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뿐인 아들이 있습니다.
이제 고3입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공부에 취미를 잃고 만화, 게임에 빠져들더니 이제는 사귀지
말았으면 하는 친구들과 사귀면서 술, 담배까지 합니다.
고1 때는 야단치는 담임 선생님께 공손하지 못한 자세를 보이다가 결국 사제간의 거리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멀어졌습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은 선생님은 아들에게 그대로 갚아버렸고 아들은 견뎌내려하지 않
았습니다.
전학 보내달라고 조르더군요.
다른 학교에 가면 잘 할 수 있다면서...
달래고 달래다가 안되서 하는 수 없이 전학을 보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같은 이유로 전학을 준비해야 하는 부모 마음...그거 피가 마르
는 일입니다.
전학 보내주면 잘 하겠노라고 한 아들의 약속에 작은 기대를 걸었지만 생활은 마찬가지였
습니다.
요즘도 일주일에 하루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들어옵니다.
귀가 시간은 거의 자정 무렵입니다.
방에 들어가보면 담배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여자 친구 사귀는 건 물론입니다.
집에 들어올땐 항상 까만 비닐봉지에 두꺼운 만화책을 대여섯권 담아가지고 옵니다.
그걸 보다가 새벽에 나와 라면을 두 개씩 끓여 먹습니다.
아침에 학교 갈 시간이 되어 깨우면 방금 잠이 들었는지 마구 흔들어도 모릅니다.
어쩔 수 없이 신경정신과에 데리고 가 치료를 받게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약을 받아다 먹고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새벽까지 잠을 안 자는 습관을 고쳐주려했는데 약을 먹으려 하지 않
습니다.
전학 가면서 통학 거리가 멀어져 학교 옆에 빌라 전세를 얻어주어 학교 인근에서 직장생활
을 하고 있는 엄마와 함께 지내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성격이 거친 엄마와 충돌이 잦아져 하는 수없이 다시 집으로 데리고 와 차로 30분쯤
걸리는 거리를 제가 데려다 주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어느 날 새벽의 일이었습니다.
새벽까지 게임하는 아들을 보다 못해 야단을 쳤더니 컴퓨터에 물을 부어버려 고장나게 했습
니다.
항상 최고 사양을 강조하는 녀석이기에 이번에도 무리해서 사다준건데...
한 달도 안 된 컴퓨터를 망가뜨린겁니다.
두 달이 지난 어제는 컴퓨터를 다시 사 내라고 졸라대더군요.
밤새도록 게임하지는 않을것이고 새벽 두시까지만 하겠다면서.
제가 그랬죠.
- 고3이 새벽 두시까지 게임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 그런 제의를 받아들이는 아빠가 좋은 아빠겠느냐.
- 밤 12시까지만 하고 자기로 약속하면 고쳐주겠다.
하기야 고3이 밤 12시까지 게임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지만 그것만으로도 아들에겐 커다란
발전이기에 그렇게 달래보려 했던겁니다.
그렇게 얘기하다 새벽 1시가 되었습니다.
저에게 거칠게 나오는겁니다.
그리고는 만원을 달라고하는겁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지금 PC방에 갈거랍니다.
게임하다가 4시에 들어 와 잠깐 자다가 학교에 가겠다고 하더군요.
답답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참았습니다.
그리고 달랬습니다.
- 도대체 너 왜 그러는거냐?
- 마음 속에 담아 있는 응어리가 있으면 지금 모두 털어 놓아라.
- 아빠가 다 들어주마.
대답을 하지 않더군요.
저는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5분 쯤 지난 뒤 어렵게... 어렵게 입을 열더군요.
잠시 울먹 울먹하다가 눈물을 뚝 뚝 떨어뜨리더니 이렇게 말하는겁니다.
- 나 초등학교 다닐 때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았다.
- 이렇게 흐뜨러진 나를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할 지 나도 잘 모르겠다.
가슴이 메어지더군요.
눈물을 애써 감추며 녀석의 손을 꼬옥 잡아 주었습니다.
