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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해서 한번 써 봅니다.


BY 둘째 2006-05-04

혼인 신고한 지 11년이 되었습니다. 딸 아이가 7살이 되었구요. 우린 아직 결혼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양가 부모한테 부담이 되기 싫기도 했고 우리가 벌어서 나중에 하자고 했었죠.

 

시모는 3년 전에 별세했고 남편과 제가 시집 식구들과 단절하고 산 지가 2년째입니다.  시집 사람들이 저를 무척 싫어했고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아서 남편은 저를 선택했습니다. 저는 키가 작고 뚱뚱한 체구에 평범한 얼굴의 30대 여성이며 학력은 대졸입니다.  시집 식구들은 그런 제 외모를 대놓고 멸시했고 그 때마다 저는 당황스럽기도 했고 이갈리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6남매 중 둘째 아들이며 위로 맏형과, 누나들이 셋에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시모는 3년 전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암 투병 중에 큰 아들 내외는 단 한 번이라도 문병을 오지 않았고 시모 장례식 때조차 나타나지 않더군요. 맏아들은 시부모의 쌈짓돈을 긁어다 다 날렸습니다. 시부모 또한 맏아들한테 모든 것을 걸었던 분들이구요.

시모 장례식 때 장례식장 도우미 아줌마들이 저더러 하는 말이, "이 집 딸네들은 어쩌면 저렇게 요조숙녀처럼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느냐, ( 시모 영정을 턱으로 가리키며) 돌아가신 분이 딸들을 저 모양으로 키웠나봐." 하더군요. 장지에서 5월 땡볕에 무덤 터 다지기 등 봉분을 모시는 자리에서도  시누들은 다같이 나무 그늘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더군요. 큰 아들 내외도 없는 상황에서 며느리는 저 하나 뿐이었고 시집 사람들은 평소에는 저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다가 그런 순간엔 파출부 보듯, 제가 구슬땀을 흘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즐기듯 구경하더군요. 남편이 시집 식구들과 단절을 선언한 것은 시모의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물론 시모의 첫제사도 저랑 남편이 지냈습니다. 저는 직장인이라 시간이 많지 않았고 우리 부부는 시간을 쪼개서 제사 음식을 마련해 차에다 싣고 두 시간 남짓 거리인 시집으로 음식을 날라다 제사를 지냈지요. 제사음식 다 차릴 때까지 지 방에서 드러누워 코 곯던 시동생, 제사 지내러 나오라고 하니까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볼따구에 심술이 가득 들어 씰룩거리더군요. 그리고 그는 우리 부부가 큰아들 내외가 해야 할 모든 의무를 다 해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해오던 사람이었죠. 직장 생활 속에 허덕이면서 장만해온 제사 음식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그는 다음 제사는 네가 모시라는 남편의 말에 자기가 어떻게 제사를 지내냐고 어이없어하던 위인이었죠. 

 이야기가 두서 없이 들리겠지만, 앞서 시모 장례식 때 친정 엄마가 딸아이 손목을 이끌고 강원도에서 그 먼 경기도 인천까지 문상을 오셨습니다. 시집 딸네들, 내 친정 엄마한테 인사하는 년 한 년도 없습디다.  거기서 저는 머리가 회까닥 돌더군요. 일단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시부한테 조용히 여쭈었습니다. 장례식 때 이러이러했는데, 저는 무척 서운했습니다.... 시부 왈, "내 딸들 잘못한 거 없다고 본다"였습니다. 거기서 저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이 집 사람들은 어른조차 내가 존중할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구나...

 남편이 자기 집과 단절할 결심을 굳힌 것은, 시모 장례식이 끝나고 시집에 돌아왔을 때 날아든 한 통의 빚 독촉장 때문이었습니다. 그건 모 보험 회사로부터 날아든 것이었는데, 시모는 살아 생전, 자기 큰딸에게 2천만 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빚을 내 주었습니다. 그 시기는 묘하게도 시모가 우리 결혼식을 거론하던 시기와 딱 맞아떨어졌던 시기였습니다. 그 때 시모는 돈이 없어서 식구들끼리 식사나 한 끼 하면서 결혼식을 대신하자는 식으로 말씀하셨었죠.  그 때 저는 반대를 했습니다. 그 식사비조차 시부모한테는 부담이 클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고 또 우리가 시부모 생활비를 대줄 능력도 안 되었기 때문에 그 돈으로 차라리 생활비 하시라고 했었습니다. 결국 그 와중에 시모는 세상을 떠나셨죠. 그런데 그 때 시모는 자신의 딸한테는 거액의 빚까지 내주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이  남편으로선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남편과 저는 지금까지 시집이든 친정집이든 일원 한 푼 받아 쓴 적이 없습니다. 물론 낳아주고 키워주고 공부시켜 준 것까지 따지면 각자 자신의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 없다고 할 순 없겠죠.

시모 투병 중 병원비를 마련할 때 저희, 임대 아파트에서 겨우 관리비 내고 살면서 그래도 못먹고 못 입고 모아두었던 돈 100만원을 부담했었죠. 생색내려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자식인데 할 도리 하려고 무던히 애썼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때조차 이 집 큰 딸은 이런저런 핑계 대면서 너무 쪼들려 그 병원비 못내겠다고 버티던 사람이었습니다. 시모 장례식이 끝나고 이런저런, 자식의 의무를 얘기하는 자리에서 그네들( 시누들) 은 우리 내외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이제부터는 큰아들 노릇을  내 남편더러, 큰며느리 노릇을 저더러 하라고 명령하더군요. 그런데 말이죠, 그 큰아들 노릇이란게 모든 의무만  우리 내외에게 하라는 소리였습니다. 즉, 큰아들로서의 권리는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네들은  (이렇게 말하면 우습지만) 큰아들로서의 혜택은 지들 막내 동생(시동생)에게 돌리고자 애쓰는 모습들이었죠.(물론 물적 증거는 없슴다.) 시동생은 큰아들이 없는 공간에서 남편보다 항상 더 나대는 편이었죠. 남편은 사실, 좀 우유부단하고 뭐든 움켜쥐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죠.

어찌되었거나...

 

이제 우리 둘, 더 늦기 전에 결혼식을 하려고 하는데... 남들처럼 결혼식을 하자니 우리 남편 보러 올 식구들이 없네요. 그렇다고 내 친정 식구들만 달랑 놓고 식을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래서... 우리 둘, 단 둘이서만 조촐히 결혼식 올리기로 했는데 친정 식구들은 그런 제가 안쓰러워 어쩔 줄 모릅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이 상황에 나보다 남편이 훨씬 안쓰러우니까요. 세상에 어떤 대한 민국 남자가 제 부모 형제 다 버리고 여자를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친정 엄마가 제 한복을 맞춰주시면서 비록 결혼식은 남들처럼 못해도 옷이라도 입고 사진 촬영이라도 하라고 하시며 우셨습니다. 또 남편 양복 한 벌 맞춰 입으라며 없는 돈 긁어다(아마 빌리셨을지도...) 그것도 예를 갖춰 '돈보'에다 넣으셔서 남편 손에 쥐어 주시더군요.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저는 죄가 많은 사람입니다. 남편을 고아 아닌 고아로 만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전 후회하지 않을겁니다. 다시 태어나도 이 사람을 선택할거고 이 사람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또 행복하기 위한 온갖 노력을 다 할 겁니다. 우리 둘, 행복하게 사는 것이 우리를 미워하고 밟았던 모든 사람들에 대한 가장 확실한 복수가 될테니까요. 우리의 복수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올 7월에 있을 우리 둘만의 결혼식 많이 축하해 주세요.