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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된 새댁이 사는 법 4-'당신들의 의식, 우리들의 상식'


BY 서울늦된새댁 2006-02-10

 

제가 저번 글에서 서플리먼트로 올린다던 야그가 서둘러 글을 마무리 하는 바람에 빠진 것 같아 잠시 설명을 하자면.

저희집에서 시집까지는 마을버스 한정거장 거리로 내려가는데(저희집이 지대가 높은 아파트여서 내려간다는 표현을 쓰게되네요)5분도 안걸립니다. 신혼초에 스카이라이프를 달았더니 아버님이 전화를 거셔서 그러시더군요. 베란다 창틀에 빨래 널었냐? 흘. 멀리서 보시기에 희끄무레한게 이불빨래로 보이셨나봅니다. 아무튼 시아버님이 칠순에도 워낙 건강하시고 눈이 밝으신거지만 그정도로 가까운 거리지요. 신혼초에 칠순연세에 처음으로 자식 혼인 시키시고 모든 관심이 쏠려계실때는 거실 불이 안켜져 있으면 아직 안들어왔나, 전화도 하시더군요^^;;;다 관심이시지요. 근데 쪼매 부담스럽기는 하더구만요. 시집이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으로만 가까운것에 그치는게 아니라 정서적 가까움과 일상을 나눌 것을 요구하는,  옛 ‘시집살이’의 현대적 변형판 쯤 되는거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이리 가까운데다가 이쁨받는 며느리 지향성이 강했던 신혼초에는 ‘의무적으로 내려올 것 없다’ 하신 시어머님의 배려에 감사하면서도 자청해서 쥐 풀방구리 드나들 듯 드나 들었지요. 그날도 토요일인데 남편과 하나로마트 가기전에 들려서 저희 장보러 가는데 뭐 필요한거 없으시냐 여쭙고 좀 저녁 늦게 장을 보고 왔습니다. 담날은 일찌감치 친정아빠 모시고 인천갔다 왔구요. 긍까 연락 안된거 딱 반나절입니다. 근데 나중에 남편과 시집에 내려가보니 성질이 저만큼이나 급하신 시아버님이 계속 연락이 안되 속이 터지신것도 있었지만 울 어머님이 얘들이 어제 밤에 장을 보러 가서 뭔 일이 있었던게 아니냐며 더운날 아버님보고 애들 집에 올라가라 하신겁니다. 올라와보니 저희가 서둘러 나간흔적이 보이고 없더라나요. 그래 그냥 내려가셨더니 울 어머님께서 애들이 어제 농협 하나로가서 쌀을 산다고 했는데 쌀독에 쌀이 있으면 오늘 어디간거고 쌀독에 쌀이 없으면 어제밤에 뭔일 난거 아니겠냐, 그걸 안보고 오시면 어쩌냐시어 또 한번 올라오셔서 쌀독을 열어보고 가셨다는거 아닙니까. 흘흘. 이래서 자식은 나이 먹어도 부모한테 걱정끼쳐드리는 만년 ‘자식’이라 하는가 봅니다. 근데 이래 이해가 가면서도  낼모레면 사십인 아들내미 부부가 딱 3,4시간 연락 안됬다고 그 정도 걱정을 하시니 쩝, 팔자에 없는 왠 과잉보호를 받나 싶더군요. 남편은 익숙한지 몰라도 저는 참 한편으로 껍껍하데예. 앞으로 계속 이런거 아닌가 싶으면서.




<당신들의 의식(ceremony), 우리들의 상식>


한 점 코딱지 만한나라지만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역사만큼 오래된 ‘구비 전승 진리’-며느리는 결코 딸이 아니며, 며느리에 대한 기대치는 집단적 격려(?)속에서 점점 올라가기만 한다, 더 나아가 헌신과 희생이라는 수준 높은 가치 실현을 일방적으로 요구당한다-를 체험으로 깨달아갈 무렵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 다가왔습니다.

 

 결혼전 남편은 분명 우리는 작은집이라 했습니다. 그냥 큰집가서 차례 지내면 되고 제사도 그쪽에서 하니 우리는 참석하면 된다 했습니다. 저, 차례상, 제사상 구경도 못했습니다. 티브에서만 봤습니다. 제사음식도 구경만 했습니다. 어느 명절에 안동 어디 종가집 듣도 보도 못하던 빛깔 고우나 손 엄청 간 음식들 소개하는데 국민배우 최*암 아저씨가 얼마나 아름다운 전통 먹거리냐 나불대실 때 ‘하이고, 보기만하는 니들은 아름답지, 만드는 여자들은 뽕이 빠지겠구만’ 하며 비웃었더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시부모님 집에서 제사, 차례 다 지낸다 하더이다. 남편 큰아버지, 어머님이 두 분 다 치매가 있으셔서 전문 시설로 들어가시자 큰집 아들 며느리들이 우환이 있으니 쉬겠다 한걸 아버님이 그럼 내가(?) 한다 갖고 오신겁니다. 그 시기가 또 절묘합니다. 저희 결혼 날짜 잡은 그해 추석에 결정 하셨다합니다. 아무래도 결혼전부터 남편이 마눌감 요리도 잘하고 씩씩한 스타일이다 말하니 저 믿고 가지고 오셨지 의심가더이다. 아니면 누굴 믿고 가지고 오셨는지 묻고 싶어지더이다. 너구리만 끓일 줄 아는 아들 믿고? 공부만 해서 아무것도 할줄 모를 뿐더러 하면 클나는 줄 아는 시집 안간 우리 시누이? 몇십년을 한결 같이 바깥일 하시고 여전히 일하시는 우리 어머님? 아님 아버님이 손수? 오 노~....


