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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에 대하여


BY 서울늦된새댁 2006-04-14

 

 

 

아래글은 제가 어딘가에 어제  편지의 형식을 빌어 올린 글인데 '소통'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올려봤습니다. 날씨가 좋습니다.

아컴님들도 좋은날 되시압~

 

 

 

 

사월님께 띄우는 서신

우중충한 날씨 탓인가, 한 남자에게 평생을 억압당하고 등골이 파인 여성분의 스토리가 담긴 녹음 테잎 녹취를 풀고와 그런가 조금은 기분이 처지고 피로감 이 드는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집에와 님의 글을 접하니 피로감, 쳐졌던 기분이 말끔하게 가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와 이런 저런 이야기라도 나누며 소통을 하고 싶었던 욕구가 님에게 띄우는, 두서없으나마 편지의 형식을 빌은 글로나마 충족되지 않을까 싶어 몇 자 적어봅니다.


막상 작정을 하고보니 제 안에 고여 있는 ‘언어’들이 먼저 나가겠다고 다투다 걸려 넘어 지기도 하고 방향을 상실한 채 서성거립니다. 이 역시 제 욕심이 과한탓이고 마음이 급한 탓이겠지요. 천천히 하나씩 풀어가면 될것을요.

오늘은 님의 분에 넘치는 저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갈까요.
현명하시다 상찬 해주신 제 ‘내공’부터요. 분명 분에 넘치는 평가이나 그나마 조금이라도 제가 그런 상찬의 한조각이나마 받을 자격이 있다면 그건 아마 제 깨달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넘어지고 깨지면서 때로는 타인을 향했던 날선 비판과 비난의 화살이 되돌려 지는 경험을 통해 조금씩 깨달아가며 스스로 조금은 성숙했나싶습니다.

처음 의식의 대 전환을 일으키고 새로운 가치, 세계, 학문을 접했을 때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소아병이랄까요, 미성숙한 가운데 넘치는 에너지가 주체가 안됐을때는 저 역시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보다는 분노의 화살을 쏘아대고 비난과 비판의 날을 들이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따져 물었지요, 당신은 왜 이렇게 밖에 못사느냐, 당신 자체가 문제다, 당신은 마초다 당신이 당장 고쳐야 한다, 당신은 당장 그 상황과 그 사람들로부터 뛰쳐나와야한다... 나는 분명 그들 개개인을 비난한 것은 아니라고, 한심하게 생각한건 아니라고 그 사람을 위해 열정적으로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던거라고, 알량하나마 내진정성이 있으니 방식의 문제 따위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도 때로는 타인에게도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인 타인들은 곤혹스러워 하고 , 상처를 받기도 하고, 자기 검열 프로그램을 과도하게 돌려야 하는 상황에서 소통의 통로는 열리지 않고, 어떤 경우는 방어기제를 발동 시키며 반발하고, 갈등이 심화되고 ,어정쩡한 상태로 대화와 논쟁을 끝내게되더군요.
그러면서 많은 경우 좀 더 부드럽게 대할 수 없느냐, 말하는 방식을 바꿔줄 수 없느냐, 내 입장을 이해해줄 수는 없느냐고 요구하더군요. 그러면 저는 또 그랬지요. 강자인 당신이 먼저 당신의 기득권을 내놓아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변명과 핑계가 아닌가 의심이간다, 정당한 주장이 본질인데 왜 곁가지만 잡고 늘어지느냐, 약자가 배려까지 해야 되느냐...

특히 남성이 절대적으로 많았던 어느 조직(?)에 발을 담그고 페미니스트로서 대남성 투쟁을 할 때는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절대적 지지를 받았지만 일부 남성들한테는 극렬페미, 극좌페미(?)라는 호칭까지 선사받은 무리에서도 최전선에 서있었습니다. 그리고 절대지지와 거부의 중간 포지션에 있던 분들, 같은 여성들도 모호한 태도로 당신의 입장과 주장은 지지하고 이해하나 때로는 쉽게 다가가지지가 않는다며 ‘연대’를 망설이더군요.
그리고 저는 거부하거나 옳은건 알겠지만 왠지...하는 태도를 보이는 남자들에게 ‘무늬만 진보‘ ’가짜 지식인‘ ’도대체 개선의 여지가 안보이는 꼴통들‘이라고 딱지를 붙였지요.
(아, 대놓고 한 개인한테 너는 그렇다고 대놓고 말했다기보다는 남자를 싸잡아 비난하는 글을 올린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에게 물었지요, 페미니즘이 어떻게 대중속에 파고 들 수 있는가 를 고민하면서, 정말로 그들이 말하는 방식의 문제가 있는건 아닐까 뭔가 이해의 지평을 넓혀 야 하는건 아닐까. 그리고 알량하나마 지식이 깊어지고 넓어지면서 아는 만큼 보이고 이해의 폭도 넓어지게되더군요. 그래도 역시 너무나 알량했고 진짜 깨달음은 ‘경험’에서 왔습니다. 남편과의 결혼, 남편 시집식구와의 관계맺기라는 경험을 통해서요.