오랜만에 잡아 본 아들의 손은 아직 어린 아이 손 같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오래 저의 속을 썩혀 온 녀석...
- 핸드폰을 집어던져 방 안의 커다란 거울을 깨뜨리기 했고,
- 교복을 가위로 갈기갈기 썰어놓기도 했고,
- 아빠에게 거칠게 대든 적도 많았지만...
아빠의 손에 힘없이 쥐어진 녀석의 손은 따뜻했고 손 등의 피부는 아기 적 손을 다시 만져
보는 듯 보드러웠습니다.
이렇게도 여린 녀석이...
그렇게도 오래 속을 썩혀왔다는 걸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아들이 눈물을 떨어뜨리며 모처럼 아빠 앞에서 한 그 말...
그 말은 맞습니다.
모두 맞습니다.
그 말에는 자신이 잘못 빠져들어 온 지난 날들에 대한 어쩔 수 없는 한숨이 섞여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제 3자에겐 불량학생으로 보일수도 있겠지만 녀석의 지난 날 얘기를 모두
들어보면 이 모든 건 부모 잘못에서 잉태된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엄마는 아들 돌 볼 생각에보다는 오직 자신
하나만의 일에 매달려 살아왔습니다.
자식 교육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37살 나이에 3년제 신학교에 입학한다고 법석이었습니다.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보다 자기의 신학교 입학이 더 중요했던 아이 엄마.
저는 물론 주위 사람들 모두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며 입학을 말렸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논리적으로 가족들을 설득할 명분이 전혀 없었던 아이 엄마는 누가 그 말만 꺼내면 온 집안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리곤 했습니다.
아예 반대하는 사람의 입을 막자는 의도였습니다.
결국...
아들은 초등학교 입학실 날만 빼고는 줄곧 80을 바라보는 할머니 손을 잡고 등교해야 했습니
다.
엄마 손을 잡고 등교하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풀이 죽어 있었을 아들...
준비물 제대로 챙겨오지 않는 아이로 따돌림 당할때마다 어린 마음에 상처가 컸을 아들...
엄마와 둘이 준비한 과제물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을
아들...
당연히 학교생활에는 시작부터 취미를 잃었을테고 우울한 마음의 하교 길 옆 만화가게 앞에서
습관처럼 발길이 멈추었겠죠.
저는 바로 그 해에 지방근무 발령으로 멀리 충청도에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아들을 멀리서 걱정하고 있을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에겐 이래저래 나쁜 상황만 전개되고 있었던겁니다.
만화에 빠져 자신마저도 통제하기 어려운 지경에 와 있는 고3이긴 하지만 자기가 이렇게 지
낼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지난 날의 상황을 속 상해하는 마음만은 간직하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10년 넘게 지속된 아이 엄마의 방황...
그것은 돌이켜 보고 싶지도 않은 세월이었습니다.
그 방황의 세월 속에서 아이 엄마는 "질 나쁜 불륜"마저 저질렀고 그에 따른 소용돌이가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은 기간이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정도였으니 아들녀석이 정상적으로
성장했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요.
보다 정확한 도움 말씀을 구하기 위하여 지나 온 상황을 상세히 설명드리는 과정에서 아이
엄마의 얘기가 거론된 점이 혹 저의 책임 회피로 간주될까 두렵군요.
아빠인 저에게도 잘못이 컸다는 것...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이제...늦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따스한 사랑으로 아들을 바꿔보려합니다.
아들이 어제처럼 자신의 고뇌를 조금씩 밖으로 덜어내어 마음 속의 응어리가 많은 부분 제거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너무 늦었다는 회한에 한 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렵니다.
아들 녀석은 이제 고작 18년을 살아왔을 뿐이니까요.
지푸라기 한 올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써 내려온 긴 글...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혹시 비슷한 환경에서 고심했던 경험이 있는 분이나 지금 겪고 계신 분...안 계신가요?
계시다면 도움 말씀을 주십시오...
산소같은 도움 말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