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와서 글 읽어 보면 시댁과의 갈등으로 고생하시는 며느님들
이 땅에서 왜 여자는 이렇게 살아야 하나 안타까운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죠
저도 그런 맏며느리로 산지 8년이 됐구요
속상한 얘긴 아니지만 이번 추석을 지내면서 시어머니와의 이런저런 느낌들을
적어보려구요
이번 명절은 유난히 길어서 5일동안 꼼짝 못하고 시댁에서 충성만 하다 왔지요
냉장고 청소,김치담기,커텐빨기,유리창 청소.....
5일을 지내는 동안 속이 부글부글 끓은 적 한 두번이 아니었지요
나는 여섯시부터 일어나서 일하고 있는데 아이들 떠든다고
"애비가 자는데 좀 조용하지. 일하느라 피곤할텐데 잠이라도 푸욱 자야지"
그 얘기 들으면서 저 어머님 얼굴 한번 쳐다봤습니다
속에서 불쑥 치미는 뭔가를 억누르면서
"그래 어머님이 저렇게 위하는 저 위인이 바로 내 남편이 아니던가
나의 밥줄인 남편 푹 자라고 위로해주면 시어머니보다 내가 덕볼일 더 많지"
그렇게 생각하니 새벽잠 못자고 일어나서 충성하고 있는게 그다지 억울하진
않더라구요
추석전날 추석 장보기 하자고 시어머님 같이 시장엘 가자고 하더군요
그때마침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목욕을 가고 없어서 차를 쓸 수가 없을 것 같아
"어머님 조금만 기다렸다 애비 오면 같이 가지요"
그랬더니 성격 급한 우리 시어머니 (아님 자기 아들 짐꾼으로 힘들까봐서였는지...)
"다른집 며느리들은 시어머니하고 시장보러도 잘 가더라만 너는 왜 그러냐?"
하시면서 혼자 가버리시더라구요
가만히 생각하니 힘들거나 말거나 그냥 가서 장보고 택시타고 올걸....
괜히 그랬다 싶은게 후회가 되더라구요
한참 후에 장을 봐 오신 시어머니
"야야 맥주 한 잔 하자"
며느리랑 시어머니랑 맥주 한 잔 쭈욱 들이키며 이런저런 얘기하다보니
섭섭한 마음도 풀어지고 오해도 풀어지더군요
추석 다음날 시아버지의 생신이라 또 새벽부터 일어나 생신상 차려서 가까이 사시는
시누네 가족들 불러 아침밥을 먹는데 가족들 돌아가면서 '이건 맛있네. 이건 뭐가
덜 들어갔네...'하며 혼자 뭐빠지게 준비한 보람도 없이 음식 트집을 잡더군요
거기다 시어머니까지 잡채를 드시다 " 담부터는 잡채할때 시금치 좀 더 많이 넣어라"
입으론 음식을 씹고 맘으론 한마디씩 한 사람들을 아작아작 씹으면서 아침밥을
먹었습니다
5일동안 언제 짬을 내서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나 노렸지만 시댁에서 지내는 5일동안엔
30분이면 갈 수 있는 아버지 산소에 가는 시간조차 낼 수가 없더군요
시간이 없었다기보단 시댁에 와서 친정아버지 산소에 간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던거죠
그러다가 마지막날 시댁에선 우리집으로 간다고 인사를 하고 그때서야 친정 아버지
산소에 가서 술한잔 올리고 왔습니다.
그래도 전 시댁 어른들을 참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어쩔 수 없이 며느리보다 아들한테 더 맘이 가는건 나도 자식 가진 엄마이니 차라리
이해를 해버리구요
그 외에 그분들의 삶에서 본받을 점들이 참 많거든요
넉넉치는 않지만 무척 성실하게 살아 오신 것, 자식들에게 작은 것 하나라도 더 주려고
하시는 사랑, 며느리를 딸 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아껴주신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건 그분들의 자식인 저희 남편을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로 반듯하게 잘 키워주셨다는 것이예요
그래서 지금도 남편 생일날엔 시부모님께 꼭 전화를 드리고 선물을 한답니다
진심으로 고마워서요
그리고 그분들의 그런 정직한 삶을 우리 자식들이 무엇보다 무형의 큰 재산으로
상속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전 시댁에 가면 어둡기 전에 우리집으로 오려고 해요
빨리 오고싶어서가 아니라 아들 식구 보내고 그 어둠 속에 두분만 우두커니 남겨 놓는게
참 맘이 아파오거든요.
나도 늙어서 부모되면 저런 모습으로 남겨지려나 하는 생각도 들구요
이번에 제가 직장을 구해서 추석담날 부터 첫 출근을 했거든요
언제 제 낡은 신발을 보셨는지 출근할땐 남한테 빠지는 차림이면 안된다면서
십만원짜리 수표가 든 봉투를 제게 슬쩍 넣어주시면서 "첫 출근할때 신발 사신어라"
하시더군요
늘 좋은 관계는 아니지만 갈등을 겪기도 하고 그렇지만 가슴에 남기지 않고
풀어가면서 미운정 고운정 쌓아가면 시어머니와도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명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