(여기서부터는 점잖은 서신 모드가 아니라 제 본색 모드로 확~ 전환하겠습니다요)
제 남편 자랑이 될 수도 있는 얘기 같지만 몇가지 예를 들자면.
결혼 제도 따위에 제발로 들어가는일은 없을거라던 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부터 얘기를 해야겠군요.
결혼전 꽃띠 커플같은 열렬한 연애는 아니어도 따땃한 연애를 하던때, 하루는 남편이 학교 서류 봉투에 뭔가를 얌전하게 집어넣어 들고 와서 한번 읽어보라고 하더군요. 뭔가 싶어 대충 속독을 해보니 한마디로 ‘유교와 페미니즘은 정말 만나볼 수도 없는겨?’ 라는 요지의 익히 알고 있는 주제의 글이더군요. 그래서 건성 건성 읽는데 남편이 그러데예. 합리적 가부장제 운운,머라머라.
근데 그날 하필 그 자리에 저와 같은 조직(?)에서 페미로 명성을 떨치던 저를 우상시까지는 아니어도 열렬히 지지하던 또 한 페미후배가 있었지요. 그러니 조직에서 앞장서 이름을 떨치 는 페미 애인의 친인척중에 유림의 수장이 있었다는 사실도 거석한데 합리적 가부장제 운운하니까 순간 무척 쪽팔리고 민망해서 제가 남편한테 필요이상으로 팩~ 쏘아붙이며 지청구를 줬지요.
‘가부장제 자체가 합리적일수가 없는데 뭔 합리적 가부장제? ’
남편 순간 민망하고 무안해서인지 아무말 못하고 머쓱한 표정으로 정성스레 준비해온 논문을 집어넣더군요. 그리고 그날따라 제가 남편한테 덜 친절하게 굴었지요. 후배는 집에가고 밤 늦게 남편이 집에 데려다 주는길에 눈이 폴폴 내리고 추웠기에 남편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남편이 예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러더군요.
‘ 내가 아직은 잘 모르니까 **씨가 내가 배우면서 바꿔나갈때까지 시간을 주고 기다려줄수 없느냐‘고
나는 무안을 줬는데 그 일을 그런 방식으로 부드럽게, 배려하면서 거론하더군요. 그래 그날 제가 ‘그래, 결심했어. 이정도 남자라면 결혼도 해볼만 하지. 넌 나한테 딱걸렸어, 음’ ㅎ ㅎ

그래 먼저 뽀뽀도 할 줄 모르는 남자한테 제가 먼저 뽀뽀하고, 그래도 같이 잠은 한번 자봐야되지  않냐 꼬셔서 속궁합도 맞춰보고 결혼을 했지요.(나중에, 막상 둘이 결혼 야그 구체적으로 가니까 은근히 걱정되고 심경복잡해 사귄다고 꼭 다 결혼을 하는거 아니지 않냐고 했더니 남편이 손도 잡고 뽀뽀도 했고 심지어 잠도 잤는데 어케 결혼을 안하냐고 저보고 책임져, 책임져~그라데예. 컥~)


