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에 자신의 위주로 맘만 맞춰주면 조용할 일도 집사람의 스트레스의 정도에 따라 대다수의 남편들은 별수롭지않게 여길 사소한 문제도 그냥 넘어가질 않고 꼬투리잡아 속에 품고 두고두고 기분 나쁜날이나 그럴만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하든 술먹을 빌미를 만들어 먹을 기회만 찾고 속이 허할때는 세상에서 가장 순한 양처럼 조용하다 배속이 체워지면 어김없이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남편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정서나 교육엔 안중에 없고 해야할 얘기이든 하지말아야 할 얘기이든 고향집으로 전활 걸어 멀쩡한 정신이 아닌 술이 들어가야 전화를 하고 사소한 부부싸움도 집안의 어른들까지 다 고해바칩니다.
사실의 근거하에서가 아닌 없는 말까지 부풀려 더 해서..막판에 이르러서는 아이들 듣는 곳에서 죽이고싶다는 말까지 서슴치않고 해대며 가정교육의 무방비상태에까지 이릅니다.
온 가족을 공포의 소굴로 만들어놓고 새벽까지 부엌에 앉아 꾸역꾸역 한참을 먹고 주절대고 먹고 주절대고 급기야 지풀에 꺾여 잠들때까지 기다려보지만 안방까지 들어와 누워있는 사람을 두들겨패고 온방을 휘져으며 머리채 끌고 죽일듯이 팹니다.
작년엔 심하게 아들을 구타해 경찰까지 불렸지만 별 소용이 없이 끝나고 경찰도 속수무책으로..
대한민국은 아직도 힘없는 주부들을 위한 법률이 없다는게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진단서까지 받아놓고 아동학대신고센타에 신고까지 해 보앗지만 별 소용이 없어 기회만 보고 있다 이젠 아이도 나도 지칠대로 지치고 반듯하고 올바르게 키우고 싶은 내 의지와는 너무 먼 남편의 행동하나하나가 이젠 신물납니다.
미래에 대한 확고한 계획이나 꿈도 없는 사람. 오로지 술과 먹는 일에만 직장일을 마치고 나면 저녁시간 가족과 하는 시간이 겨우 이게 다이고
아이들은 뭘 보며 클것이고 자라서는 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걱정이 앞섭니다.
나 혼자라면 지금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만큼 하루하루가 지옥같지만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이유로 엄마의 손이 아직은 그리울시기인데... 그래서 더 이래저래 못한다는 걸 알고 더 비열하게 나옵니다.
저는 일찌기 친정부모를 여위고 혼자가 아닌 혼자가 되다보니 남편이란 사람은 신혼때부터 오로지 자신의 부모만 열심히 섬기고 따라줄것을 완강히 바랬고 시간이 가고 나이가 들수록 그 행동의 변화가 차츰 바뀌기시작했습니다. 항상 주위의 친척들앞에서는 부모의 면목을 생각해서 궂은일이 있을때엔 항시 데리고 다녔고 동서들이 안가는 장소까지도 저는 꼭 데리고 가 일을 시켜야 자신의 부모님에게 자랑스런 아들이 된다고 여겨지는지..
그런자리에서도 같은 동서지간이라도 일찌기 도착못하면 같은 동서지간이라도 항상 열번 잘 하다가도 한번의 잘못으로 유독 저에게만 면박을 주는 시어른들..
집안에는 무서운 어른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그냥 나온 얘긴 아니지싶습니다. 나의 쪽에 나의 그림자같은 버팀목이 없으니 더 서슴없이 행동을 함부러 하는 것같고 나이가 들수록 그 정도가 심합니다.