그래도 다행인거는 큰 집 형님들이 음식을 한가지씩은 맡아 해오신다 하던데, 그래도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이 뭐 그리 많은지 우리 어머님 그 연세에 차례음식에 다 모이면 먹을 음식 거론하시는데 종류가 만만치 않더이다. 5분거리에 사는 외며느리 어찌 맘 편히 모른척 합니까. 왠지 독박 쓴거 같고 껍껍하데예. 게다가 저는 친정에서 맏딸입니다. 친정 아빠, 엄마 따로 따로 사시는데다가 역시 명절날 산뜻하게 어디 놀러나 간다는 분들 아니십니다. 그해는 중국으로 공부하러간 남동생 부부도 못온다 하더이다. 여동생도 물건너 가있더랬습니다. 이래저래 맘이 저도 바쁘더군요. 그래 시부모님한테 내려가서 저도 명절 음식을 맡아서 해오겠다, 친정 음식도 제가 해야 하니 친정 가서 해오겠다, 이번 명절만큼은 친정서 자고 일찍 아빠 밥차려드리고(엄마는 인천사는 또 한 여동생이 맡고;;;) 후딱 음식 갖고 차례전에 오겠다 말씀드렸습니다. 울 시부모님 선선히는 아니지만 또 어느정도 양식은 있는분이라 그래라 하시더이다.

 

 명절 전날 제가 맡은 음식 재료(갈비 15키로!와 플러스 알파) 차에 바리바리 싣고 시집에 갔다오겠다 고하러 들리니 시아버님이 남편한테 대따 큰 밤봉지 한봉을 들려보내시더이다. 안좋은 표정이시더이다. 점잖으신 양반이니 그래라 해놓으시고 막상 아들내미 델꼬 친정 간다하니 밤봉지라도 들려보내야된다 싶으셨나봅니다ㅋㅋ. 저만큼이나 눈치 빠른 친정 아빠, 사위 밤까는거 하루종일 도와주시고 어깻죽지 아프다 하시더이다.

울 올케도 외며느리이니 결혼 전에도 우리집은 시누이들이랑 다 모여 앉어 음식 했지 올케만 부려 먹은적은 없습니다. 그래 저도 명절 음식 이것저것 했지만 양쪽 집 먹을 갈비 15키로라는 분량은 첨 해보는지라 힘에 부치더이다. 갈비찜만 있습니까. 하나 더 맡은 음식에 친정 아빠, 엄마(엄마한테는 또 명절 전날 퀵서비스로 음식 부쳐 드려야지 안그럼 울 엄마 올케한테 시엄니 노릇합니다. 암튼 울 엄마, 아빠부터 시부모네 하시니, 미칩니다) 드실 음식도 해야 합니다. 그해에는 올케랑  일 잘하는 여동생 없으니 허리가 휘데예.


담날 새벽같이 일어나 아빠랑 한 술 뜨고 시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첨 생각으로는 내가 왜 큰집 형님들보다 먼저 가나 싶지만 울 시어머님 혼자 종종거리실 생각하니 맘 편치않어 7시도 안되 도착했습니다. 결혼하고 첫 명절에 첨 지내는 차례라 뭐가 뭔지 모르지만 암튼 시엄니따라 저도 분주했습니다. 아놔, 근데 어디 먼데도 아니고 신도시 사는 형님들 세분이 8시가 되도 한분도 안오데예. 차례 지낸다는 시간이 9시인데 젤 큰 형님 8시 50분에 도착 하시더이다. 8시부터 일하면서 머리를 굴렸습니다. 이거는 뭔가 낌새가 심상치 않다, 형님들이 새댁 믿고 그저 늦는게 아니라 본인들이 쉬었으면 하는 제사를 아버님이 혼내키시면서 갖고 오셨다니, 그럼 어디 당신 며느님 델꼬 해보시라 하는 심정이 작동하는것이리라..아주 제대로 골 아픈 씨추에이션에 빠져부렀구마잉...이 난국을 어찌 헤쳐 나간다..