결혼제도 안에 발을 풍덩 담그고 보니 자기모순적 상황, 분열 상황 때문에 자괴감에 빠져드는 날이 많더이다. 또, 남편도 한국 이라는 토양에서 아들로, 남자라 키워진지라 한계가 드러나더군요.
제가 예전에 비판하고 비난했던 남자들의 모습이 내 남편에게서 보이니 때로는 예민하게 굴면서 비판을 한적도 있었지요. 그러면서 한편으로 드는생각, 예전에 내가 비판과 비난의 날을 들이댓던 남자들 대다수는 그저 우리 남편같은 선량한 한 인간에 불과 했던것을 딱지를 붙여놓으니 아예 소통의 장조차 마련하지 못했던것을...
또, 그러나 우야든동 제사문제나 결혼 ‘제도’ 자체가 억압으로 느껴질때,그래도 기본은 괜찮은 남자랑 이혼한다고 하면 나보고 미친*이라고 하겠지 생각하면서도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제도에서 뛰쳐 나오는 수밖에 없는거 아닌가 수차례 생각했지요. 그리고 우리 시부모님이 어쩔 수 없이 저한테 며느리 도리를 은근히 기대하실때는 그 상황에서 대차게 저항하지 못하게 하는 그 견고한 힘의 위력을 절감하기도 하구요

그러면서 많이 생각하고 깨닫고 이해하고 배워나갔습니다.
샤워하고 샤워기를 욕실 바닥에 그냥 팽개쳐 놓는 습관을 가진 저한테 예의 그 사람좋은 웃음을 머금고  ‘여보, 여보는 왜 샤워하고 샤워기를 괴롭혀?’ 라고 말할 줄 아는 남편을 떠올리며 어느순간에 그런방식 으로 말해준게 고마워서라도 샤워기를 제자리에 놓기 시작하는 절 발견했지요.
(아싸, 오늘 남편 자랑 원없이 하네! ㅋ)
그리고 깨달았지요. 바로 이거구나, 반감 없이 먹히는 방식이!

또 어느날 아들이 백수탈출 하고 버젓한데 취직했다고 목에 기부스 하시면서 ‘우리 **이(아들) 어렸을적에 골목에 들어서면 골목 입구부터 훤해졌다, 쟤가 살만 조금 빠지면 인물이 난다, 너 그러다가 회사 모델 하는거 아니냐?(끄악~)는 고슴도치 에미가 들으면 울고갈 발언을 사정없이 날려대시는 시어머님이 은근히 내 잘난새끼 자랑 모드에 돌입하실 때 박완서의 소설 한구절이 떠올라 (잘 기억이 안나는데 ‘이땅의 부모란 늙으면 그저 자식 잘되는거, 자랑이 살아가는 힘이 되는 존재다)
그저 평범한 우리네 부모의 마음이 읽혀져 서운했던 마음, 기부스가 못마땅했던 생각을 슬그머니 거둬들이게 되더군요. 또, 명절 아침상 물리기가 무섭게 딸들은 언제오나 올케한테 전화넣어봐라 하시면서 올케는 내 집에 더 있었으면 하는 친정 부모님들의 모순을 보면서 그저 우리 시부모님에 대해
‘시짜들이란‘ 운운할 수는 없더군요. 조금이라도 올케 편이 되어주면서, 설겆이 한번 더하면서 그저 명절날 저녁에 일끝내고 올케와 잔 부딪히며 ’올케야, 우리 다음 세상에서는 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나지 말자‘며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고 공감과 연대 의식을 나누면서 조금씩이라도 변해 뒷세대들이 살아갈 좀 더 나은 모습의 세상을 위해 뭘 할것인가를 고민하지요.


사월님, 어쩌면 저의 이런 모습이 현실과 타협했거나 자기 모순적 상황, 분열적 상황을 자위하기 위해 전투력을 약화시킨게 아니냐는 비판을 살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조금씩 깨달아가는게 있다면 님과 제가 공유하는 가치를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섭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 와 ‘공감’이 모든 변화와 변화를 위한 실천의 출발점이아니겠는가, 그것으로부터 동력을 길어올려야 하는게 아닌가, 그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따뜻한 방식으로 ‘말걸기’를 시도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것입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가슴속에 고여있던 제 서투른 언어가 님과 이 글을 읽는 다른이에게 얼마나 잘 전달 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 늦은 시간까지 앉아 보잘 것 없는 깨달음, 더 보잘 것 없는 성찰 한자락을 내비치며 결국, 말하고 싶고 지키고 싶은 ‘가치’와 ‘신념’이 조금씩 퍼져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언제 또 기회가 되면 천천히 고여있는 말들을 풀어가고 싶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