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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두리


BY 인생 2005-04-03

휴~

나는 외 며느리다.

나는 45세다

산전 수전 은 다 겪고 이제 공중전만 ~

시집오기전 신랑에게 가정사를 대충은 듣고~

연애 결혼이다 보니 주변 상황들은 귀 에 들어 오지도

않았다.

시집을 딱 와보니

시엄니 성깔이 장난이 아니다

우리신랑은 2남2녀의 막내인데

그 집의 장남노릇을 하고 있었고 누나둘은 신랑

눈치를 보고 살고 형 하나는 집안에서 형노릇을

못하고 있었다 . 아파서 그렇단다

시댁의 집안일은 아버님이 다 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이렇타 할 병도 없이 그냥 이불위에서

그야말로 할일이 없어서 인지 뒹굴고 있었다

 밖에는 나가지도 않고 , 건강한 사람들도

하루만 누워있어도 머리가 지끈지끈인데

시집오고 부터 큰애가 고2가 될때까지 쭉~

아버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수발을 하고 있었다.

병원은 또 하루가 멀다 하고 출입을하고,

우리 남편은 엄니 만 보면 속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단다 .이 여파로 나는 마음놓고 아프지도  못했다

내가 40세가 될때까지는 그야말로 고개만 끄떡꺼리고

살았다 .

그 중간에 그러니까시집온지 6년뒤에 형이 장가도

못가고 하늘로 소풍가고 시엄니와 나와의 사이는

골이 깊어만가고 결국 참고 참았던 감정이

이성으로 제어가 안되고 감성으로 폭발했다

이 만큼 살아 온 것은 남편이 성실 하고 가정적이다

내가 첫딸을 낳았을때 우리 엄니 아비 아무도

병원에 오질않았다 .

난산을 해서 죽니 사니 했을때 병실 밖에는

친정 가족들만 애를 태우고있었다.   일주일 병원에

있어도 그 아무도 나타 나 주지를 않았다

그 흔한 미역도 쇠고기 반근도 ...

눈물은 작은 강이 되고 가슴은 메마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첫애는 또 얼마나 응급실을

들락날락 그렇지만 시댁은 남이였다

그것이 한이 되었든지 둘째는 좀늦게 태어났다

그래도 시댁에 한번의 기회를 주기 위해

남편보고 시켰네

돈이 아까워서 그렇다면 당신이 돈을 주고시켜도

된다고 ...

그 둘째가 또 딸이네...

안 오는것은 당연지사고 ,남편은 또 나를 달래네

그 두번째는 또 혈압이 260으로 올라가 죽니 사니~

그래도 이 양반들 안 나타나네..

두번의 일로 내 마음의 문은 닫혀 버리고말았네

40이 될때까지~

여자 마흔이 넘으면 무서운 것이 없다 하더니만

엄니가 내 머리 뒤에다 놓고 잔 소리 하는것을 가만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인디

감성이 먼저 태클을 걸어 그로부터 2년은 아예엄니 하고 말을 하지 않고 서로가

피해 버렸네 중간에 남편은 나를 죽인다고 방방 떨었지만 , 방방 떠는 니도 나는

떠나기로 했으니 아무 미련이 없다고 목 소리 착 깔고 이야기를 하니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나를 감싸더만~

세월은 그렇게 또 흘렀네 생활비는 저거 아들이 이날 이때까지 다 대고

그러니 시아버지가 일주일 전에 뇌 경색으로 지금은

병원에 누웠네

엄니는 지팡이를 짚다가 바쁘면 그 지팡이를 들고 걷네

다 죽어가듯이 이야기 하다 어느 한시점 한 시점은 또 쌩쌩한 목 소리를...

급하게 일이 있어 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