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친정아버지 올해 73살 이시고, 말씀은 없으셔도 엄마와 달리 맘속으로 자식들(6남매)사랑하고 시골서 농사짓고 살아도, 힘든내색 한번 안하시고, 맘 많은 정말 행복한 분이셨습니다.
봄이오면 이른새벽 논에 논물보러 나가시면 개나리랑 진달래를 안움큼 꺽어 오셔서 아직 잠도 덜 깬 저한테 살포시 내밀곤 하셨지요. 여름 긴긴 장마가 지나가면 냇가에 나가서 반질반질 이쁜 돌도 주워다 주시고, 한적한 시골의 한 여름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우면 하늘에는 반짝바짝 별이 빛나고, 멍석위에는 아버지랑 엄마랑 저 그리고 남동생이 나란히 누워서 별을 세며 구수한 모깃불 벗삼아 잠깐 놀러나온 송아지도 함께, 모기 달려들라 하루종일 일하시고 어린 자식들 모기 물까 밤새 부채질을 해 주시던 아버지.저희 아버지는 그랬습니다.
몇 해 전인가 엄청난 홍수가 나서 논밭 산더미에 묻혀 버리고, 도저히 복구는 엄두가 나지않아 그해로 농사 집어치우시고, 아버지랑 엄마는 호텔에 청소부 경비원으로 잡부로 몇년을 일하시고, 아버진 벌이가 좀 나은 공사장으로 나가시게 되었습니다.
큰 아파트 공사장 같은데로 가시면 길게는 1년 짧게는 3개월 정도 있다가 돌아 오시곤 했습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번 돈으로 자식들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보내고, 이제 막내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한민국 공무원으로 발령받아 결혼만 하면 되는데,
이제 좀 편하게 모시고 살아보려고 하니까, 아버지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돼 있었습니다.
계속 몸이 안좋으시단걸 느끼고 있으면서도, 괜찮겠지 하다가 이미 시간은 흘러버렸습니다.
오랬동안 힘든 일을 하신 탓인지 그렇게 건강했던 다리가 연골이 닳아서 다 없어졌고, 인공관절을 하려고 내원한 병원에서 직장암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상태가 너무 악화되어 항문은 살리지 못하고, 인공항문을 달게 되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아버지는 울부짖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냐고, 이렇게 될줄 알았으면 수술받지 않았다고, 지금은 수술한지 3개월이 조금 지났는데, 아직까지 아버진 몸과마음을
꽉 닫아두고 사십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고, 늘 그렇게 몰래 우십니다.
지금이라도 인공관절수술을 하려고 했으나, 인공항문을 단 환자는 수술이 어렵다고 하더군요. 감염이 우려가 되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말뿐, 그 누구도 도움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은 걷지도 못하시고, 마을회관에 놀러도 못가시고, 하루종일 집에 누워서 몰래 울고만 계십니다. 무슨말을 해도 전혀 반응이 없고, 그냥 돌아가시겠다는 말씀뿐..
아버지가 불쌍해서 저 정말 미칠것 같습니다.
자식위해 한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당신몸은 보살필 틈이 없으셨던 우리들의 아버지!
아버지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