 

근데 생각이 이어질 겨를이 없더이다. 어찌나 분주한지. 친정 명절 아침이랑은 사뭇 다른 풍경이더이다. 시숙들은 아래층에서 뭘하는지 코빼기도 안보이고 쫍은 부엌과 차례상 차려진 안방, 차례 음식 고이는(?) 건넌방에만 여자들이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고 ‘명절날 남자라고 앉아서 산소가 우짜고 저짜고 하면서 날로 먹을라카지 말거래이 앙?’ 이래 다짐 받아 놓은 울 남편만 뭘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마누라 무서워 똥마련 강아지처럼 또 괜시리 왔다갔다합니다. 드디어 차례상이 차려졌습니다. 뭐가 몬지도 모르면서 옥색 한복 언능 갈아입고(새댁은 또 이걸 일년을 입어야 한다 카데예) 다른 형님들처럼 뒤에서 앞에 남자들이 절하면 나도 따라하고 일어서면 일어나는데...오만가지 생각이 들더이다. 여자들이 죽어라 상 봐놓으니까 어디선가 누군가의 무슨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짱가처럼 갑자기 나타난 남정네들이 앞에서 떡 하니 버티고, 심지어 형님들 자식중에 아들내미들은 아부지들 뒤에 쭈룩 도열하고 딸들은 우리랑 같이 서고. 한방에 있으되 남녀 유별하니, 아싸~ 그림 장난 아니고. 의식을 주도하는건 남자들이고 여자들은 그저 가부장의 가솔들이니 따라서 절이나 하는데 울 시아버님 저는 무교지만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저를 의식하셨는지 갑자기 한말씀, 옛날에는 여자들이 절을 못했고 지금도 그런 집이 있는데 우리는 한다, 그리고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 전통이다 전통...

 

헐헐..속으로만 그랬습니다. 네, 아버님 절씩이나 하게 해주시다니 며느리 눈물이 앞을 가리옵니다. 네 종교 아닌거 맞습니다, 유교는 이조 왕조가 왕권강화와 가부장체제를 강화하기위해 중국에서 수입한 이데올로기입니다. 또 제사는  양반 가문들이 반,상을 구분하고 싶어 구별짓기 차원으로 제사니 어쩌니  5대조까지 모시니 하면서 그들(양반, 남성)만의 의례를 지내던게 양반가문을 모방하고 싶어하던 평민들에게까지 내려온 것이 그 역사적 배경이옵니다..그 제사 의식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제사나 차례상 차리는 명절때가 되면 여자들이 호환, 마마보다 더 한 ‘증후군’을 앓는다 하더이다..


나는 제사가 싫다고 외치던 이하천 선생 생각도 나고, 밀려오는 자괴감에 심경 복잡한 와중에 차례상 치우고 또 이번에는 밥상을 차려야 한다더이다. 애들까지 스무명 약간 안되는 대식구 밥상 차리는데 아주 혼이 빠지더이다. 부엌에서 여자들은  또 종종거리고 지지고 볶는데 남자들이 이번에도 밥상머리에 먼저 앉아서 기다리더이다. 아버님이 시장하다 하시며 먹자 하시니 아버님 이하 시숙들 먼저 젓가락 들고 이것 저것 드시더이다. 교육 단단히 받은 남편은 그들만의 자리에 합류도 못하고 부엌에 합류도 못한채 그냥 반찬이나 날르면서 왔다갔다 하더이다. 시아버님, 시숙들 자꾸 남편보고 너도 와서 앉으라 하는데도 앉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자기 할 몫 딱 잡고 도와주는것도 아니고 누가봐도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지도 혼수상태 이더이다. 반찬 갈거 다 갔나 싶어 안방을 쳐다보는데 ,

허거덩, 여자들이 앉을 자리가 없더이다.(상가주택인데 안방이 크지 않지만 상 펴자면 펴겠는데) 시어머님이 여자들은 나중에 먹자 하더이다. 헐헐..배꼽부터 밀려 오르는 차디찬 절망감이 뜨거운 가슴을 거치며 달아올라 머리까지 갔을때는 분노로 바뀌더이다. 뚜껑이 열리더이다. 대체 이게 몇십년전의 그림인가 싶더이다. 어렸을적에 큰집가면 남자들은 집집마다 하나씩 있는 꼬추들 끼고 앉아 딴 상 받고 지지배들은 뭐가 하나라도 빠진 옆 상에 앉아 먹고, 그나마 큰엄마들, 울엄마는 부엌에서 상 물리기 바라며 대기하던 그 몇십년전의 풍경이 밀레니엄시대에 제 눈앞에서 펼쳐지더이다.(저 어린마음에도 그게 너무 싫어서 나도 저 상에 끼겠다고 앙탈부리다 할머니한테 혼나고 담 명절에 큰집 안간다고 투쟁하던 근성 있는 아동이었습니다)

세상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던데 강산이 세 번 바뀌었건만, 돈은 내가 버니 니는 살림만 하라던 시절에서 니도 같이 벌자는 세상이건만 어째 이리 안바뀌는 것이 있다는 말입니까.