주변에선 헤어져라,너의 일을 가져라,또는 아이들보고 참아라 말은 분분하지만 아이들을 보면 불쌍하고 또 다시 나를 돌아보면 내 지난 세월이 불쌍하기만 합니다. 앞으로 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시집식구들은 작년 9월 한참 가정폭력으로 아이를 구타하고 경찰신고하고 난뒤 신랑이 고향집에 가서 시부모앞에 어떻게 거짓말로 둘러댓는지 살림만 하고 집밖을 모르는 날 모함하는 발언까지 -늘상 집에 붙어잇지않고 애들도 안돌보고 늘 돌아다니고 살림을 안사는 여자취급을 해놓고 시부모도 아들말만 철떡같이 믿도 그동안 18년동안 내가 시집에서 쌓아온 공덕이나 평상시 나의 행동이 어떠할거라는건 시집의 일가친척들까지도 다 꿰뚫고 잇는데 그런 모함을 하고도 아들의 거짓증언을 100%받아들이고 평소 명절이나 집안 대소사일도 큰동서(지금은 이혼하고 없지만)나 막내동서보다 내가 더 적극적으로 참석했고 그들보다 항상 하루 더 늦게까지 시집에 붙어 친정부모가 없으니 찾아가 뵐 곳이 없다는 이유로 시집에서 항상 발목을 붙드는 통에 수십년이 되도 나머지동서들보다 항상 하루 늦게 돌아오는게 당연시되어왔습니다.
그런 나를 그렇게 모함하고 시어머니나 아들과 같이 날 질책을 하고, 그 이유인즉 작년에 집안에 경찰까지불러 자기 아들을 그렇게까지 만들었다는 빌미로 그땐 시집과의 거리가 먼거리도 아닌데 아들이 2주진단(12살)을 받고도 아이의 상태를 함 보라고 오시라했드니 갈 시간이 없다고 얼버무리더니 정작 같은 지역에 사는 시동생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언제 시어른들이 왓다가 갔는지 뒤에 신랑편에 듣고 경악을 했습니다. 이럴수가..
손주가 맞고 진단 2주가 나와 이웃의 사람도 아이의 몸을 보고 경악을 했고 경찰도 보더니 아동학대신고해라할 정도였는데 정작 친 할머니라는 사람이 이럴수가 있는가싶었습니다. 아무리 팔은 안으로 굽기로서니..
손주는 자신의 핏줄이 아니랍니까?
그 뒤로 전 그 집안사람들을 똑바로 봐 지지가 않습니다.
이번일로만이 아닙니다.
모든 사사로운 찬밥신세 차별대우는 시집올때부터 시시비비를 가리자면 수도없지만 한겨울에 구정설 시집에 방이 여섯채(좁은 시골방)이 있는데 하필 그해에는 어찌된 일인지 큰동서 아이가 돌이 지나지않아 군불떼는 방에 한식구가 자고 방이 없다며 시누와 이웃집 빈집에서 자고 오라고 신랑이 친구만나러 놀러간 사이에 시어머니가 강제로 보내더군요.
물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음력1월이면 시골겨울은 몸서리치게 이가갈릴 만큼 살을 애이는 듯 그 빈집은 냉바닥에서 두꺼운 이불을 두꼅세꼅 덮고 누우면 머리위로 하얀 입김이 숨을 쉬어도 세어날 올 만큼 우풍또한 만만찮은 곳이였습니다.
그 긴긴밤을 보내도 남편은 찾아오지않았습니다.
내가 첫아이를 낳았을때도 집안에서는 첫 손주인셈인데 첫째네 아들과 막내아들네와 시누네가 아이를 낳았을때는 작명소에까지 가서 좋은 이름 택일한다고 난리더니 정작 우리아이들은 우리손으로 지어야 했었습니다.
해마다 농사철이되면 세아들이 있는데 항상 궂은일엔 저의 신랑을 찾고 좋은일은 나머지 아들을 앞세웁니다. 그래도 항시 시집에 가면 혼자 찬밥신세인 자신을 알면서도 그래도 뭐가 좋은지 제 부모랍시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라 할까요?
그런저런 설움도 많았는데 이젠 한 사람을 두고 없는 소리까지 만들어 경찰까지 불렀다고 자신의 아들의 잘못은 모르고 며느리괴심하다고 그렇게 모함을 하다니 어찌 한평생 이런 가족들과 식구라며 살을 붙이고 살까요?
맘은 이미 오래전 돌아앉아있고 몸은 여기에 살고 있고 정말 이럴땐 어떻게 헤쳐나가야 아이들도 나도 후회없는 남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 그 방도를 알고 싶습니다
죽이고 싶다는 말까지 듣다니 섬뜩합니다.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