령이 내려졌다.
별 수 없이 친정으로 들어가야 했다.
딸자식 곱게 키워주신 죄 밖에 없으신 우리 부모님께 또 폐를 끼쳐야 하다니...
일자리를 급히 구해야만 했다.
다행히 난 전공이 교직이라 쉽게 취직을 했다.
그는 입대 후 날마다 편지를 보냈다.
그의 절절한 사랑이-사랑인지 집착인지-차츰차츰 내 마음을 움직이는 듯 싶었다.
그래...
사랑하도록 해 보자...
누가 얼마나 사랑하여 결혼하랴...
살다 보면 정이 드는 게지...
지난 날 죽어버리려고 몇 번씩 시도했던 것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고
이젠 잘 살아야만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혼자서 자유를 얻게 되자
그동안 잔뜩 움츠리고 있었던 날개가 서서히 펴지기 시작했다.
훨훨 날아가고 싶어졌다.
그에게 매일 답장을 써서 보내고
직장 생활에 재미를 붙여 정말 신바람 나게 살기 시작했다.
난 원래 좀 모자란 여자였을까...
내 의지와는 다르게 살게 되었지만
그가 없는 시댁에도 주말마다 아이를 데리고 뻔질나게 다녔다.
울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서...
독자이신 시아버님에 장남인 그...
손주가 얼마나 보고싶으시겠냐고 늘 내 등을 떼미시던 친정 부모님...
그냥 현실에 묻혀 살기로 작정했다.
모든 걸 잊어버리기로 했다.
화려했던 학창시절.
잘 나가던 총학생회장...
난 예전의 나를 이미 버리고 없었다.
현실에 순응하며 살자...그게 내 운명이라면...
그는 날 보고 싶다며 수시로 면회 요청을 했다.
그러면 난 또 그에게 갔다.
날 지독하게도 소유하고 싶어하고집착을 보이던 그가
어찌 군 생활을 탈영하지않고 하고 있는지 신기했다.
나중에 듣고 보니 아들 때문이었단다.
그 애에게 불명예를 남겨주고 싶지 않아서...
32개월의 군복무를 마치고 우린 결혼했다.
방 얻어 줄 돈도 없는 시댁의 단칸 방의 신혼...
신혼여행도 생략하고
둘이 누우면 딱 아귀가 맞는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골방..
난 멍충이처럼 그런 생활에 아무런 불평도 못하고 젖어가고 있었다.
그는 복학 하고 나는 직장엘 다니고...
여전히 그는 내 생활 깊숙히 오만가지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또 싸움이 시작되었다.
늦으면 늦는다고 모임엘 다녀 오면 의례 싸워야 했다...
잘 나가던 여자도
퍽력 앞에서는 별 수 없이 죽어 사는 생활...
어느 날 나는 그의 어깨죽지를 콱 물어뜯었다.
선혈이 낭자한 그의 어깨를 보며 내게 닥칠 보복에 움찔해야 하는
겁 많은 여자...
눈두덩이가 시퍼런 날은 직장에서 거짓말으 ㄹ해야 했다.
오다가 오토바이에 부딪혔다고...ㅎㅎㅎ
난 정말 어딘가 모자란 여자였다.
그러면서도 뛰쳐 나가지 못하고
주위의 이목과 체면을 생각하며 위선자로 살아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