제 표정은 굳어질대로 굳어졌고 남자들 물린 상에 시어머님 이하 여자들 앉아서 밥을 먹는데 가슴에서는 뭐가 자꾸 치밀어 오르지만 그 와중에도 제 머리는 쉬지를 못하더이다. 이거는 아니다, 진짜 아니다. 밥 먼저 먹고 일어난 남편이 약속대로 설거지를 한다하자 형님들이 펄쩍 뛰더이다. 밥 먹다 말고 가서 내 남편을 부엌에서 끌어내더이다. 시숙들까지 너는 우리 따라 내려와라 델꾸 가더이다. 울 시어머님 네가 몰 할줄 아냐며 거들더이다.

그래 결심을 했습니다. 명절, 제사 문화를 바꾸던지 내가 이 말도 안되는 남존여비 사상의 잔재 의식들을  최대한 멀리 하던지 해야지 이래서 내가 어디가서 여자들이여, 더 이상 이렇게 살지 말자는 페미질(?)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저부터 그리 못살면서. 그래서 운을 떼었습니다. 앞으로 제사가 또 네 번이나 돌아온다던데.

‘어머님, 앞으로도 계속 명절이나 제사때 저희쪽에서 지내나요?’

‘응, 그렇게 됬는데..’(울 어머님 꼭 울남편 비슷하십니다. 사람 좋고 맘은 약하십니다)

‘저희가 큰집도 아닌데...’ 이미 왜 그렇게 됬는지 정보통(비밀임다) 통해서 알게 됬는데 모른척 하고 끄냈지요.

‘그럼, 형님들이 좀 더 일찍 오시면 안되나요? 어머님도 집안일만 하시는 분도 아닌데 힘드시고..’

그러자 형님들 시선이 일제히 저한테 꽂히고 큰 형님은 난리가 나셨습니다.

‘어머, 새댁이 몰라서 그러는데 맡아서 해오는데 더 일찍 올 필요도 없어. 오늘 내가 늦게 왔다고 그러는거야? 새댁 참 당돌하네. 시집온 첫 명절에 이러느니 저러느니, 정말 당황스럽다’

아놔, 큰 형님 속도 모르고 펄펄 뜁니다. 형님 말대로 시집와 첫 명절에 어케 시아버님께 대놓고 이건 아니다, 이건 바꾸자 아룁니까. 그러니 제가 운을 슬슬 떼어서 일단 얘기를 시작하려는거지 누가 여자들끼리 아웅다웅 하자고 했습니까.(하기사 제가 일단 운을 그렇게 뗐으니 오해할만은 하시지만 말을 끝까지 이어나가게 하시지를 않더군요)

왜 그들의 의식 때문에 여자들끼리 아웅다웅 합니까.

더군다나 제가 정보통 통해서 들은 얘기는 큰 형님이 불교 신자여서 쉴 수 없다면 절에서 제사를 지내고 싶다 하신걸 울 시아버님이 내가 지내마 하시며 갖고 오셨다는데, 나도 이런식으로 제사 못지낸다 뻐딩기고 형님들도 못지낸다 뻐딩겨서 절에서 제사 지내면 형편 되는 사람들이 번갈아 참석하고 좋은거 아닙니까, 명절에야 할수 없다치고. 하기사 제 속에 안 들어왔으니. 그래도 칼은 이미 빼들었으니 저도 흥분하지 않고 말을 천천히  이어갔지요.

‘형님, 저도 당황스러워요. 저도 작은집이라고 들었는데 제가 큰집 며느리 노릇 하게 되서 당황스럽네요’

심약하신 울 시어머님은 아무말씀 못하시고 시누이, 나머지 형님들도 암말 없는 와중에 큰 형님은 당돌하네, 당황스럽네 한마디 더 하시는걸 제가 일단 입을 닫고 밥만 먹었습니다.

밥상 물리고 여자들끼리 또 설거지 한바탕 하고 친정 갈 채비를 하는데 큰 형님이 아래층에서 저 좀 보자 하시데요. 아이고, 속도 모르고. 그리고 여자들끼리 이러저러 더 이바구 할일이 뭐 있습니까. 문제는 그들을 위한, 그들의 의식에 멤버쉽도 없는 여자들이 동원되야한다는게 문젠데. 그래 저 언능 친정 가봐야 한다며 남편이랑 일단 친정으로 내뺐습니다.


그리고 담날 남편 외가에서 시아버님과 시누이와 2라운드가 벌어졌지요.


2라운드 이하는 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